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생생한 왕실 가족사가 느껴지는 창경궁

시민기자 양인억

발행일 2020.10.06. 17:57

수정일 2020.10.06. 17:57

조회 347

창경궁은 서울의 5대 궁궐 중 3번째로 지어진 조선시대 궁궐로 창덕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렀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왕실 가족도 늘어났다. 성종 때 세 분의 대비(세조 비 정희왕후, 예종 비 안순왕후, 덕종 비 소혜왕후)를 함께 모시고자 창덕궁 곁에 마련한 궁궐이 창경궁이다. 다른 궁궐과 달리 왕실 생활 공간의 확장을 목적으로 태종이 상왕으로 있으면서 지내던 수강궁을 중건하고 정전인 명정전, 정무를 보는 문정전 등을 지어 작은 규모이지만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다. 창경궁은 왕실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출발하였기에 내전이 외전에 비해 더 넓은 특징이 있다. 따라서 창경궁에는 왕들의 효심과 사랑, 왕과 세자의 갈등, 왕비와 후궁 간의 암투 등 왕실 가족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가 풍부하게 전해온다.

창경궁은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었다. 창경궁 최악의 치욕은 일제강점기 당시 전각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1909년 일반에 개방한 것이다. 순조를 위로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일제의 속내는 우리 궁궐의 권위를 격하시키려는 데 있었다. 광복 이후에도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동물원이자 행락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1980년대 창경궁으로 복원되면서 그 치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평소에도 다른 궁궐보다 관람객이 적어 여유로운 창경궁은 코로나19로 더욱더 한가로워졌다. 문정문 보수 공사로 일부 공간을 관람할 수 없는 아쉬움이 조금 있었지만, 가을의 화려한 꽃, 꽃무릇을 자생화단에서 만난 것은 생각하지 못한 행운이었다.


남행각에서 바라본 홍화문과 옥천교.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뒤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궁궐의 정문 중 가장 오래됐으며, 옥천교는 창경궁의 금천인 옥천에 놓인 다리이다
남행각에서 바라본 홍화문과 옥천교.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뒤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궁궐의 정문 중 가장 오래됐으며, 옥천교는 창경궁의 금천인 옥천에 놓인 다리이다 ⓒ양인억

명정문 앞 북행각 위로 회화나무와 가을 하늘이 조화를 이룬다. 회화나무는 궁궐에 즐겨 심던 나무로 옛날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가 나온다하여 '학자수(scholar tree)'라고 불리기도 한다
명정문 앞 북행각 위로 회화나무와 가을 하늘이 조화를 이룬다. 회화나무는 궁궐에 즐겨 심던 나무로 옛날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가 나온다하여 '학자수(scholar tree)'라고 불리기도 한다 ⓒ양인억

명정(明政)이란 '정사를 밝게 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궁궐의 정전과 달리 홍화문을 따라 동향이다. 정전 내부는 단청을 새로 하지 않아 고색의 은은함이 정겹다. 천정의 소란반자는 구름 속을 날고 있는 봉황으로 장식했다
명정(明政)이란 '정사를 밝게 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궁궐의 정전과 달리 홍화문을 따라 동향이다. 정전 내부는 단청을 새로 하지 않아 고색의 은은함이 정겹다. 천정의 소란반자는 구름 속을 날고 있는 봉황으로 장식했다 ⓒ양인억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과 편전인 문정전 사이의 익랑. 익랑은 건물의 측면이나 뒤편에 돌출되게 잇대어 붙인 행각으로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 창경궁에서 볼 수 있다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과 편전인 문정전 사이의 익랑. 익랑은 건물의 측면이나 뒤편에 돌출되게 잇대어 붙인 행각으로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 창경궁에서 볼 수 있다 ⓒ양인억

익랑 안쪽에서 본 모습. 명정전과 문정전을 오가는 왕을 위한 길로 붉은 기둥과 은은한 단청으로 치장한 지붕의 나열이 아름답다.
익랑 안쪽에서 본 모습. 명정전과 문정전을 오가는 왕을 위한 길로 붉은 기둥과 은은한 단청으로 치장한 지붕의 나열이 아름답다 ⓒ양인억

