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마을에 무슨 일이?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영옥

발행일 2012.02.07. 00:00

수정일 2012.02.07. 00:00

조회 2,968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서울시의 주택정책이, 전면 철거 후 재개발하는 기존의 뉴타운식 도심정비방식 대신 훼손된 주택과 공동시설을 개보수하고 마을 커뮤니티를 복원하는 마을공동체 중심의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그 중심축이 옮아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몇 년 전부터 재개발지역에서 낡고 노후가 심한 주택을 개보수해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 새로운 도심 ‘대안개발’ 을 실천하고 있는 곳이 있다.

성북구 삼선동 293번지 일대. 일명 장수마을이라 일컫는 이곳은 2004년 삼선 4구역 주택재개발사업 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구역 인근에 서울성곽과 삼군부총무당 등 문화재가 근접해 있고 주택지가 성곽 바로 밑 급경사 구릉지여서 수익성의 문제로 7년째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재개발이 추진되더라도 소득 수준이 낮은 원주민들이 조합원 분담금을 내고 이곳에 재정착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 이곳에는 50년 이상 된 주택 150여 채가 서울성곽 바로 밑 급경사지를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현재 220가구가 살고 있다. 노후가 심한 무허가 주택들이 많다 보니 도로 정비와 기반 시설 확충을 포함한 주거지 사업이 절실한 곳이다.

2008년 당시, 삼선 3구역에서 10여년을 살고 있던 녹색사회연구소 목수 박학룡씨와 주거운동 활동가모임인 주거권운동네트워크, 도시연구소. 성북 나눔과 미래, 인권운동사랑방, 한국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성북주거복지센터 등 시민단체가 삼선4구역 재개발지역에서 원주민들이 계속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대안개발을 모색했다. 2009년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이 합류해 장수마을의 면면을 그린 도면을 그리면서 2011년엔 뜻을 함께 하는 회원들이 더욱 늘어났다.

2008년 5월부터 장수마을 대안개발에 대해 함께 모인 시민단체들은 주말과 저녁시간을 이용해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재개발에 대한 설문조사와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재개발사업의 제도 변화와 사업 전망의 불투명한 상황 등에 대한 상세 정보를 제공했다. 시민단체들은 재개발방식을 적용해 실제로 장수마을에 테라스하우스나 다가구하우스를 짓게 된다면 비용이 얼마가 드는지 계산해 주민들에게 제시했다. 급경사지이므로 집짓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용적률도 많이 나오지 않았다. 토지가 국공유지이니 토지구입비를 계산에 넣고, 그간의 토지 임대비용도 제하는 등 여러 가지 요건을 감안해 최대 수익률을 산정한 개발안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현실성이 없었다. 약 2년간 ‘개발’ 에 대한 주민 의견을 모아나가는 과정에서 결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형편에 맞게 고쳐서 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라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재개발 재건축이 아닌 주민들을 위한 대안개발 시작

2010년 장수마을에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장수마을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주민 모임을 만들고, 빈집을 이용해 텃밭을 만들고 마을학교를 열어 집수리 교실과 골목디자인 사업을 펼쳤다. 마을을 위한 다양한 구상들을 설명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알렸고, 지역 재생을 위한 길을 찾았다. 뿐만 아니라 모두 이곳에서 잘 살 수 있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들도 제시했다.

외부의 도움도 있었다. 인근 한성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와 미디어디자인학부 학생 100여명이 장수마을 20여 가구의 담과 골목길, 계단에 화사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칙칙했던 마을은 이야기가 있는 골목길을 가진 동네로 거듭나며 명소가 됐다. 서민들의 주거환경이 고스란히 보전되고 있는 장수마을은 점차 마을 밖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2008년부터 마을 주민들과 마을을 위해 고민하고 소통한 결과 작년에는 마을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 마을기업도 만들 수 있었다. 작년 여름, 주민주도의 마을 만들기 사업을 위해 마을기업 동네목수(대표 박학룡)가 만들어졌다. 장수마을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박학룡씨를 중심으로 주민들 중 목공과 미장, 건축공사 현장에서 일을 배운 사람들을 모아 집을 고치는 일을 시작했다. 재개발 될 것이란 기대 때문에 7~8년 동안 보수를 하지 않고 미뤄놓았던 가옥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고치는 것이 새로 짓는 것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하나씩 천천히 마을의 허름한 곳들을 고쳐 나갔다. 지붕, 화장실, 수도를 고쳤고, 골목평상도 만들었다. 집주인의 허가를 얻은 마을의 빈집도 활용했는데, 한 채는 세입자 두 가구를 들이는 임대주택으로 보수했고 한 채는 주민들의 쉼터 겸 마을 카페로 리모델링 중이다. 서울성곽과 낙산공원 마을 골목길 탐방객들에게 음료를 팔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마을 내 부녀자들의 일자리 창출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작년 말엔 마을경로당 지하1층에 공방도 만들었다. 이곳은 집수리 자제 가공과 목공예작품 제작실로 사용되고 있다.

목수를 맡고 있는 정규직 1명과 공정별로 마을 주민 7~8명이 꾸준히 주택개보수에 참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약 30여명이 주거환경개선사업에 참여해 마을의 노후한 주택을 고쳤다. 이젠 마을기업 동네목수에게 집수리를 의뢰해 오는 주민들도 늘었다.

마을과 사람들이 변하다

마을기업 동네목수의 박학룡 대표는 “일을 하려고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이는 마을 주민들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앞으로 집주인들과 협의하여 마을에 대책 없이 빈 집으로 남아있는 곳들을 수리해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공동작업장 등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아마도 이 빈집들은 마을 재생의 거점 역할을 해 내리라 봅니다” 라고 밝혔다.

“다만 집주인이 비용을 들여 집을 고친 후 임대료가 크게 올라갈까 걱정인데, 임대기간과 보증금, 월세기간 등 마을협정을 통해 동네 임대료가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주택개량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동네 임대료 급상승을 막아야 세입자들에게 큰 충격이 없다”며 “행정이 든든하게 뒷받침해 준다면 주민들의 호응도 높아질 것이며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마을공동체가 큰 힘을 얻게 될 것” 이라며 행정의 지속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주거 안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장수마을의 사례는 대도시 노후지역 개발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고 주도해 자신들의 생활공간을 가꾸고 다스리는 일, 그것이 바로 진정한 마을 만들기의 본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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