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한옥마을인 북촌은 그 자체가
문화유적지이지요
“북촌은 그 자체가 문화 유적지로서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일명 북촌촌장이라 불리는
(사)종로북촌가꾸기회 이형술 회장(64세). 북촌에 대한 그의 일관된 사랑과 노력으로 인해 그는 최근 서울사랑시민상(봉사부문)을
수상하였다. “이번 상은 우리 지역 주민 모두가 함께 받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북촌에 대한 강한 애정을 피력하였다.
북촌에서 생활한 지 40여년이 된 그이는 토박이 북촌 맨은 아니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북촌에 터를
잡은 때가 1958년. 그리고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는 이형술씨는 북촌에 사는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매력 또한 새로워져
이제는 헤어날 수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처음부터 북촌의 역사성에 대해 생각하고 일을 벌인 것은 아니었어요. 1980년대 후반
무렵 정부는 북촌을 제4종 미관지구와 한옥보존지구로 발표했고 그 이후 북촌은 보존지구라는 틀에 묶인 동네로 바뀐
거예요.” 보존지구로 묶이면서 북촌주민들은 한바탕 홍역을 치뤘다. 가장 시급한 것은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와 집을 수리하지 않으면
인명사고가 날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임에도 개?보수 금지로 묶인 지역주민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만으로 북촌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공서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서울 정도 6백년의 역사성
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이다. “우리 북촌은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과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 및
종묘 사이에 위치한 전통한옥마을입니다.” 그는 마음이 조금씩 바빠졌다. 단순히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서가 아니라 북촌을 잘
살려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한옥마을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순간부터 그것이 그에겐 풀어야 할 과제로 주어진다.
그리고 91년도에 (사)종로북촌가꾸기회를 건설부 산하 법인으로 정식 등록하고 지금까지 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
그와 주민들은 북촌의 4종 미관지구 해제와 한옥보존지구의 올바른 정책 이행을 촉구하며 북촌가꾸기에 공을
들였다. 그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는지 1999년 정부는 건축미관심의제도를 폐지하였고 서울시는 북촌한옥보존 정책을 실시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만 5천여평에 이르는 북촌엔 현재 1천여채의 전통한옥과 1백여개의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있어 가히 북촌 자체가
문화유적지라는 말에 손색을 없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 가회동 소나무길을 아십니까?
북촌 가꾸기 회장을 역임하면서 그는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먼저 1999년 가회동 길을
정비하면서 2백여그루의 소나무를 도로변의 가로수로 심은 일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 “도로변에 어떤 나무를 심어야 우리 북촌의
품격을 그대로 살려낼 수 있을 것인지와 관련하여 종로구청 담당자와 주민들이 모여 10여 차례에 걸쳐 회의를 했어요.” 무궁화다,
은행나무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이미 소나무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조사를 마친 그는 강력하게 소나무로 심자고 의견을 내 놓았고
가로수로 소나무가 적당하지 않다는 반대 의견들을 일일이 설득하며 구청 측에 의견을 전달하였다. 구청 측에서도 그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였다. 그리고 그는 직접 안면도로 가 홍송들을 살펴보고 가장 적당한 나무 2백여 그루를 가져다 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현재 소나무는 잘 자라 그가 말한 바대로 북촌의 품격을 살리는데 제대로 한 몫 하고 있다.
한편 그는 땅위로 거미줄 마냥 얽혀 있어 북촌의 이름과 걸맞지 않은 전신주, 통신주, 케이블 선 등을
모두 땅 속으로 매설하는 작업을 요구하였고 지금 한창 그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전통 거리라고 하는 곳에 전선들이 삐죽이
나와 흉하게 서 있다면 이 자체가 완전 옥에 티라는 생각에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이 부분과 관련 민원을 제기했지요.”
■ 사업체 부도로 시련도 겪었지만 후회는
없다...
물론 그의 성과 중 최고로 치는 일은 역시 북촌마을의 역사성을 최대한 살려낸 일이다. 이 일을 하면서
그는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시련도 겪어야 했다. 전국건축자재연합회장직을 수행할 정도로 을지로에서 대형 건축 자재 사업을 벌이던
그는 사업가보다는 북촌촌장에 더 매진한 나머지 자신이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 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재를 털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지의 고도를 돌며 선진 외국의 고도관리를 연구하는 한편 북촌 주민의 숙원사업 해결로 늘 바빴던 그에겐 자신의 사업체를
관리할 여력이 없었던 것.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가 애쓴 보람들이 가시화되면서 북촌 가꾸기 사업은 이미 그 토대를
굳건히 마련했기 때문. “북촌에 마련된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외국인들이 엄청 늘었어요. 이들이 결국 우리 북촌, 나아가서
서울과 우리나라의 홍보를 대행해 주지 않겠습니까?” 또 사람들의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 이제는 지방에 있는 사람들도 서울에
오면 대형 호텔이나 여관 보다는 게스트 하우스에 투숙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곳에 마련된 우리의 전통체험이 부가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 ‘석정골 보름 우물터’의 복원이 당면과제죠
이미 종로구 1,2,3대 의원을 역임한 이형술씨는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북촌 가꾸기 사업엔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집 바로 앞에 있는 ‘석정골 보름 우물터’ 복원이 북촌가꾸기회에서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라고 이야기 한다. “석정골 보름 우물터는 김대건 신부가 도피 생활을 할 당시 이곳에서 은닉생활을 하셨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 우물물은 그 분이 직접 드셨던 물이구요.” 그랬던 곳이 관리 소홀로 우물터는 슬레이트로 만든 지붕을 바치고 있는 등
그냥 흔적만이 엿 보일 뿐이다. 이형술씨는 이곳을 우물과 어울리는 정자로 지붕을 바꾸는 한편 지하수를 끌어 올려 예전에 김 신부가
마셨던 물을 현대인들도 마시며 살 수 있기를 꿈꾼다.
이형술씨는 이 일을 하면서 대가를 바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이야기 한다. 오히려 자신의 사재를 털어
꾸려야 하는 북촌가꾸기회이다. 그러나 그에겐 이 일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다만 그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로마가 전 세계인의 이목과 사랑을 받는 도시이듯이 북촌도 그 전통을 잘 살려 보존하면 후손들에겐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될 거라는 그 믿음 하나가 오늘도 그를 북촌에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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