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하얘지는 절두산 산책길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4.12.24. 17:17

수정일 2015.11.19. 20:50

조회 1,737

절두산 공원

두 바퀴로 떠나는 서울여행 (27) 눈 내린 고요한 시간속의 산책, 절두산

하얀 솜 같은 눈이 내리고 소복이 쌓이면 삭막한 도시도 제법 운치가 생긴다. 그런 날이면 조용한 곳에 찾아가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눈길을 산책하고 싶어진다. 집에서 가까운데 그런 곳이 있는데 바로 절두산이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합정동 강변을 지나면 누구나 고개를 들어 쳐다보게 되는 '절두산'이 나타난다. 아담한 자태가 산이라기 보단 봉(峰)에 가깝다. 요즘처럼 눈 내린 겨울날엔 절두산의 절벽과 성당이 이루는 모습이 한 편의 그림엽서 같다.

절두산 공원

봉우리 위로 보이는 원형모양의 절두산 기념관 지붕은 선비의 갓을, 종탑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진 목 칼을 뜻한다고 한다. 한국적인 은유를 담으면서 순교의 정신도 담아냈다. 세계 건축 설계 콘테스트 은상 수상을 받을 만하다. 나방의 애벌레인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생긴 원래 이름 '누에머리 봉우리' 혹은 '잠두봉'에서 19세기 구한말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비극적인 역사의 사연을 품고 '목을 자르다'라는 뜻의 '절두산(切頭山)'으로 바뀌었다.

절두산 공원

천주교 순교 성지와 성당,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 등을 품고 있는 절두산은 눈 내리는 날 찾아가면 사각사각 눈 밞는 발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조용하여 사색에 혹은 상념에 빠지기 참 좋다. 올 한해 잊기 힘든 여러 비극적인 사건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하얀 눈이 빨간약처럼 소독해 주는 것 같다. 절두산 성지 내 공원을 산책 중 눈길을 붙잡는 어느 여인, 차가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성모상 앞에서 그녀는 무얼 저리 간절하게 기도하는 걸까… 난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왠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은 2014년 12월의 끝자락이다.

절두산 공원

이채롭게도 절두산 성당 마당에 다양한 크기의 항아리들이 모여 있다. 항아리에도 천사 조각상의 날개에도 이십대의 나이에 그만 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쓴 갓에도 눈이 포근하게 쌓였다. 신도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와 기원을 하며 어루만졌을 성자상의 두 손은 색깔이 다 벗겨지고 반들반들하다. 맞잡은 두 손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지고 오는 새해에 빌어 보고픈 무언가가 떠올랐다.

절두산 공원

절두산 성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핫 스팟'은 누구나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작은 철문이다. 성직을 다 마친 신부나 수녀님이 비로소 세상으로 나오는 뜻 깊은 문이란다. '무언가를 믿는 순간 그 무언가에 속는 것'이라는 속된 내게도 경건함을 느끼게 해준 훌륭한 상징물. 나도 나이가 들어 퇴직문을 나서면 어떤 세상을 맞게 될지 절두산 아래를 지날 적마다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문이다.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을 잊지 말자고 말하는 듯한 '무명인' 비석도 시선을 끌었다. 절두산 (切頭山) 성지는 무시무시한 산 이름에서 느껴지듯 19세기 대원군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박해로 살해당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사신들이 절두산 봉우리에 올라가 구경을 하면서 주변 경치가 중국의 적벽(赤壁)이나 다름없다고 감탄을 했다는 이곳이 순교의 성지가 된 사연은 흥선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사건에서 비롯된다.

1866년 정부에서 천주교 신부들을 처형하자 프랑스 함대가 출동한 '병인양요' 사건으로 외국의 군함 두 대가 그해 9월 수도의 코밑인 이곳 양화진까지 쳐들어오게 된다. (10월에는 일곱 척의 군함이 강화도를 점령) 다행히 프랑스 군대는 11월에 중국으로 철수하였고, 이 사건 후 서울 종로와 팔도 각 읍에다가 척화비를 세운 대원군은 천주교 탄압을 더욱 강행하게 된다.

프랑스 군함이 바로 서울 턱밑인 양화진과 서강 나루터까지 온 것도 물리치지 못한 치욕을 오랑캐가 머물던 자리에서 오랑캐를 끌어들인 천주교도의 피로 씻으리라고 하면서 양화진에서 천주교도들의 목을 베기 시작했던 것이다. 버들꽃 만발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양화 나루터는 이때부터 사형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연유한 절두산이라 이름은 당시의 참상을 지켜보던 민중들이 전해 온 말이라고 한다.

절두산엔 특이하게도 서양에서 건너온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지도 있다. 무덤위로 하얀 눈이 이불처럼 소복이 쌓여서 그런지 겨울이지만 그리 춥지 않게 느껴진다. 정식 이름은 '양화진 선교사 묘원'이다. 우리네 공동묘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곳이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건 다양한 생김새의 비석들이다. 십자가 모양에서 네모반듯한 묘비가 있는가 하면 울퉁불퉁한 바위처럼 생긴 것들도 있다. 더구나 몇몇 비석엔 심상치 않은 상흔이 있어서 물어보니 6.25 전쟁 때 전투 중에 생긴 총탄자국이란다. 지난한 우리 역사의 거친 숨결이 실감나는 곳이다.

이 외국인 묘원엔 당시 일제의 강제병합에 맞서 우리나라를 도왔던 사람들이 많아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베델, 헐버트… 익숙한 사람들의 이름이 묘비에 새겨져 있다. 이 묘지에 처음 묻힌 사람은 존 헤론 (John W. Heron)이라는 분이다. 선교사이자 의사인 헤론은 당시 창궐하는 천연두, 콜레라 같은 전염병으로 마구 죽어나가는 조선 사람들을 보다 못해 일선에서 열심히 치료하다가 그 자신이 전염병 이질에 걸려 1890년 33살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묘원 한쪽에 새겨져 있는 '불놀이'의 시인 주요한의 짧은 시 한 편이 긴 여운을 남긴다.

언 손 품어주고 쓰린 마음 만져 주니
일생을 길다 말고 거룩한 길 걸었어라
고향이 따로 있든가 마음 둔 곳이어늘

○ 절두산 교통편 : 지하철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에서 한강 쪽으로 도보 10분 소요
○ 누리집 http://www.jeoldusan.or.kr

김종성 시민기자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꽤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절두산 #자전거여행 #양화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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