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관 후 더욱 풍성해진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24.12.12. 11:46

수정일 2024.12.12. 20:12

조회 710

조선 왕실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김종성
조선 왕실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김종성
경복궁 돌담길에는 다양한 미술관과 갤러리, 청와대 사랑채 등 문화예술 명소가 많아 자주 산책하게 된다. 돌담길에서 만나는 국립고궁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시절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궁중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흥미로운 박물관이다. 우리 민족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겨레의 문화 수준 향상을 주도해 왔던 궁중 문화가 잘 담겨 있다.

수개월간 내부 리모델링 공사로 주요 전시관들이 임시로 문을 닫는 등 정상 운영을 하지 못하다가, 지난 11월 20일 재개관을 하고 시민들과 국내외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경복궁을 거닐다 들르기 좋고, 입장료가 무료이며, 수·토요일은 저녁 9시까지 운영하다 보니 어느 박물관보다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연중무휴로 운영하며 새해 첫날, 설날 당일, 추석당일만 휴관하고 있다. 대중교통편도 좋아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4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재개관 후 더욱 풍성한 볼거리로 채워진 국립고궁박물관 ©김종성
재개관 후 더욱 풍성한 볼거리로 채워진 국립고궁박물관 ©김종성
내년 2월 2일까지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특별 전시가 열린다. ©김종성
내년 2월 2일까지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특별 전시가 열린다. ©김종성
재개관 소식을 듣고 방문해 보니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 등에서 왕실의례, 궁중서화, 과학문화 등을 향유할 수 있다.

현재 기획전시실에서 2025년 2월 2일까지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전시가 열리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 가족, 성인을 대상으로 왕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예약을 원하는 경우 누리집 상단에 있는 ‘교육’ 메뉴에서 신청하면 된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대한제국 시절의 유물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의 모태가 1908년 대한제국 왕실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이어서다. 창경궁 안에 처음 만들어질 때 이름은 ‘제실 박물관(帝室 博物館)’이었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일제에 의해 ‘이왕가 미술관’(李王家 美術館)으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다. 고종은 독립국가로서 위상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사회 전반에서 근대화 작업을 이뤘는데 이 박물관도 그러한 시대 상황에서 지어진 것이다.
다채로운 궁궐 유물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김종성
다채로운 궁궐 유물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김종성
대한제국 시절 순종 황제 부부가 탔던 어차 ©김종성
대한제국 시절 순종 황제 부부가 탔던 어차 ©김종성
상설전시장에는 대한제국시절 순종 황제와 황후가 타고 다녔던 어차를 볼 수 있다. 당시 미국GM과 영국 다임러에서 만든 리무진이다. 차체가 철재가 아니라 목재이고 외부는 칠로 도장해 이채롭다. 차문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 문양인 황금색 오얏꽃 장식을 붙였다. 오얏꽃은 자두나무 꽃을 뜻하는 ‘이화(李花)’로, 조선 왕실의 상징 나무이자 꽃이었다. 이 어차 모델은 전 세계 3대만 남아 있고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동차라고 한다.

1879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수년 만인 1887년 경복궁 건천궁에 전등이 켜졌다. 전깃불 도입은 일본과 중국을 앞섰고 동양에서 처음이었다.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의 발전기 구매 소식을 듣고 에디슨조차 놀랐다고 전해진다. 1896년에는 전화가 개통돼 일본을 긴장시켰다. 1899년 서울에 전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전기, 전화, 전차의 도입은 모두 일본을 앞섰다. 1899년에는 중앙은행도 설치됐다.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루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재현해 놓은 왕실 부엌, 수라간 ©김종성
재현해 놓은 왕실 부엌, 수라간 ©김종성
‘궁중 잔치음식 만들기’ 디지털 영상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김종성
‘궁중 잔치음식 만들기’ 디지털 영상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김종성
한편, 내년 2월 2일까지 열리고 있는 궁중음식 특별전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은 한식이 ‘K-푸드’로서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는 요즘과 잘 어울린다. 전시관 한편에서는 1892년 고종 임금의 만 40세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왕에게 올린 음식 63가지를 재현해 놓았다. 조선시대 임금은 식사를 하루 평균 다섯 번 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궁중 잔치음식 만들기’ 디지털 체험 공간에서는 궁중 잔치의 고임상(음식을 높게 쌓는 것으로, 지위가 높을수록 더 높게 쌓아 올림)을 게임처럼 만들어보는 재밌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 요리사’를 재밌게 봐서인지 옛 궁중 음식을 만들었던 조선의 셰프(수석 요리사) 이야기가 나와 있어 반가웠다. 궁궐 수석 요리사는 대령숙수(待令熟手), 줄여서 숙수라고 불렀다. ‘대령’이란 임금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숙수는 ‘잔치와 같은 큰일이 있을 때 음식을 만드는 사람 또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신분이 양반과 천민 사이의 중인 계층이던 이들은 종 6품에서 종 9품까지 중하급 벼슬을 지녔고, 세습을 통해 대대로 그 지위가 이어졌다.

