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에서 만난 특별 전시 '철마의 길, 철로 위의 사람들'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20.11.16. 14:45

수정일 2020.11.16. 14:57

조회 2,104

"차마다 모두 바퀴가 있어 앞차에 화륜이 한 번 구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따라서 구르게 되니 우레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처럼 날뛰었다."

1876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기수는 여행방문록인 ‘일동기유(日東記遊)’에 처음 본 기차를 이렇게 표현했다. 신기함과 놀라움 속에 등장했던 기차와 함께 우리나라의 철도 발전사를 기록물로 살펴보는 전시가 용산역 3층 맞이방(대합실)에 마련됐다.

경인선 완전 개통 120주년 기념 기획전시가 용산역 3층 대합실에서 열리고 있다.

경인선 완전 개통 120주년 기념 기획전시가 용산역 3층 대합실에서 열리고 있다. ⓒ박분

‘철마의 길, 철로 위의 사람들’전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과 한국철도공사가 경인선 완전 개통 12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전시로 크게 5개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기차를 불을 내뿜으며 달리는 수레, 즉 ‘화륜거’로 소개한 ‘일동기유’와 함께 경인철도 기공식 사진, 한강철교 사진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철도 개업식 기사가 난 1899년 9월 19일자 독립신문

철도 개업식 기사가 난 1899년 9월 19일자 독립신문 ⓒ박분

1899년, 독립신문에 난 철도 개업식 기사가 실렸던 신문지면도 흥미롭다.

경인선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통한 철도로 1897년에 착공했다. 1899년 경인선의 첫 기적이 울리면서 인천~노량진 구간이 일부 개통되고 1900년 인천~서울이 완전 개통되었다.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 같아 천지가 진동한다” 국내 최초로 개통된 경인선을 시승한 경이로움을 묘사한 내용 중 일부이다. 당시의 경인선이 서울에서 인천까지 걸어서 12시간 걸리던 것을 1시간 40분으로 줄여주는 혁신적인 문물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문물을 기록한 일동기유 외 철도 관련 기록물들이 전시됐다.

일본의 문물을 기록한 일동기유 외 철도 관련 기록물들이 전시됐다. ⓒ박분

전시장에는 일본의 문물을 기록한 ‘일동기유’ 외에도 쉽게 볼 수 없는 철도 관련 기록물들이 나와 있다. 국내 철도규칙을 최초로 반포한 ‘고종실록 34권’, 경인선 복선 용지도, 해방 전 경부선의 선로 도면 등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철도 시작의 역사를 짚어볼 수 있다.

2부에서는 일제 강점기 수탈의 수단이기도 했던 기차의 또 다른 모습을 사진과 기록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철도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슬픔과 좌절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삼의사 유해자가 서울로 봉화되는 해방자호 사진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삼의사 유해자가 서울로 봉화되는 해방자호 사진 ⓒ박분

일본어로 ‘빛’이라는 뜻을 지닌 ‘히카리’ 열차가 광복을 맞아 ‘해방자호’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철도는 함께하며 버텨냈다. 해방자호(解放者號)는 194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특급열차로 운행한 열차의 이름이다. 일제에 의해 조선의 곡물과 물자, 인력 등을 끊임없이 수탈하기 위해 사용된 기차는 역설적으로 독립운동의 장면에도 등장한다.

