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안다는 것의 '고통'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12.12. 10:24
성전이니 경전이니 하는 위대한 것들을 아무리 속속들이 내리꿰고 아무리 고상한 말을 줄줄 지껄일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그 결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3
요람에 누워 꼬물거리며 옹알이나 하던 아이가 제 두 발로 걷고 사람의 말을 하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타인과 다른 '자기'를 느끼게 된다. 그때 아이가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은 "내가 할래!", "내 꺼야!" 같이 자기를 내세우는 주장이다. 영어권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의 아이가 "Me, me!"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그 당연한 일이 재미있어 웃었던 기억도 있다. 자기를 앞세우는 말을 하면서부터 아이는 처음으로 '미운 시기'에 접어든다. '내가'라는 말과 더불어 새롭게 외쳐대는 말이 바로 "싫어!"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수용과 한없는 흡수의 시기는 지났다. 남과 다른 내가 있으니 내 취향과 요구가 있는 것이다. 이때가 아이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까닭은 독점욕, 수치심과 함께 자율성과 사회성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섭도록 자기에게 집중하며 이기적으로 자기를 주장하는 이 시기가 지나면 사회가 설정한 '한계'에 좌절하고 타협하면서 점차 자기를 잊거나 잃어간다. 자기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탐구하기보다는 남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에 초조해 한다. 이를 테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마음의 민낯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심리적 화장(psychological make-up)을 하는 것이다. 주름살과 잡티를 두꺼운 파운데이션을 발라 감추듯, 스스로 약점이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가리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이려 애쓴다.
개인과 개성에 대한 존중이 약하고 '남들처럼' 문화가 압도적인 사회에서는 이런 화장이 두꺼워지다 못해 가면으로까지 발전한다. 가면 뒤에서 진짜 내가 사라지는 현상이 심각해지면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as if 성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말 그대로 '마치 ~인 것처럼 성격'을 가진 사람은 완벽한 '따라쟁이'가 되어 자기 마음에 드는 어떤 사람, 이상적인 인물, 혹은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흉내 내기에 골몰한다. '가면'이라는 말이 위선적이거나 거짓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기실 선량한 사람들도 가면을 쓴다. 그것은 때로 신분으로, 예의로, 의무로 우리를 가둔다. "꿈이 없다."고 한탄하는 젊은이들에게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세요."라고 말하면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이렇게 대답한다."어떻게 사람이 자기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요?"
힌두교의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의무를 다하다 죽는 것은 나쁠 것 없으나, 남의 길을 찾는 자는 항상 헤매느니라."고 말한다. 아무리 훌륭하고 고상하고 위대한 말도 가면을 쓴 입으로 줄줄 읊으면 오갈 데 없는 남의 말이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어렵고 때로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진실한 나로 살기 위해 피할 수 없다. 아이처럼 천진하게, 아이처럼 용맹하게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쳐볼 일이다.
"Me! M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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