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이 만들었다는 에펠탑, 그럼 남산서울타워는 누가 만들었지?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4.07.10. 13:29

수정일 2024.07.10. 16:35

조회 3,696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12) 장종률과 남산서울타워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서울의 랜드마크 남산
서울의 랜드마크 남산

파리의 명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에펠탑을 꼽을 것이다. 포스터나 영상에서 에펠탑을 보여 준다면 사람들은 일단 그것이 파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에펠탑은 굳건한 파리의 상징이다. 영화나 TV드라마에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식당 창밖에 에펠탑이 보인다면 그것은 곧 지금 배경이 프랑스 파리라는 뜻이다. 그 정도로 에펠탑 하면 파리, 파리 하면 에펠탑이라는 생각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에펠탑이라는 이름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 역시 아마 파리에 여행을 가 보았거나 에펠탑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진 이야기일 것이다. 에펠탑은 에펠탑의 설계를 이끌었던 19세기 프랑스의 공학자이자 건축가인 귀스타브 에펠의 이름을 따서 만든 말이다. 그러므로 에펠탑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탑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만든 과학기술인의 이름을 함께 알리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의 명칭은 설계를 이끌었던 프랑스의 공학자이자 건축가인 귀스타브 에펠에서 따 왔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의 명칭은 설계를 이끌었던 프랑스의 공학자이자 건축가인 귀스타브 에펠에서 따 왔다.

그러고 보면 에펠탑은 과학기술의 탑이라고 부르기에 무척 잘 어울리는 건물이다. 애초에 에펠탑을 지은 이유부터가 1889년 파리에서 개최된 엑스포 행사 때 전 세계에 프랑스 기술과 프랑스의 산업, 경제가 갖고 있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펠탑은 당시로서는 그 어느 누구도 짓지 못한 세계 최대의 높이인 324미터 높이로 건설되었으며, 에펠탑 몸체에는 프랑스 과학 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한 면에 18명씩 총 72명의 프랑스 과학자들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다.

이 이름들은 지금도 에펠탑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학창시절에 수학, 과학을 공부했다면 오다가다 들어 보았을, 푸리에 변환을 개발한 푸리에, 코시 슈바르츠의 부등식을 개발한 코시, 전하의 단위에 이름이 남은 쿨롱, 푸아송 분포로 유명한 푸아송, 근대 화학의 위대한 선구자 앙투안 라부아지에 등등 많은 과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에펠탑을 만든 재료가 무엇인지도 짚어 볼 만하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에펠탑은 철로 만든 탑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철을 일정한 품질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 원래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흔히 철강 산업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철강이라는 말은 철과 강철을 함께 일컫는 용어다. 여기서 강철(steel)이란 그저 철 중에 좀 강한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순수한 철에 1.5%가 안 되는 약간의 탄소가 섞여 있어서 철이 튼튼하면서도 질긴 상태가 되어서 쓰기 좋은 제품을 말한다.

그런데 탄소의 양을 이렇게 딱 맞게 조절하기란 쉽지 않다. 무턱대고 철을 만들면 이보다 훨씬 많은 탄소가 포함되어 철이 딱딱하기는 하지만 대신 질기지 못해서 너무 잘 부러져서 강철보다 훨씬 약한 재질이 된다. 이런 철을 과거에는 흔히 무쇠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무쇠로 만든 가마솥은 이렇게 딱딱하기는 하지만 잘 부서지는 철인 경우가 많다. 재미 삼아 말을 갖다 붙여 보자면, 과학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는 무쇠팔 무쇠다리로 만든 인조인간 보다는 강철부대가 더 강하다고 이야기해 볼 수도 있겠다.

19세기 프랑스에서 피에르 에밀 마르탱이라고 하는 과학자는 평로법이라고 부르는 방법을 개발했다. 평로법을 이용하면 철을 만들면서 철에서 탄소를 뽑아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강철보다는 약하지만 무쇠보다는 더 질긴 철을 대량 생산할 수 있다. 21세기인 지금은 영국의 베세머라는 사람이 개발한 전로법이라는 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퍼졌기 때문에 현대 한국의 제철소에서는 여러 가지 고품질 강철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평로법으로 만든 철 정도면 강철 수준은 아니지만 무쇠보다는 훨씬 좋고 건축가들이 익숙하게 다를 수 있는 훌륭한 재료라고 할만했다. 그렇기 때문에 에펠은 자연히 프랑스 과학 기술의 작품인 평로법 철을 이용해서 프랑스 과학을 상징하는 에펠탑을 건설한 것이다.
한강공원에서 보이는 남산서울타워
한강공원에서 보이는 남산서울타워

한국의 서울에서 파리의 에펠탑과 견줄만한 탑은 무엇이 있을까? 소위 랜드마크를 건설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건축물들이 서울에는 여럿 있다. 그렇지만 긴 세월 한국인들 사이에서 기억을 남긴 탑이라면 역시 보통 남산타워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하는 남산서울타워를 꼽아 볼 수 있겠다.

남산서울타워가 처음 건설된 것은 1971년이니 벌써 53년째 서울 남산에 자리잡고 있는 건축물이다. 에펠탑이 만들어진 지 135년이 되었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아주 오래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50년 이상 자리를 지킨 탑으로 서울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과 많은 추억을 남긴 탑인 것은 분명하다.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남산서울타워에 얽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좀 부족한 것 같다는 점이다. 에펠탑을 만든 사람이 에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정말 많지만 정작 서울 시민 중에서도 남산서울타워를 설계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이 탑을 지었는지 아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남산서울타워를 설계한 사람은 장종률 선생이라는 건축가이며, 남산서울타워는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이용해서 쌓아 올린 약 237미터 높이의 건물이다.

