춤추는 인간신호등

admin

발행일 2009.08.24. 00:00

수정일 2009.08.24. 00:00

조회 2,632



시민기자 진정군




서울의 관문인 김포공항 인근에 방화4거리 교차로가 있다. 이 지역은 공항에 인접한 교통의 요충지로 서울은 물론 인천과 경기도 차량들이 경유하는 데다, 방화동을 거치는 모든 대중교통의 차고지가 주변에 몰려 있어 날이면 날마다 출근시간 대혼잡이 불가피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직간접 교통사고도 비일비재했다.

횡단 보행로를 겸한 그곳에 '육지의 섬'이라 불러도 좋을 다이아몬드형 공간이 있는데, 그곳은 춤추는 인간신호등 이철희 씨의 무대다. 춤추는 인간신호등은 자신이 개발한 이색적인 교통 수신호와 민첩한 순발력으로 이 지역을 지나는 운전자와 보행인들의 바쁜 출근길을 멈추게 한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또한 '우리 통장님'이라는 호칭이 본명보다 더 알려진 별난 사람이기도 하다.

1989년 당시 방화1동 11통장 직분이었던 이씨는 관내 교통상황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로부터 교통자원봉사대인 '푸른 신호등'의 발족과 함께 직접 거리로 나서게 된 지 21년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8시부터 2시간 동안 통장님은 방화동 1, 2, 3동 전체와 한서고등학교 앞 횡단보도, 송화초등학교 하이웨이 주유소 앞 도로를 주 무대로 신호등 역할을 자처했다.

춤추는 신호등답게 이씨의 트레이드마크는 현란한 율동이다. 그는 출근시간에 유독 길게 느껴지는 신호대기 시간을 운전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연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 체구에 맞게 여러 번의 변신을 거쳐 특유의 몸동작을 만들어냈다. 지금 그의 교통 수신호는 묘기에 가까운 수준이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눈에 띄는 빨간색 상의의 등 뒤에도 교통 캠페인 글귀가 보이도록 했다. 자신의 몸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통장님은 손수 작성한 A4 용지 크기의 전단지도 게시해왔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1) 잠깐만요! 운전하시는 아저씨, 아줌마! 지금 횡단보도에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들이 건너가고 있어요. 내가 먼저 신호를 지켜서 내 가정과 내 이웃의 행복을 다 같이 지켜갑시다. 2) 잠깐만요! 길을 건너시려구요? 주위에 노약자나 장애인이 없나요? 있다면 함께 손을 잡고 건너가세요. 내 이웃 사랑이 내 가정의 행복의 지름길입니다.…초록색 신호는 켜졌는데, 차가 달려오네요! 일단, 초록색 신호로 바뀌었어도 3초만 기다리시고, 그후에 좌우를 꼭 살피고 건너가세요. 나의 안전이 내 이웃의 행복이랍니다.'

보행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외쳐대는 그 소리는 또 어떠한가.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그러면 길을 건너던 시민들도 "우리 통장 파이팅!"이라고 큰 소리로 화답한다. 피곤하고 짜증나기 쉬운 출근길,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 그를 보고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초행 운전자들조차 그를 보는 순간 교통체증처럼 꽉 막혔던 답답한 마음이 시원하게 해소된다. 행복한 아침을 맞은 운전자들은 저마다 답례로 손을 흔들면서 지나간다.

주민들의 일체감과 애향심은 바로 이런 평범한 시민들을 통해 생겨난다. 그는 그동안 서울시 교통질서 위원회, 서울시 택시운행질서 계도위원, 시민자원경찰, 명예 환경감시 위원, 강서구민 안전봉사자, 강서구 깔끄미 봉사대장, 법무부 범죄예방 위원회, 강서구 한울봉사대 등을 통해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고, 지난 2008년 자리를 내놓기까지 가장 긴 경력으로 기록될 19년간 통장일도 맡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토요일이면 청소봉사에 나선다. 이철희 씨는 아마도 남은 인생 역시 즐겁게 봉사에 매진할 것이다. '작은 거인' 인간신호등은 주변의 이웃들에게는 여느 유명 연예인보다 더 인기 있는 유명인사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