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흔해서 몰라봤다! 서울에 사는 세계적 희귀동물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4.04.24. 16:15

수정일 2024.04.24. 16:35

조회 30,460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7) 서울을 상징하는 동물 마스코트는 고라니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

2,000년 전 삼국시대가 처음 시작되던 무렵,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이야기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전설이다. 주몽 전설은 일전에 인기를 끈 TV 연속극으로 제작되기도 했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주몽 이야기를 가장 상세하게 다룬 이규보의 서사시 <동명왕편>에는 그가 고구려를 건국한 그 다음의 이야기가 좀 더 실려 있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앞부분 이야기에 비해 훨씬 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용도 엉뚱한 데다가 별로 멋지거나 특별히 교훈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를 지금의 한국, 서울에서 돌아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 한 마리 때문이다.

<동명왕편>의 주몽 이야기는 고구려가 생긴 후에, 그 바로 곁에 있었던 ‘송양’이라는 실력자와 서로 대결을 했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송양은 상당히 탄탄한 세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막 나라를 만든 주몽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주몽은 송양을 무너뜨리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주몽은 엉뚱하게도 이상한 사슴 한 마리를 잡아서 그 사슴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송양의 땅에 홍수를 일으켜 달라고 협박한다. 그러자 사슴은 구슬피 울었고, 그 소리가 하늘에 전해지는 것 같더니 정말로 송양의 땅에 홍수가 났다고 한다.

너무 괴상한 이야기 아닌가? 왜 뜬금없이 사슴이 홍수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동명왕편>에 그 사슴이 흰색이었다는 언급은 있다. 흰색 동물은 귀하고 신비로워 보이므로 어떤 특별한 힘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함 직은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필 그 사슴이 홍수를 일으킬 거라고 본 것은 너무 갑작스러운 느낌이다.

이제부터는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지만, 나는 <동명왕편> 내용에서 유심히 본 글자가 하나 있다. 바로 이 사슴을 “궤(麂)”라는 특이한 한자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보통 사슴을 표현하는 한자라면 “녹(鹿)”이라는 한자를 가장 흔히 쓰고, 노루를 표현하는 흔한 한자로는 “장(獐)”이라는 글자도 있다. 그런데 이런 흔한 글자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 사슴이나 노루가 아닌 조금은 특별한 동물이었다는 뜻 아닐까? 그런데 재미난 것이 현재 궤(麂)라는 글자는 종종 고라니를 나타내는 뜻으로 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단국대 한국한자어사전에서는 “궤자(麂子)”라는 말을 고라니라는 뜻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뭔가 이야기가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고라니를 영어로 “water deer”, 즉 물 사슴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쿡과 패럴의 1998년 연구 논문에서는 고라니의 주요 서식지가 강이나 해안가 또는 호수 주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의 한국에서도 물이 찰랑거리는 논 부근이나 수변 공원에서 고라니가 발견되는 사례가 흔하다. 그렇다면, 당시 고구려가 자리 잡고 있었던 압록강 주변의 물에서 뛰어놀던 특이한 고라니가 있었던 것 아닐까? <동명왕편>에서는 이 짐승을 묶어 둔 장소가 “해원(蟹原)”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게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역시 ‘물가’라는 뜻 아닌가?

멀리 북쪽 부여라는 나라 출신인 온 주몽은 한반도에 와서 산속에서 뛰어노는 줄 알았던 사슴, 노루와 비슷한 동물인데 물가에서 잘 노는 고라니를 보고 놀랐고, 그것이 강물을 상징하는 신비로운 동물이라고 느꼈다고 상상해 보자. 고라니의 울음소리는 사람이 놀랐을 때 내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인 것으로도 유명한데, <동명왕편>에서 고라니가 구슬피 울자 그 울음소리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그 특이한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삼국시대와 고라니가 관련된 이야기로는 백제가 멸망하던 시절의 이야기도 꼽아볼 만하다. <삼국사기> 권28, <의자왕본기>에는 660년 백제가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하기 직전에, 들 사슴의 형상과 같은 개가 갑자기 나타나 울부짖었고, 또 홀연히 사라졌다고 되어 있다. 백제의 멸망을 마지막으로 경고한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하는 이상한 동물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백제의 수도 부여는 금강에 있으므로 강가에서 사는 고라니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고라니를 “들 사슴의 형상과 같은 개”라고 불렀을까? 원병휘 선생의 1967년 연구 논문에서는 고라니의 전형적인 겉모습 특징을 설명하면서, 고라니가 초식동물이면서도 길다란 송곳니 같은 이빨이 양쪽으로 하나씩, 두 개가 길게 튀어나온 모양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마치 드라큘라 같은 느낌인데, 요즘 고라니 사진을 봐도 잘 자란 수컷 고라니를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빨을 흔히 생물학에서는 견치(犬齒)라고 부른다. 공교롭게도 개 이빨이라는 뜻의 단어다. 어쩌면 고라니라는 동물에 대해서 잘 모르던 백제 사람들이 얼핏 개 이빨 같은 이빨이 난 고라니를 보고 들 사슴과 개가 뒤섞인 신비의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놓고 보면 삼국시대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동물이 고라니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아무리 이야기해 보아도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려운, 어디까지나 이리저리 떠올려 보는 상상에 불과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고라니는 영어로 ‘water deer’, 즉 물 사슴이라고 부르며, 주요 서식지는 강, 호수 주변으로 알려져 있다.
고라니는 영어로 ‘water deer’, 즉 물 사슴이라고 부르며, 주요 서식지는 강, 호수 주변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사람들이 정말로 고라니를 보았을 때 그 동물이 고라니인 줄 몰랐을 수도 있다고 내가 짐작하는 이유는 사실 고라니가 희귀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야생 고라니가 정착해 살고 있는 곳은 중국 일부 지역과 한국밖에 없다. 중국에서 유럽 사람들이 데려간 고라니들이 유럽에 일부 살고 있기는 하지만, 숫자가 많지 않고 자연히 야생에서 살던 동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고라니는 흔한 동물이 아니다. 2019년 KBS 뉴스에서는 중국 당국에서 야생 고라니를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고라니 숫자가 3,000마리로 늘어났다는 보도를 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동물로 유명한 판다의 경우, 2021년 중국 생태환경부에서 대략 1,800마리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의견을 발표한 적이 있으니, 3,000마리면 판다보다 조금 많은 정도다. 그렇다면, 백제 시대에 중국보다 훨씬 더 좁은 한반도에는 고라니가 그보다도 훨씬 드물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확실한 것은 세계적으로 봐서, 고라니가 분명히 희귀 동물에 속한다는 점이다.

