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버스를 타고

내손안에서울

발행일 2003.11.13. 00:00

수정일 2003.11.13. 00:00

조회 2,244


시민기자 전흥진



인사동에서 재미있는 볼거리에 취해 다니다, 한번쯤 타보려고 벼르던 미술관 버스를 타기로 했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버스에 오르자 친절하고 유머가 있어 보이시는 기사님 이 “이번이 오늘의 마지막 운행시간이라 노선 중간에 내렸다 다시 타는 여유 있는 미술관 관람은 힘드시겠네요.“ 했다.

미술관 버스는 노란 은행잎이 눈처럼 휘날리는 멋진 경복궁 앞을 지나 청화대 안쪽 가까이까지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오늘 미술관 버스가 지나는 노선은 내 어릴 적 추억이 가득 남아있는 옛 동네 들이었다. “저기가 경기 고등학교 자리야. 학교 언덕 을 올라가서 맛있는 오디를 많이 따먹었는데.... 저 길은 삼청 공원을 가던 길이고 청화대 안쪽 뜰도 일년에 한 두 번씩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놀러가곤 했지.“ 나도 모르게 깊은 감회에 젖어 혼잣말을 중얼거렸나 보다.

마침 기사님도 어린시절을 그 동네에서 자라셨는지, 반가워하며 곳곳의 역사와 기념이 될만한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저 기와집은 원래 대원군의 별장이 있던 자리에요. 대원군의 호를 따서 ‘석파랑’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지금은 한정식 음식점으로 바뀌었지요. 석파랑 담장 위로 예쁘고 먹음직스런 주황색 감들이 풍성한 가을을 전해준다.

저곳은 아들이 왕이 된 후궁들을 제사지내는 칠궁이에요. 왕비 들은 죽어서 종묘에 묻혔지만 후궁은 아들이 왕이 되어도 종묘 에 묻힐 수가 없어서..... 여기가 어딘 줄 알아요 그 유명한 ‘궁정동의 안가’ 자리가 지금은 시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무궁화 동산’이 되었지요.“ 가나아트센터까지 30 여분 간 포근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즐긴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멋진 북한산의 병풍아래 위치한 미술관은 벌써 어둠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풍경 좋고 공기 좋기로 유명한 평창동 언덕 위에는 세련된 예술적 감각을 느끼게 하는 크고 작은 미술관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가나아트센터로 들어섰다. 사실 오늘 나의 목적은 미술관 버스를 한번 타보는 일이었기에 누구의 무슨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한쪽에서는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삼불 김원용 (1922-1993) 문인화’라는 안내 플랭카드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매,난,국,죽이나 산수화 정도의 동양화만을 예상했다. 그림의 문외한 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속옷 바람으로 밥하는 모습을 그린 것, 누워서 책보는 모습, 술 마시는 모습, 책을 베고 자는 모습 등 동양화 라기 보다 는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생활화 같았다. “사람의 목숨은 밥 먹는데 메어 있고, 인명은 호흡하는데 있다. 인생은 석화처럼 짧다. 사람은 본래 가진 것이 없는 무일물 이다.“ 그림마다 화백의 짧은 글이 곁들여 있었는데, 가장 당연 하고 가장 단순한 선승의 삶을 사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미술관 정원 테라스에서 북한산 끝자락부터 지는 해를 받는 조각들 주위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서울에 미술관 버스가 생긴지 5년이 되었는데, 시국이 어수선 해서 그런지 요즈음이 가장 손님이 많을 때인데 올해는 손님이 별로 없다고 하셨다. 미술관 버스로 서울에서 가장 조용하고 멋스런 도로를 클래식 음악을 틀고 여유 있게 운행하니, 좋은 음악과 드라이브를 즐기고 싶어서 자주 애용하는 분들도 계시다고 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한번쯤 멋스러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미술관 버스 를 타보는 것은 어떨까

●가나아트센터 안내

전화 720-1020
전시실 외에도 1층에는 빌 레스토랑이 있고, 지하에는 옛 생활 공간의 상설전시전이 열리는 ‘미루’가 있다. 각종 미술 강좌 들이 열리는 교육공간과 야외 조각들이 있는 정원도 있다.

●미술관 버스 안내

인사아트센터에서 1시부터 6시까지 매시 출발(월요일은 운행안함)
가나아트센터 출발은 12시 35분부터 5시 35분까지 매시 35분 출발
* 버스요금 1000원(가나아트센터 입장시 버스요금 영수증을 보이면 1000원을 할인해 주고 환기미술관 입장시에는 500원 할인해 준다.)
* 운행노선
인사차트센터 출발-아트선재-중앙박물관-환기미술관-가나아트센터/
김종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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