철근 콘크리트 공법은 21세기인 요즘은 서울 시민들 대부분이 살고 있는 집인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을 짓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친숙한 방식이다. 그렇지만 철근 콘크리트 공법은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기술이다.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개발한 과학기술인으로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는 사람은 프랑스의 기술인인 모니에라는 사람인데, 마침 모니에가 철근 콘크리트 기법을 개발해 퍼뜨린 시점이 에펠탑이 건설된 시대와도 상당히 가깝다.

더욱 재미난 것은 모니에가 애초에 건축가도 아니었고 건설용 재료를 연구하는 화학자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요즘 철근 콘크리트라고 하면 삭막한 현대 문명을 대표하는 용어처럼 쓰이는 말이지만 정작 모니에는 꽃을 기르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꽃 기르는 사업에 종사하다가 커다란 화분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화분을 만드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는데, 콘크리트 재료는 눌렀을 때 휘어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당기면 잘 부서져서 잘 깨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가 모니에는 철망을 콘크리트 가운데에 심처럼 박아 넣고 주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화분을 만들면 훨씬 튼튼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철이 당기는 힘을 버텨 주고 콘크리트는 휘어지지 않도록 버텨 주어서 서로서로 더 튼튼해지게 해 주기 때문인데, 이 방법을 사용하면 커다란 화분을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리고 모니에의 화분 만드는 기술이 더 큰 물체를 만드는 데 활용되면서 건물을 짓는 데까지 이르러 널리 퍼진 것이 바로 현대의 철근 콘크리트 공법이다.
‘꽃 대신 빛을 심어 놓은 화분’이 남산서울타워라고 말해 볼 수도 있겠다.
‘꽃 대신 빛을 심어 놓은 화분’이 남산서울타워라고 말해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철근 콘크리트를 활용해서 원통 모양으로 높게 지은 남산서울타워는 어떻게 보면 서울 시민들을 위해 건설한 거대한 화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보통 화분에는 꽃을 심지만, 남산서울타워 꼭대기에는 여러 가지 조명 장치가 달려 있고 전파를 쏘는 방송용 안테나도 설치되어 있으니 꽃 대신 빛을 심어 놓은 화분이 남산서울타워라고 말해 볼 수도 있겠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애초부터 예술적인 모양을 뽐내는 용도로 만든 에펠탑에 비해 남산서울타워는 그다지 화려한 탑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남산서울타워는 가장 편리하게 지을 수 있으면서도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모양을 기준으로 만든 탑에 가까워 보인다. 남산서울타워가 에펠탑 보다 한참 뒤에 만들어졌는데도 탑 자체의 높이만 따져서는 더 낮기도 하다.

그렇지만 1970년대 초, 서울 시내 높은 곳에 방송과 통신을 위한 탑을 지어서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효율이 좋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지은 건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만큼 실용적인 현대 한국인의 정신을 잘 나타낸다는 점에서 나는 썩 의미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1970년대 초라면 한국의 과학 기술이 발전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비록 에펠탑에 써놓은 것 같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즐비한 수준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들이 먹고 살 방법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한국에 풍부한 석회석이라는 자원을 이용해서 시멘트를 생산하고 그 시멘트로 콘크리트를 만드는 산업이 자리 잡은 상황이었고 그런 여러 공장에서 생산한 대량의 물자를 저장하기 위해 사일로라고 하는 둥글고 커다란 창고 건물을 철근 콘크리트로 짓는 경험도 차근차근 산업계에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학기술이 활용되어 건설된 것이 남산서울타워다.

그렇게 보면 장종률 선생의 남산서울타워 설계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 기술을 쌓으며 나라를 발전시켰던 그 당시 한국이 택할 수 있었던 그 나름의 과학적 상징인 셈이다.
남산 꼭대기에 건설된 남산서울타워는 누구나 마음 먹으면 공원을 산책하듯 탑 주변의 팔각정, 봉수대 등을 거닐 수 있다.
남산 꼭대기에 건설된 남산서울타워는 누구나 마음 먹으면 공원을 산책하듯 탑 주변의 팔각정, 봉수대 등을 거닐 수 있다.

그렇게 실용적인 탑인 덕택에 나는 이제 남산서울타워가 나름의 아름다움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에펠탑은 탑 자체를 보기에는 멋지기는 하지만 파리 시내를 보는 전망을 즐기기 위해서는 탑 꼭대기까지 번거롭고 힘든 과정을 거쳐 올라가야 한다. 그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그렇지만 애초에 방송 탑을 만들기 위해 남산 꼭대기에 건설된 남산서울타워는 시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공원을 산책하는 느낌으로 탑이 있는 팔각정이며 봉수대 주변의 자리까지 쉽게 가 볼 수 있다. 그리고 굳이 탑을 오르지 않아도 탑 주변을 느긋하게 거닐면서 서울 천만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도시의 풍경을 즐기기에는 매우 훌륭한 곳이다. 탑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탑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기에 좋다.

나는 그런 아름다움이 한국적이고 또 서울적인 멋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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