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은 약보다 강하다"

강원국

발행일 2016.08.22. 15:23

수정일 2016.08.22. 17:24

조회 890

꽃ⓒnews1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44) 정신적 변비에서 탈출하자 - 글쓰기로 정신건강 유지하기

“펜은 약보다 강하다.”
1932년 일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버러 대너(Deborah Danner)는 노트르담 교육 수도회에 소속된 수녀 180명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진술서를 쓰게 한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1990년 초에 이를 분석해봤다.

‘사랑’, ‘즐거움’, ‘만족’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쓴 상위 25%의 10명 중 9명이 85세까지 장수한 반면, 긍정적인 단어를 적게 쓴 하위 25%는 10명 가운데 3명 정도만 생존해 있었다. 긍정적인 단어 사용이 장수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2004년 미국 텍사스 대학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Pennebaker) 교수는 이런 실험을 했다. 두 그룹에게 일기를 쓰게 했는데, 한 그룹은 고통스럽고 자신을 괴롭힌 이야기를, 다른 그룹은 일상의 일을 쓰게 했다. 단,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쓰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부정적인 내용을 쓴 사람들의 건강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다. 심지어 관절염, 천식과 같이 스트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병이 호전되기까지 했다. 글쓰기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배출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함으로써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이다.

글쓰기는 치유의 힘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힘들 때마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한쪽에는 지금 나를 괴롭히는 어려운 일, 다른 한쪽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일을 적었다. 막상 써보면 아무리 힘들 때에도 어려운 일 보다는 감사할 일이 많았다고 한다.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할 날만 기다리고 있던 때에도 그랬다. 언제나 글을 쓰고 나면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 역시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친구에게 고민을 말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처럼. 큰일을 당하면 이전에 걱정했던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지듯 말이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절제가 미덕이 아니다. 억제하면 병이 된다. 밖으로 내어놓아 객관화하고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담아두면 부패한다. 부정적 감정은 과장되기 마련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감정이 정리된다. 정리가 되면 잊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것이다. 

만성변비에서 벗어나려면
잘 먹고 잘 배출하기만 해도 몸은 건강하다고 한다. 몸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영양분이 잘 들어가고 나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신의 건강은 어떠할까. 정신 역시 잘 들어오고 잘 나와야 한다. 무엇이 들고 나와야 하나. 생각의 재료가 되는 정보,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잘 들어오고 잘 나와야 한다. 들어오는 통로는 읽기와 듣기다. 나오는 통로는 말하기와 쓰기다.

누구나 표현 욕구가 있다
글을 쓰거나 남 앞에서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는 사람도 저 깊은 곳에서는 그런 갈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를 방치하면 답답증을 느낀다. 화병이나 정신질환에 걸리기도 한다. 병까지는 아니어도 후련하지는 않다. 글을 한편 쓰고 나서의 뿌듯함 같은 게 없다.

우리나라 사람은 입력과 출력의 양 자체가 많지 않다. 토론과 대화가 활발하지 않다. 당연히 말하기와 듣기 분량이 적다. 특히 말할 기회가 많지 않다. 침묵이 금이고 말 많으면 공산당이다. 읽기도 예전 같지 않다. 스마트폰 영향으로 독서량이 갈수록 줄고 있다.

쓰기는 더 심각하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인해 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쓰기라 할 수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선진국에 비해 읽기 분량은 뒤지지 않는다. 교과서나 참고서를 많이 읽기 때문이다. 그러나 쓰진 않는다. 쓰기 실력으로 대학에 가고, 대학에서도 쓰기가 거의 전부인 선진국에 비해 그렇다.

결과적으로 입력과 출력 모두 부족하지만 출력에 해당하는 말하기와 쓰기가 더 문제다. 말하기와 글쓰기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그래야 개개인이 건강하고 사회가 발전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과 사회가 불편하고 답답하다. 마치 만성변비에 걸린 것처럼.

영화 <잠수종과 나비>를 봤다.
실화에 바탕을 둔 프랑스 영화다. 패션잡지 <엘르>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 40대 초반인 그가 어느 날 ‘감금 증후군’이란 병에 걸려 몸을 꼼짝할 수 없게 된다. 왼쪽 눈만 깜빡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은 멀쩡하다. 정신이 몸에 갇힌 것이다. 그는 글을 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글을 쓴다. 불어 알파벳 A부터 Z까지 불러주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빡인다. 그렇게 15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을 깜빡거린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완성한다.

‘잠수종’은 바다 깊숙이 잠수하는 데 쓰는 종 모양의 쇳덩이다. ‘나비’는 영혼을 상징한다. 그는 물속으로 가라앉은 잠수종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나비처럼 훨훨 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 있다. 그 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바로 글을 쓰는 자유다.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당신에게 나비가 많이 찾아오기를”

<내 손안에 서울> 독자 여러분에게도 많은 나비가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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