전시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삼의사 유해가 조선해방자호 편에 의해 서울로 봉환되는 사진이 보인다. 기차는 만세 운동이 각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하고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고 때로는 독립운동가의 유해를 고향으로 모셔오는 고마운 발이 돼주기도 했다. 이봉창 의사가 용산역에 근무하던 철도 직원이었다는 사실도 전시를 통해 새삼 알게 되었다.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의 유라시아 횡단 철도 승차권도 흥미롭다.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의 유라시아 횡단 철도 승차권도 흥미롭다. ⓒ박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유라시아 횡단 철도 승차권도 시선을 끈다. 손기정이 베를린 갈 때 썼던 기차표다. 영어로 ‘도쿄-베를린’이라고 인쇄된 기차표 윗부분에는 ‘382번 손기정’이란 글씨가 적혀있는데 그의 등번호이다. 1936년 그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시베리아횡단 철도를 이용했다. 낡은 차표 한 장 불끈 쥔 채, 부푼 꿈과 나라를 잃은 설움을 동시에 느꼈을 청년 손기정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기차를 타는 일은 즐거운 기억이었던 것 같다. 기차 매표소 모습, 기차 승강구에서 활짝 웃는 사람들 등 여러 장의 밝은 사진들이 보인다. 그 중 1945년에 촬영한 ‘기차를 탄 사람들’이라는 사진 앞에서 그만 웃음이 빵 터진다. 안전을 위해 기차 승강구에 새끼줄을 친 모습이라니!

전쟁 당시 한강철교를 건너는 기차의 모습이 담겨있다.

전쟁 당시 한강철교를 건너는 기차의 모습이 담겨있다. ⓒ박분

3부는 6·25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군수품, 피난민을 싣고 달리는 기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 폭격으로 많은 기차와 철도시설이 파괴됐지만 선로 위에서 기차는 멈추질 못했다. 한강철교를 건너는 기차의 모습은 아슬아슬 하기만하다.

남행열차에 승차하는 피난민들이 담긴 사진들은 차마 발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열차에 타려고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광경을 기차는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전쟁 통에 사람들과 함께 부대낀 기차의 모습은 영상물을 통해서도 목격된다. 피난민을 지붕까지 빼곡히 실은 기차는 위태롭게 움직였다. 천둥 같은 기적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철길을 하염없이 내달리는 기차의 모습에 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1950년 12월 경의선 장단역에서 폭격을 맞아 탈선한 증기기관차의 모습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군데군데 포탄 자국이 보이는 이 기관차는 2004년에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1950년 폭격을 맞아 탈선한 증기기관차의 모습

1950년 폭격을 맞아 탈선한 증기기관차의 모습 ⓒ박분

4부는 산업화 시기 기차의 발전과 함께 변화하는 일상을 담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의 서명이 든 고속도로 신국제공항 건설계획서, 경부고속철도 시험 운행에 탑승한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한 우리의 철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고속철도인 KTX가 개통되면서 한국의 철도가 대표 교통수단으로 성장해 왔음을 체감해 본다.

그리움으로 남은 수인선 협궤열차의 기차 속 풍경도 사진과 영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수인선은 협궤노선으로 보통의 선로보다 궤간이 좁은 점이 큰 특징으로 꼬마열차로도 불렸다.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처음 만들었지만 해방 이후에는 많은 시민들의 발이 되어 수원에서 인천을 오가며 애환을 함께 했다. 1937년 개통돼 50년 넘게 운행하다 수인산업도로 개통으로 효용 가치가 떨어지면서 1995년 폐선됐다. 5부는 분단으로 끊어진 철도가 다시 이어지는 미래를 희망하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전시회를 관람 중인 시민

전시회를 관람 중인 시민 ⓒ박분

전시를 관람하는 한 시민의 등 뒤로 분단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끊어진 철도 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철도 중단점 사진이다. 한반도와 대륙을 지나 역사의 연결고리를 잇는 희망의 선로를 다시금 기대한다며 전시는 끝을 맺고 있다.

‘철마의 길, 철로 위의 사람들’ 전시는 용산역에서 11월23일까지 열리며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다.

‘철마의 길, 철로 위의 사람들’  전시는 용산역에서 11월23일까지 열리며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다. ⓒ박분

기차를 소재로,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중요 기록물들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용산역에서 11월 23일(월)까지 진행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이며 코로나19로 직접 관람이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국가기록원 누리집에서 ‘온라인 전시’도 진행 중이다.

 ‘철마의 길, 철로 위의 사람들’ 전시
○ 기간 : 2020. 11. 9. (월) ~ 11. 23. (월) 09:00~21:00
○ 장소 : 용산역 3층 대합실
○ 온라인 전시 : 국가기록원 누리집(www.archive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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