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도심 속 조선의 흔적, 한양도성
발행일 2020.07.01. 18:01
한양도성 흥인지문구간은 장충체육관에서 광희문을 지나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약 1.8km의 구간이다. 장충동에서 광희문까지의 주택가에서는 대부분의 성벽이 멸실되었으나 몇 군데에서 주택의 축대로 사용되고 있는 성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광희문은 한양도성의 동남쪽에 있는 문으로, 시구문 또는 수구문으로도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무덤을 도성 안에 둘 수 없어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성 밖으로 내보내던 곳이 광희문과 소의문이었다.
광희문과 흥인지문 사이에 있는 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다. 1925년 일제는 일본 왕세자 결혼 기념으로 이곳에 경성운동장을 지으며 성벽을 헐어 내거나 매립했다. 해방 후에는 서울운동장으로, 이후 다시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되었으며 2007년에 철거되었다. 당시 철거 과정에서 땅속에 묻혀 있던 성벽의 일부와 이간수문, 건물의 유구 등이 발굴되었다.
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동대문에 해당한다. 다른 문과 달리 이름이 네 글자인 이유는 동쪽의 지대가 낮아 기운이 쉽게 빠져나간다고 여겨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之)'자를 추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의 흥인지문은 1869년(고종 6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광희문까지 제법 분위기 있는 길이 이어진다 ⓒ이정규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광희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이정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에 성벽의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좌측에 네모나게 튀어나온 곳이 치성이다 ⓒ이정규
발굴된 조선시대 건물지 유적과 보존되어 있는 옛 동대문운동장 조명탑 ⓒ이정규
남산 방면에서 내려온 물을 청계천으로 내보내던 두 칸짜리 수문인 이간수문 ⓒ이정규
인왕산, 백악산 등에서 내려온 물을 청계천으로 내보내던 오간수문을 재현했다 ⓒ이정규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인(仁)'을 북돋우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정규
1907년에 좌우 성벽이 철거되어 지금과 같이 문만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정규
흥인지문 앞에는 적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반달 모양의 옹성을 설치하였다 ⓒ이정규
■ 한양도성 흥인지문구간
○ 장충체육관에서 출발하는 경우: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도보 2분 GS25 옆 좌측 길
○ 흥인지문에서 출발하는 경우: 지하철 1, 4호선 동대문역 6, 7번 출구
○ 홈페이지: https://seoulcitywall.seoul.go.kr/index.do
○ 문의: 02-2133-2657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