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역사 산책! 서울 속 명품 계곡 '백사실 계곡'
정명섭
발행일 2019.03.18. 16:54

백사실 계곡 입구에 자리한 현통사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29) 백사실 계곡
내 어머니에게 자하문 너머의 세검정은 자두 밭으로 기억된다. 오래전 기억이고, 분명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겠지만 어머니에게 세검정은 눈처럼 하얀 자두 꽃이 피는 자두 밭 천국이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이 일대는 한양과 가까우면서도 풍광이 아름다워서 임금을 비롯한 사대부들이 자주 놀러갔고, 별서들이 가득했다.
특히 백사 이항복의 별서가 있어서 백사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는 백사실 계곡은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다. 서울이 팽창하고 개발되면서 세검정의 자두 밭은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백사실 계곡은 그대로 남았다. 세검정 우체국을 지나 현통사를 거쳐 처음 백사실 계곡에 접어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혜화동의 낙산도 조용하고, 우리 동네 뒷산도 조용하지만 백사실 계곡의 고요함은 차원이 달랐다. 등산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지리산 같은 큰 산에서나 느낄 수 있던 고즈넉함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이곳은 단순하게 조용한 곳이 아니라 깨끗하고 맑은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 그래서 각종 새들과 개구리들은 물론 1급수에서만 사는 도롱뇽까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코스는 여러 개가 있다. 하지만 산책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다녀오고 싶다면 세검정 우체국 뒤편으로 가서 현통사를 통해 부암동으로 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현통사를 지난 후에는 도롱뇽들이 서식하는 개울을 따라 이어지는 백사실 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 들어가면 일단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미세먼지나 숨이 막히는 매연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도심 한복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해도 이상하지 않는 곳인데도 새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이곳에 함께 왔던 일행들 차와 사람들로 가득한 광화문 광장에서 4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는 곳이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백사실 계곡에 들어서면 누구나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한다. 평생 도시에 살았고, 자동차와 스마트 폰, 인터넷을 끼고 살았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물가에서 뛰어노는 개구리를 보면서 즐거워한다. 아마 인간이 원래 도시가 아니라 자연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계곡 안에는 별서 터와 연못이 있는데 백사 이항복이 머물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백사실 계곡 별서 터

많은 수생식물과 곤충, 동물들이 사는 백사실 계곡 큰 연못
이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백석동천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나온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이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부암동에 도달한다. 마치 시치미를 뚝 뗀 것처럼 자연이 끝나고 도시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부암동 역시 자연과 닮은 곳이다. 야트막한 집과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보면 먼발치에서 인왕산이 보인다. 날씨가 좋다면 인왕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산은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라는 철학을 십 년 넘게 고수 중인 나에게도 정말 아름답게 비춰진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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