인기 드라마 ‘대장금’의 내용과 달리, 숙수는 물론 왕실 부엌인 수라간에서 일하는 요리 종사자들 대부분은 남자였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수라간의 남녀 성비가 15대 1이었다고 나와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음식을 많이 만드는 것은 매우 고된 육체 노동이었기 때문에 당시엔 남자들의 일로 여겼다고 한다.
조선 영조 임금의 어진(초상화) ©김종성
조선 영조 임금의 어진(초상화) ©김종성
화려하고 장엄한 광경에 해학까지 담겨 있는 ‘화성능행도 병풍’ ©김종성
화려하고 장엄한 광경에 해학까지 담겨 있는 ‘화성능행도 병풍’ ©김종성
국립고궁박물관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볼거리가 많다. 영조 임금을 그린 어진이나 조선시대 관료의 초상화들이 전시돼 있다. 용이나 현무 등 상상 속 동물을 수호신으로 그린 화려하고 다양한 궁궐 깃발도 발길을 멈추고 감상하게 된다. 초상화는 형형한 표정이나 의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는 ‘초상화의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초상화들이 제작됐다. 골상이나 관상 등을 뚜렷하고 세밀하게 그리는 것은 물론, 전신사조(傳神寫照)라 해 그 사람의 인격과 내면 세계까지 표현해야 함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조선 정조 임금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해 거행한 행사를 그린 8폭짜리 ‘화성능행도 병풍’도 볼 수 있다. 기록화의 백미라는 평가답게 호위하는 군사 관료들과 일꾼, 구경 나온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포즈를 다양하고 해학적으로 담아 내고 있어 내내 눈길이 머문다. 특히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는 그림은 규모에 먼저 놀라고 화려하고 장엄한 광경에 절로 감탄이 새어 나온다.
과학기술이 접목된 궁중 악기 ©김종성
과학기술이 접목된 궁중 악기 ©김종성
실감나는 영상으로 재현한 ‘천상열차분야지도’ ©김종성
실감나는 영상으로 재현한 ‘천상열차분야지도’ ©김종성
조선시대 과학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인 과학문화 상설전시관도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조선의 국왕은 부국 강병과 민생 안정을 위해 천문, 농업, 의학, 무기제조 등 과학기술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당시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으로 여겼다고 한다. 하늘의 여러 현상을 살펴 절기와 시간을 알려주는 천문학을 통해 백성이 때에 맞춰 농사를 짓고 생업에 힘쓰게 했으며, 국왕의 통치가 하늘의 뜻에 따른 것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조선 왕조의 개국이 하늘의 뜻임을 새기기 위해 하늘의 별자리를 옮겨 놓은 것이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5년(태조 4)에 석판에 새긴 천문도(국보 제228호)이다. 한국 천문학 최고의 자랑거리 국가유산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천문대에서 볼 수 있는 실감나는 영상으로 보여줘 한결 이해하기 쉬웠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은 시간에 따라 규칙적으로 달라지면서 계절과 방위를 알려 준다. 별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네 마리 동물도 흥미로운데 ‘사신’이라고 불리는 용·호랑이·새·거북이는 예로부터 각각 사계절과 동서남북을 상징한다.

때이른 한파로 집 안에만 머물러 있기 쉬운데 이번 주말에는 따뜻한 박물관 나들이를 나서보는 건 어떨까? 국립고궁박물관은 광화문 및 서촌, 북촌과의 접근성도 좋을뿐더러 서울 여행을 즐기기에도 탁월하다.

국립고궁박물관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12
○ 운영시간 : 10:00~18:00(수‧토요일 10:00~21:00), 입장은 마감 1시간 전까지
○ 휴무 : 1월 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
○ 입장료: 무료
누리집
○ 문의 : 02-3701-7500

시민기자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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