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과 서울역사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4.03.03. 00:00

수정일 2004.03.03. 00:00

조회 1,457



시민기자 진홍청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을 찾아보거나 서울의 한 복판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남산을 오른다거나 600년 서울의 역사와 함께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건너보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성 싶다. 그만큼 바쁜 생활에 얽매이다보니 행동반경과 운신의 폭이 나날이 좁아진 듯하다. 어찌 보면 고도로 발달된 문명 이기 속의 현대인은 삶의 주관자가 아니라 거대한 조직과 작위적인 환경의 종속자일런지도 모른다.

올 겨울도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런지 모두가 걱정이었는데 때맞춰 음력 설날명절을 전후해서 수도관이 얼어 터지는 강추위로 몸마저 움츠려들었으나 오늘은 예년 기후를 되찾은 듯 포근한 기온 덕에 서울의 애환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서울역을 찾아보기로 했다.
특별히 기차를 이용하기 전에는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인 서울역을 직접 찾아가보니 적벽돌 역사 벽면에 ‘고속철도 서울역사 운행’이란 현수막이 서너 군데 걸려 있었다. ‘100미터 남쪽으로’라는 안내 문구 따라 걸어가 보니, 그간 몇 차례 서울역 앞을 지나면서도 눈에 띄지 않았던 고속철도 시대의 새로운 서울역사가 웅장하고 미끈한 자태로 환하게 웃고 다가가는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 9월에 일본인의 손에 의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경성역이 지어진이래
민족 역사의 굴곡과 기차 여행객의 저마다 기막힌 애환들이 엮어진 서울역이 이제는 서울시의 문화재로 물러앉게 된 것이다. 그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미운 사람 고운 사람, 좋은 짐 나쁜 짐, 가림 없이 힘껏 태워 주고 실어 주었던 수고를 접고 이젠 편히 쉬면서 후세인에게 지난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주는 역할을 부탁받은 몸이 된 것이다.

내가 서울역을 만난 것은 4,5살 때쯤으로 부모님 따라 이모님 시집가실 때였고, 그 전에도 개성을 갔다 왔다는데 부모님 말씀으로 전해들을 뿐, 너무 어리 던 나는 기억이 흐리다. 그 이후 한국전쟁으로 피난 갔다가 다시 서울역을 통해 귀경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껏 생생한
감격으로 남아 있다. 군대에 가서 첫 휴가도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들어왔고, 자립해야 할 시기에도 서울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단신 부산으로 첫 직장 생활을 나갔으며, 마음 졸이며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세상에 하나 뿐인 여성을 만나러 경주에 갔던 사연도 서울역에서 출발되었다.

그밖에도 모두들 가슴 뜨겁고 손 차가운 사연들을 안고 서울역을 드나들던 승객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던 서울역이 2000년 5월22일부터 2003년12월30일 사이에, 이제는 우리의 숙련된 손과 건축술로 거대하고 세밀하게, 에스컬레이터가 역 광장에서부터 설치되어 있고, 휠체어 장애인과 노약자를 배려한 완경사로가 있는가하면, 열차 노선별 홈마다 이들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준비되어 있고, 도우미까지 대기 상태였다.
개찰구도 휠체어가 마음대로 지나 갈 수 있는 넓은 통로가 별도로 있는 등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편리하고 여러모로 의미가 다른 새로운 ‘서울종합 민자역사’가 건립된 것이다.
좋은 날, 가벼운 발걸음으로 새로운 서울의 상징 하나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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