너무나 이상한 것은 그 희귀한 고라니가 21세기 한국에는 엄청나게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보다 훨씬 더 땅이 넓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도 많은 중국에도 몇천 마리가 산다는 고라니가, 한국에는 수십만 마리 단위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세계적으로 희귀한 동물인 고라니가 한국에서는 유해조수로 취급될 정도다. 2020년 한 일간지에서는 한국에 사는 고라니 숫자를 70만 마리로 추측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70만 마리라는 숫자가 결코 큰 과장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 환경부 통계에서 전국의 사냥꾼들이 2020년 사냥한 고라니의 숫자를 21만 5,133마리로 발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고라니 숫자는 별로 줄어든 기미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졌을까? 1950년대나 1960년대의 동물 연구 자료들을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고라니가 이렇게까지 흔한 동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고작 몇십 년 사이에 지금 한반도는 고라니가 너무나 많은 땅으로 변해 버렸다.

이런저런 추측을 해 보자면, 20세기 후반 한국인들의 국가적인 노력으로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헐벗었던 산에 나무가 뒤덮이게 된 환경 변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막연히 과거에는 그저 모든 생태계가 더 오염되지 않고 풍성했을 거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한반도의 숲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지난 수백 년간 아무렇게나 방치했을 때, 한반도의 숲은 온통 민둥산만 많은 황량한 곳이었고,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적으로 숲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이 일부러 노력한 결과 지금과 같이 산마다 나무가 무성한 모습으로 변한 것이 한국 생태계의 역사다. 한국의 나무 양을 나타내는 지표로 임목축적량이 있는데, 산림청 자료를 보면 1950년대에 6,000만㎥도 되지 않았던 임목축적량이 2010년대에는 8억㎥로 13배나 늘었다. 이와 동시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도 과거에 비해 훨씬 비옥하게 잘 관리되는 모습으로 변화했다.

어쩌면 고라니는 이렇게 급하게 일어난 변화 속에서 다른 사슴, 노루류의 동물보다 특별히 잘 적응할 수 있던 묘한 동물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2009년 박지은 선생은 고라니의 위 속 내용물을 유전자 분석하는 방법으로 연구해서 고라니가 어떤 먹이를 먹는 지를 추정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고라니는 여름철에는 미나리아재비류 등의 여러 풀을 뜯어 먹고, 겨울철에 먹이가 부족해지면 장미류 같은 나무의 연한 가지 부분을 뜯어 먹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혹시 이런 식성이 21세기가 되면서 변화해 온 한반도의 산과 들에 딱 맞아떨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한국에는 워낙 고라니가 흔하다 보니, 서울 시내에서도 고라니는 흔히 발견된다. 요즘 강남구 탄천이나 서초구 양재천 같은 곳에서는 수시로 고라니가 목격된다. 심지어 잠실 도로에 고라니가 나타났다거나 강남대로에서 고라니가 나타나 자동차와 부딪힐 뻔했다는 소식도 들릴 정도다.
고라니는 여름철에는 미나리아재비류 등의 여러 풀을 뜯어 먹고,
겨울철에 먹이가 부족해지면
장미류 같은 나무의 연한 가지 부분을 뜯어 먹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혹시 이런 식성이 21세기가 되면서 변화해 온
한반도의 산과 들에 딱 맞아떨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서울시민들이 고라니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좀 더 많은 투자로 연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드라큘라 같은 송곳니를 갖고 있지만, 막상 정면 얼굴 모습을 보면 전혀 무섭지 않고 너무나 순박해 보이는 이 짐승이 나는 판다 못지않게 귀하고 개성 넘치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로 개발된 호돌이를 비롯해서,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이 호랑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는 하지만, 정작 호랑이는 남한 지역에서 1930년대 이후 지난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야생 상태에서 명확히 발견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히려 너무 친근하고 너무 흔해서 우리가 귀한 줄 모르고 있는 고라니가 새로운 시대, 서울을 상징하는 진짜 친근한 우리의 마스코트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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