명정전 뒤편에서 빈양문으로 연결된 복도각(천랑). 천랑은 건물의 앞뒤 중앙에서 빠져나온 구조물로 이 곳 이외에 창덕궁의 선정전 정면에서 선정문으로 연결된 천랑이 남아 있다
명정전 뒤편에서 빈양문으로 연결된 복도각(천랑). 천랑은 건물의 앞뒤 중앙에서 빠져나온 구조물로 이 곳 이외에 창덕궁의 선정전 정면에서 선정문으로 연결된 천랑이 남아 있다 ⓒ양인억

왕이 일상의 업무를 보는 편전인 문정전은 남향으로 일제에 의해 헐렸다가 1986년 재건되었다. 문정전은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른 임오화변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왕이 일상의 업무를 보는 편전인 문정전은 남향으로 일제에 의해 헐렸다가 1986년 재건되었다. 문정전은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른 임오화변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양인억

함인정은 사방이 터진 개방형 건물로 왕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현재 건물은 1883년에 재건된 것이며 주위에 있는 소나무들이 멋을 더하고 있다.
함인정은 사방이 터진 개방형 건물로 왕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현재 건물은 1883년에 재건된 것이며 주위에 있는 소나무들이 멋을 더하고 있다 ⓒ양인억

궁궐 여인들의 공간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태어나고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전각이다.
궁궐 여인들의 공간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태어나고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전각이다. ⓒ양인억

왕비의 침전이 통명전은 내전의 중심 공간으로 내전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월대와 앞마당이 있어 궁중 연회가 열리던 곳이다
왕비의 침전이 통명전은 내전의 중심 공간으로 내전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월대와 앞마당이 있어 궁중 연회가 열리던 곳이다 ⓒ양인억

통명전 동쪽의 전각인 양화당 내부를 통해 본 집복헌의 지붕. 양화당은 대비의 침전이지만,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던 인조가 돌아와 거처한 곳이다
통명전 동쪽의 전각인 양화당 내부를 통해 본 집복헌의 지붕. 양화당은 대비의 침전이지만,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던 인조가 돌아와 거처한 곳이다 ⓒ양인억

자경전 터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바라본 집복헌의 지붕. ‘ㅁ’ 구조의 지붕과 2개의 굴뚝이 아름답다.
자경전 터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바라본 집복헌의 지붕. ‘ㅁ’ 구조의 지붕과 2개의 굴뚝이 아름답다 ⓒ양인억

자경전 터에서 춘당지로 가는 숲길에서 만나는 성종대왕 태실과 태실비. 연꽃잎을 형상화한 지붕과 돌난간 조각이 인상적이다
자경전 터에서 춘당지로 가는 숲길에서 만나는 성종대왕 태실과 태실비. 연꽃잎을 형상화한 지붕과 돌난간 조각이 인상적이다 ⓒ양인억

춘당지는 왕이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라는 논이 있던 곳으로 1907년 일제가 창경궁을 동·식물원으로 바꾸면서 일본식 정원으로 꾸미기 위해 조성한 연못이다

춘당지는 왕이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라는 논이 있던 곳으로 1907년 일제가 창경궁을 동·식물원으로 바꾸면서 일본식 정원으로 꾸미기 위해 조성한 연못이다 ⓒ양인억

창경궁 대온실 옆 자생화단은 우리의 자생화를 심어 가꾼 곳으로 궐내 자연 학습장으로 운용되는 곳이다. 가을인 요즘 꽃무릇이 화려함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창경궁 대온실 옆 자생화단은 우리의 자생화를 심어 가꾼 곳으로 궐내 자연 학습장으로 운용되는 곳이다. 가을인 요즘 꽃무릇이 화려함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양인억

■ 창경궁
○ 위치 :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85 
○ 운영시간 : 09:00 ~ 21: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입장료 : 1,000원

○ 홈페이지 : http://cgg.cha.go.kr/agapp/main/index.do?siteCd=CGG
○ 문의 : 02-762-4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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