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이 오싹! 여의도 '귀신바위' 전설을 아시나요?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4.06.26. 15:07

수정일 2024.06.28. 10:18

조회 3,083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11) 귀신바위도 당해낼 수 없는 출근길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올림픽대로변 신길1동에 있는 귀신바위와 느티나무 (사진출처: 영등포구청)
올림픽대로변 신길1동에 있는 귀신바위와 느티나무 (사진출처: 영등포구청)

여름철 밤이 깊어 오면 귀신 이야기도 제맛 아닌가 싶다. 혹시 서울에서 귀신 이야기를 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는 어디일까? 나는 여의도 근처, 샛강 주변이 썩 어울리는 장소가 아닌가 싶다. 이곳 강변에는 예로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귀신바위라는 꽤 큼직한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 그대로 귀신이 나타나는 바위, 귀신이 붙어 있는 것 같은 무섭고 이상한 바위라는 소문이 있는 곳인데, 지금까지도 서울의 귀신바위라고 하면 무슨 바위를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다. 그래서 바위에 대해 알려 주는 표지판도 근처에 하나 서 있고, 영등포구청 웹사이트에서는 아예 향토문화유적 항목에 이 바위를 소개하는 내용을 편성해 두고 있다.

정확히 이 바위를 왜, 무엇 때문에 귀신바위라고 부르는 지, 공식 기록이 어디인가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돌아다니는 이야기의 핵심은 다들 비슷하다. 옛사람들은 한강 남북을 오갈 때 항상 배를 타야 했다. 한강에 처음 다리가 건설된 것은 조선 말엽인 1900년, 이촌동과 노량진을 잇는 한강철교가 처음이다. 그러니까 124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 한강 다리를 지나는 그 많은 차량들의 통행 대신에 물을 건너는 수많은 배들의 통행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인지 이상하게도 귀신바위 근처에서 이런저런 사고를 당하는 일이 많다는 말이 돌면서, 그 바위를 귀신바위라고 부르는 전설이 탄생했다.

전설의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일단 영등포구청 누리집에 나와 있는 설명에 따르면 ‘이 근처에서 본 한강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강가 풍광 구경을 하기 위해 근처를 다니다 보면 자칫 실수로 물에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필 귀신바위 근처는 주위에 비해 갑자기 물이 깊어지는 지역이 있었다고 하는데 물속은 잘 보이지 않으므로 물이 얕을 거라고 방심한 사람들이 더 쉽게 사고를 당할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어 있다. 말하자면 너무 아름다운 경치에 사람이 홀렸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보면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에서 아름다운 인어의 노랫소리에 도취되어 자기도 모르게 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하게 들린다.
한강에 다리가 없던 시절, 마포나루의 도선 전경
한강에 다리가 없던 시절, 마포나루의 도선 전경 (사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어디까지나 입에서 입으로 돌아다니는 전설인 만큼 좀 더 이상한 사연이 달라붙은 이야기도 나는 들은 적이 있다. 로렐라이 전설과 더 비슷한 줄거리로 강물 주변을 배를 타고 지나다 보면 갑자기 귀신 바위가 있는 곳에서 어떤 사람 형체가 나타난 모습이 보일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손짓하며 부르는 모습에 취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신비로운 목소리로 외치는 것 같았기 때문인지는 모를 일인데, 그 사람 형체를 향해 다가가다 보면 홀린 듯 귀신바위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배가 귀신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면서 사고가 난다는 식이다.

마침 귀신바위 옆에는 지금도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고, 그 나무도 명물 취급을 받고 있다. 어쩌면 옛날에는 그 나무의 가지와 잎이 늘어져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언뜻 안개 낀 날 보면 사람이 손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아닐까? 귀신에 홀려서 나뭇가지 모습을 자신에게 손짓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배를 저어 가다가 마지막 순간 귀신바위와 충돌하기 직전에야 그 모든 게 착각인 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오싹한 사연이다. 심지어 요즘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보다 보면, 귀신바위가 유명한 곳이다 보니 지금도 무속인들이 그곳 근처에 가서 기도를 하려고 한다더라, 귀신의 기운을 받으려고 찾아간다더라는 말도 있다.

도대체 몇백 년 동안 대도시였던 탁 트인 서울 한복판에 이런 이상한 전설이 왜 생겨나 자리 잡은 것일까? 진지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두 가지 정도 과학적인 풀이를 떠올려 볼 만하다.
장맛비로 불어난 한강 물에 공원과 자전거도로가 잠긴 모습
장맛비로 불어난 한강 물에 공원과 자전거도로가 잠긴 모습

먼저 첫 번째로 귀신바위의 정체는 한강의 높은 하상계수라는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다. 강물은 비가 많이 올 때는 불어나고 비가 적게 오는 시절에는 그 물이 흐르는 양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때 하상계수란 강물이 가장 많이 흐를 때의 물의 양과 강물이 가장 적게 흐를 때 물의 양의 비율, 즉 최대유량과 최소유량의 비율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상계수가 1에 가까운 숫자라면 물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별 차이가 없이 항상 일정하게 흐르는 물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하상계수 숫자가 아주 크다면,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물의 양이 크게 불어 나지만 비가 적게 오면 물이 말라버리는 강이다.

