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당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이회영기념관 ©백진숙 -
이회영기념관 1층 ©백진숙 -
이회영기념관 지하 전시 공간 ©백진숙 -
이회영기념관 2층 가는 길 ©백진숙 -
이회영기념관 2층에는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백진숙
응답하라 1919! 이회영기념관과 딜쿠샤에서 돌아본 독립의 꿈
발행일 2026.03.03. 09:25

이회영기념관은 2026년 말 명동으로 이관 예정을 앞두고 있다. ©백진숙
독립문 인근에서 찾게 된 독립운동의 흔적 순례길
삼일절을 앞두고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방문할 수 있는 장소는 다양하지만, 독립문 인근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작지만 의미 있는 두 공간을 찾았다. 2026년 말 명동으로 이전을 앞둔 이회영기념관과 한국을 깊이 사랑했던 앨버트 테일러의 삶을 담은 딜쿠샤가 그 주인공이다. 두 공간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따라가며 그 이야기를 전한다.
독립운동가 삶의 이야기가 담긴 이회영기념관
‘이회영’이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신흥무관학교’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의 삶과 역할이 한층 분명해진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며 전 재산을 기부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 바로 이회영 선생이다.
서대문형무소 건너편 대신고등학교를 지나 사직터널 위 골목으로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자리한 이회영기념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한 울림을 지닌 공간으로, 이회영 선생의 생애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1층 ‘벗집마루’에서는 형제이자 독립운동 동지였던 이회영 일가의 생애를 소개하는 소규모 전시가 마련돼 있다. 형제 대부분이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그 말년 또한 비극적으로 마무리된 사실을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면 서간도에서의 독립운동 활동을 다룬 공간이 이어진다.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와 함께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의 전시 공간은 독립운동이 지닌 무게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다시 1층으로 올라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시간순으로 정리된 사진들이 걸려 있어 이회영 선생의 삶과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전시물로 가득한 동선은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그의 생애를 따라가도록 구성돼 있다. 2층에 이르면 신흥무관학교 관련 인물들의 기록이 이어지며,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떠올리게 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서대문형무소 건너편 대신고등학교를 지나 사직터널 위 골목으로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자리한 이회영기념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한 울림을 지닌 공간으로, 이회영 선생의 생애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1층 ‘벗집마루’에서는 형제이자 독립운동 동지였던 이회영 일가의 생애를 소개하는 소규모 전시가 마련돼 있다. 형제 대부분이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그 말년 또한 비극적으로 마무리된 사실을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면 서간도에서의 독립운동 활동을 다룬 공간이 이어진다.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와 함께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의 전시 공간은 독립운동이 지닌 무게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다시 1층으로 올라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시간순으로 정리된 사진들이 걸려 있어 이회영 선생의 삶과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전시물로 가득한 동선은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그의 생애를 따라가도록 구성돼 있다. 2층에 이르면 신흥무관학교 관련 인물들의 기록이 이어지며,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떠올리게 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회영 선생의 동생 이시영 선생의 특별전
이번 이회영기념관 방문이 특별했던 이유는 이회영 선생의 동생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省齋) 이시영 선생의 특별전을 함께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 가지 눈물- 성재 이시영’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대한제국의 눈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눈물, 대한민국의 눈물이라는 세 가지 소주제를 통해 독립운동 이후 이어진 근대사의 아픔을 되짚는다. 이시영 선생의 삶을 중심으로 근대사의 굴곡을 조명한 전시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앨버트 테일러 부부 이야기가 담긴 딜쿠샤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통해 역사를 조명한 이회영기념관에 이어 이번에는 또 다른 시선으로 시대를 기록한 공간을 찾았다. 독립운동의 현장을 지켜보고 이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앨버트 테일러 부부의 이야기가 담긴 ‘딜쿠샤’다. 이회영기념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딜쿠샤는 포르투갈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한다. 당시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공간으로 들어서면, 테일러 부부가 남긴 기록의 의미가 한층 선명해진다.
앨버트 테일러는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조선에 입국한 뒤 동생과 함께 사업을 하며 정착했다.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AP통신 특파원으로 1919년 3·1운동 소식을 세계에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종의 장례식 취재 요청을 받고 이동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독립선언서를 즉시 기사로 작성해 미국으로 송고하면서, 조선의 독립 의지가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는 독립운동가 재판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취재하며 한국의 현실을 기록하는 데도 힘썼다.
그러나 1942년 일본의 외국인 추방령으로 인해 강제로 한국을 떠나야 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던 중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전시를 통해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보다 한국을 깊이 아끼고 기억하려 했던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바로 그 마음이 있었기에 한국의 아픈 역사가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남긴다.
앨버트 테일러는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조선에 입국한 뒤 동생과 함께 사업을 하며 정착했다.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AP통신 특파원으로 1919년 3·1운동 소식을 세계에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종의 장례식 취재 요청을 받고 이동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독립선언서를 즉시 기사로 작성해 미국으로 송고하면서, 조선의 독립 의지가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는 독립운동가 재판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취재하며 한국의 현실을 기록하는 데도 힘썼다.
그러나 1942년 일본의 외국인 추방령으로 인해 강제로 한국을 떠나야 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던 중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전시를 통해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보다 한국을 깊이 아끼고 기억하려 했던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바로 그 마음이 있었기에 한국의 아픈 역사가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남긴다.
삼일절 순례로 그때의 이야기 담아보기
골목 안쪽에 자리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어느 공간보다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회영기념관과 딜쿠샤는 그런 의미에서 꼭 한 번 방문해볼 만한 장소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형무소와 바로 옆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까지 함께 둘러보면, 삼일절을 더욱 뜻깊게 보낼 수 있는 하루 코스로 손색없다.
이회영기념관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6길 15
○ 교통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724m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18:00
○ 휴무 : 월요일
○ 누리집
○ 교통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724m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18:00
○ 휴무 : 월요일
○ 누리집
딜쿠샤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 교통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514m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18:00
○ 휴무 : 월요일
○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
○ 교통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514m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18:00
○ 휴무 : 월요일
○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