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이제 홀로 서기에 도전합시다!
admin
발행일 2010.06.16. 00:00
과연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정상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다. 정상인은 틀린 말이다. ‘비장애인’이라 불러야 맞다. 기자는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체험 홈’을 방문하면서 특수 언어에 대한 무지를 절감했다. 또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마음 깊이 각인됐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면 누구라도 장애인이 되게 마련이다. “후천적 장애인이 97%로, 태어날 때부터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드물지요.” 지난 6월 11일 오후 3시, 송파구 거여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만난 김정훈(40) 사업팀장의 말이다. 김팀장 역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1급 중증장애인이다. 독일 유학 시절 뜻하지 않은 사고로 경추를 다쳐 장애인이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과정을 마친 실력파로 장애인 업무에 적격이었다. 장애인이야말로 그들 당사자의 아픔과 고통을 가장 잘 어루만져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현장인 홍대탁 씨의 아파트로 가는 길에 일부러 김팀장의 활동보조인을 자처했다. 다리가 마비된 김팀장은 손수 자가용을 운전하는 데 필요한 손잡이 제동장치를 사용했다. 먼저 휠체어에서 자가용으로 오르는 일이 만만찮았다. 기자는 우선 김 팀장의 마비된 다리를 운전대 밑으로 넣어 주었다. 다행히 그는 손을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몸을 의자로 옮겨 갈 수 있었다. 글씨를 쓸 때도 손가락 지지 도구를 사용할 정도인데, 하반신 이동은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옮겨 앉는 동안 다리가 부르르 떨렸다. 그래서 무릎을 항상 안전띠로 결박해야 한다. 기자는 휠체어를 뒷좌석으로 옮겨 싣고 운전석 옆에 앉았다. 운전하는 것이 안쓰러워 직접 운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비장애인은 손을 댈 수 없는 특수 제작된 운전대 탓이었다. 잠시나마 활동보조인 역할을 한 것이 뿌듯했다. 김팀장이 약간 의아해 하기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다고 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다뤄 보는 휠체어였다. 기자는 십여 년 전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휠체어를 다룬 적이 있었다. 그런 탓에 장애에 대한 여운이 절절했다. 홍대탁 씨를 만나다, 문정동 시영아파트 체험 홈 첫 입주자 자립생활 체험자인 홍대탁 씨가 기거하고 있는 송파구 문정동 시영아파트는 김팀장 같은 중증장애인이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장애인선수촌으로 사용된 아파트인 탓이다. 서울시는 이 아파트에 1호 체험 홈을 마련하고, 5월 28일 홍대탁(33, 지체장애 1급) 씨를 자립생활 첫 번째 체험자로 맞이하는 입주식을 했다. “허리를 다쳐 5급 장애인이 되신 어머니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지금 홀로서기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립 기회를 영영 놓칠 것만 같았어요. 제가 이런 좋은 기회를 얻은 데 대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10년 전 군복무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홍씨는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다. 홍씨가 머무는 공간은 방 2개, 거실, 화장실, 부엌 등 82.5㎡ 규모의 아파트. 전동 휠체어 이동이 편하게끔 아파트 입구가 경사로인 데다 현관문이나 방문, 화장실도 문턱이 없다. 방세나 공공요금 등은 시범운영 기관에서 해결하므로 자립체험 장애인은 생활비만 있으면 된다. 또 웬만한 살림은 다 준비되어 있어 옷가지 등만 가지고 들어오면 된다. 이와 함께 한 달 최대 200시간의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가 지원된다. 양발을 쓸 수 없는 홍씨를 위해 활동보조인이 매일 방문한다. 오전 4시간, 오후 3시간씩 하루 7시간 동안 식사 시간과 외출할 때 도와준다. 다소 부족하다 싶은 시간이지만, 홀로서기에 도전한 홍씨에게는 그나마 적지 않은 혜택이다. 홍씨는 체험 홈에 입주한 지 열흘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탓인지 취미로 사진 촬영도 종종 한다. 주로 인물 사진인데, 손이 불편한 관계로 카메라 셔터를 입으로 누른다. 몸은 비록 장애이지만 정신은 여전히 ‘비장애’인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후천적 중증장애인이 된 이후 홀로 서기를 처음 시작한 그는 어느덧 자신감을 얻었는지 얼굴이 무척 밝았다. 아무리 장애인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도 얼마든지 헤쳐 나아갈 수 있다는……. 전국 최초, 중증장애인의 홀로 서기에 서광 비춰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운동은 활동보조 서비스 확대, 개별 장애인 지원 강화, 주거 및 소득보장 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장애인을 바라보는 지역사회의 변화도 중요하지요.” 1급 중증장애인인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찬오(40) 소장의 말이다. 국내 최초로 장애인자립센터를 설립한 그는 서울연합회 회장으로서 이번 체험 홈 오픈에 일조한 주인공이다. 그는 선천성 장애인(척수신경 기형 장애)으로 태어나 초등학교는 물론 특수학교조차 못 다녔다. 그러나 온갖 역경을 딛고 중고등 검정고시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후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운동가로 나섰다.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쌓인 마음의 담을 허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2008년 4월 서울시 장애극복자 분야 복지상 대상을 수상한 그는 평생 이 일을 운명적인 업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이날 오후 5시, 박소장은 ‘24차 지적장애인 자조모임 및 피플 퍼스트 교토대회 결과 보고’ 행사도 가졌다. 중증장애인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에 대한 마음 씀씀이에서 그의 진정한 봉사정신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적장애인들에게 편안한 자리가 되게 하기 위해 과일을 준비하고, 센터 소장으로서의 권위를 깨고자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배려가 돋보였다. 그 역시 스스로 장애인이 아니면 쉽게 나올 수 없는 삶의 철학이다. 서울시는 지난 3월 공모를 거쳐 서울·광진·서초 자립생활지원(IL)센터 등 5개 시범운영 기관을 선정했다. 장애인 홀로서기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각 기관에 8,200만원(전세자금 7000만원, 운영비 월 100만원)씩 총 4억1000만원을 지원한다. 국내 최초로 실시하는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체험 프로그램’은 장애인에게 일정기간 자립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돕는 지원체계다. 시범운영 기간 중에는 5개 체험주택에서 10명 내외(주택당 1~2명)의 장애인이 입주해 자립체험을 하며, 운영 결과를 토대로 ‘장애인 홀로서기’의 역할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 체험 프로그램 참여를 희망하는 장애인은 인근 운영기관에 전화 또는 방문신청하면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장애인들이 집이나 시설에 갇혀 지내는 삶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터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문의: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 02) 404-0920, www.scil.or.kr | |||
|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