그리고 한강은 하상계수가 큰 강, 즉 물이 많이 흐를 때와 적게 흐를 때의 차이가 큰 강에 속한다. 영국의 템즈강이나 독일의 라인강은 하상계수가 10 내외 정도이고, 이집트의 나일강이나 중국의 양쯔강은 20~30 정도의 하상계수 수치를 보인다. 하상계수가 30만 되어도 겨울철 물이 별로 안 흐를 때에 비해 여름철 물이 많이 흐를 때는 그보다 30배나 많은 물이 흐르는 모양으로 강의 변한다는 뜻이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고 할 만한 크기 아닌가? 그런데 국가물관리위원회의 염형철 간사의 기고문에 따르면 한강의 하상계수는 무려 380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은 한강 주변의 지형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이 워낙에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라 몬순 계절풍의 영향으로 여름철에 비가 집중해서 많이 내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요즘은 한강 물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여러가지 댐도 많고 둑도 이곳저곳에 만들어져 있으므로 물이 많을 때와 적을 때의 차이가 좀 덜 느껴지기는 한다. 그렇지만, 그런 것 없이 때에 따라 바뀌는 막대한 강물의 차이를 그대로 다 느껴야 했던 옛사람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완전히 달라진 한강을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강변에 큰 바위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해 보자. 겨울철 강물이 별로 없었을 때는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바위가 있는지 우뚝하게 솟은 모양을 보고 쉽게 피해갈 수 있다. 하지만, 여름철 강물이 불어나면 어디에서 어디까지에 바위가 있는지 잘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강변으로 배를 몰고 가다가 자칫 실수로 물밑에 도사리고 있는 귀신바위와 충돌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수부지가 개발되지 않은 과거에는 강물의 흐름에 따라 강가의 모양조차 자꾸 바뀌었으므로 더욱 바위 위치를 헷갈릴 위험이 컸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상하게 사고가 잦은 그 바위에 사람들이 귀신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주지 않았을까?
강물 폭이 갑자기 좁아지는 곳에 툭 튀어나온 바위까지 있다면, 난류가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강물 폭이 갑자기 좁아지는 곳에 툭 튀어나온 바위까지 있다면, 난류가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두 번째로 귀신바위의 정체를 와류(vortex) 현상이라고 이야기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강물이 흐르는 모양이 잠깐 이상하게 소용돌이치는 모양으로 바뀌게 되어 배를 타고 가던 사람이나 수영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방향을 잡지 못해 바위에 부딪혔을 거라는 뜻이다.

강물의 흐름을 따지는 과학을 접하지 않으면 정말 착각하기 쉬운 것이 강물이 곡선으로 굽이쳐 흐를 때 마치 사람이나 자동차가 곡선 구간을 주행하는 것 같은 모양으로 길을 따라 부드럽게 흐른다고 짐작하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오랜 시간 무심코 강물이 그렇게 흐를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물이 곡선 구간을 흐를 때 결코 그렇게 흐를 수는 없다. 물은 곡선 구간을 보는 눈도 없고, 부드럽게 방향을 꺾을 수 있는 발도 없다. 물은 그냥 직진할 뿐이다. 그러다가 가장자리를 만나면 거기 부딪혀서 튕겨 나오듯이 그제서야 방향을 꺾게 된다. 물과 물끼리 계속 부딪혀 밀려 나기 때문에 모양은 단순히 부딪히는 직선보다는 더 복잡해지기는 하지만, 원리의 밑바탕은 그대로다. 그 때문에 강물이 곡선 모양으로 흐르게 되면 바깥쪽은 부딪혀 튕겨 나오는 곳이 되어 물의 흐름이 빨라지고 강가의 흙과 모래가 깎여 나가게 되고 반대로 안쪽은 물의 흐름이 느려지며 흙과 모래가 쌓이게 된다.

그에 비해 보통 물이 흐를 때에는 바닥과 가장자리는 쓸리는 부분이므로 마찰이 생겨 속력이 느리고 물의 가운데 쪽이 속력이 빠른 현상이 생긴다. 이런 현상을 물 흐르는 속력이 층층이 구분된다고 해서, 층류, 또는 라미나 흐름(laminar flow)이라고 한다. 층류는 쉽게 예상이 가능하며 규칙적인 물 흐름이다. 쉽게 느낄 수도 있고, 간단한 방법으로 계산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물이 점점 빨리 흐르게 되고 규칙적인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층류 현상이 깨어지고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한 물의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을 난류, 또는 터뷸런스(turbulence)라고 한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났다고 할 때 쓰는 단어와 같은 말이다. 난류 현상이 생기다 보면, 물의 흐름이 꼬여서 소용돌이 치는 모양까지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와류다. 여의도 근처 샛강 쪽은 여의도 때문에 강물 폭이 갑자기 좁아지고 또 강물이 꺾여 흐르는 모양이 나타나는 곳이다. 거기에 더해 갑자기 툭 튀어나온 바위까지 있다면, 그 근처에서는 예상 외의 난류가 일어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혹시 가끔 한강물이 빨리 흐를 때, 그 난류가 심해져서 와류가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냥 부드럽게 강물의 흐름에 따라 바위 근처를 지날 수 있을 줄 알았던 배가 갑자기 생긴 와류를 타고 소용돌이에 휩쓸려 부딪히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나는 어디까지나 전설은 전설일 뿐으로, 귀신바위에 관한 사연들도 그냥 재미 삼아 나누어 볼 만한 이야기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귀신바위가 있는 위치는 서울 시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서 강변에 커다란 도로를 만드느라 아예 육지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바위 주변을 보면 귀신이 배를 유혹하는 강물이 있기는 커녕 그냥 올림픽대로가 튼튼하게 널찍하니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귀신이라고 하더라도 더이상은 아무것도 물에 빠뜨릴 수가 없게 된 것인데, 이렇게 보면 천만 서울 시민들의 출근길 교통 체증 문제 앞에서는 귀신 따위는 사소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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