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객들에게 짬뽕 대접해야 했던 어려운 시절의 결혼식

조인영

발행일 2011.04.07. 00:00

수정일 2011.04.07. 00:00

조회 2,460

서울시 한 자치구의 합동결혼식 장면

생각지 않은 행운이 우리 부부에게 굴러 들어왔습니다. ‘앙코르 결혼식’, 결혼 30년이 넘은 세 쌍이 신청했습니다. 5월은 결혼 시즌입니다. 많은 신혼부부들이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꿈을 꾸며 하나의 가정을 세워나가는 뜻 깊은 달이기도 합니다.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고 볼수록 아름다운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결혼식만큼 아름다운 것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결혼식 하면 아픈 기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결혼을 축해주러 오신 하객들께 중국집 자장과 짬뽕을 대접해야 했을 만큼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결혼식이었습니다. 그 흔한 커플링 하나 없이 식을 치르고, 평소에 입던 한복을 입은 채 신혼여행을 떠났지만 어찌 그리도 좋았던지 마냥 기쁘고 즐겁기만 했습니다. 나이가 그만큼 찼는데도 철이 없었던 걸까요? 첫날밤을 호텔 아닌 여인숙에서 보내고 돌아온 우리 부부. 그래서 그런지 남편은 가끔 우리 결혼식 다시 한 번 하자는 이야기를 곧잘 꺼내곤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가 살아 온지 33년이 지나버렸습니다.

막상 앙코르 결혼식을 하자니 남편이 창피하게 어떻게 하느냐며 정색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쑥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굴 여기저기 질서 없이 잡힌 주름이며, 거울에 비친 뱃살이 쓴웃음을 짓게 했지요.

이런 걱정과 우려도 잠시,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니 달라보였습니다. 웨딩드레스는 '웨딩플레지'에서 준비해주셨습니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드레스가 모두 새것이었죠. 그런 드레스를 무료로 대여해준다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들을 조금도 불편하게 대하지 않으셨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익 없는 일을 하게 되면 대충 형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웨딩 플레지 직원들은 이익 없는 아니 손해 보는 일을 하는데도 그렇게 밝은 미소로 이것저것을 입혀주면서 우리에게 꼭 맞는 드레스를 권해 주셨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웨딩 플레지가 대박나기를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드레스를 입고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 뒤 다음날 부산 해운대에 있는 조선 호텔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KTX를 타니 2시간 40분 만에 우리 3쌍을 부산역에 내려놓았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도착하니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3쌍의 부부가 밤늦은 시간에 그것도 특급 호텔에 들어 왔으니 의아해 하는 모습입니다. 차림새로 보아 특급 호텔에서 묵을 만한 사람들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티켓을 내어주니 팀장이나 되는 듯한 직원이 나오더니 밝은 미소로 대하면서 "늦으셨네요."라며 객실 키를 내어주었습니다. 이미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속 좁은 나는 내심 무료니까 바다가 보이지 않는 뒤쪽 객실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객실은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전망 좋은 최고의 객실이었습니다. 공기 좋고 경치 좋고 하루 묵고 가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죠.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던 아름다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성급한 사람들이 일찌감치 나와 수영을 하며 파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니 꿈인가 싶습니다. 이렇게 한가하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본 것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봤지만 쉽게 떠오르질 않습니다.

나름대로 가정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넘어서기 힘든 위기가 있었지만 위기를 잘 참고 견디다 보니 오히려 복이 되어 자녀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내심 안도하게 됩니다. 또 그래서 오늘과 같은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호텔 사장님과 관계자들께도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이제는 섬김을 받는 자에서 나도 남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 남을 행복하게 해주어야겠다는 마음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조인영(서울디딤돌 수혜 시민)

#복지 #아름다운이웃 #미담 #서울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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