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40년 된 제면소가? 한강 바람 맞고 숙성된 전통국수 어디?
발행일 2024.05.21. 10:12
40여 년 이어 온 강서구 가양동의 옛날국수 제면소 모습 Ⓒ최용수
국수의 생명은 쫄깃함이다. 밀가루 반죽을 잘 치댄 후에 한 겹씩 포개서 누르는 과정을 반복하고 반죽을 틀에 넣어 면을 뽑는다. 처음 하루 동안은 표면의 물기가 걷히도록 기다린다. 이후 걸대에 매달아 숙성시킨다. 습하면 쉬기 쉽고, 바람이 세면 겉만 말라 뒤틀리는데 이때 비닐을 씌우기도 하고 부채질할 때도 있다.
이렇게 5일간의 숙성 기간을 거치고 햇볕에 널어 바짝 말린 반죽을 자르면 추억의 옛날국수가 완성된다. 우직하리만큼 이런 일을 40여 년 이어 온 국수장인의 제면소(製麵所)가 서울에 있다.
이렇게 5일간의 숙성 기간을 거치고 햇볕에 널어 바짝 말린 반죽을 자르면 추억의 옛날국수가 완성된다. 우직하리만큼 이런 일을 40여 년 이어 온 국수장인의 제면소(製麵所)가 서울에 있다.
입구 기둥에는 옛날국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최용수
숙성 중인 메밀국수. 제면소에서 생산하는 옛날국수는 중면 정도 굵기이다. Ⓒ최용수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1번 출구에서 300여 미터, 가양동 239번지 ‘양천현아지(陽川縣衙址)’ 회전교차로에서 향천향교 방향의 골목길로 접어들면 1960~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개량한 듯한 지붕의 키 작은 단독주택이 있다. 투박한 시멘트 벽돌 담장과 기둥, 그 위에 촌티 나는 '옛날국수 제면소'라는 간판이 보였다.
양천현아터 표석이 있는 회전교차로 우측도로 골목으로 들어서면 제면소가 있다. Ⓒ최용수
어릴 때 시골에서나 본 듯한 정겨운 이름 제면소를 서울 도심에서 만나다니 참 반갑다. 좌우측 출입 기둥 벽에는 이 집에 대한 이야기가 허름하게 붙어 있다. 2023년 6월 16일 방영된 KBS <생생정보> 진행자 최불암 선생과 함께 있는 이 집 주인장의 사진, 모 신문사, 항공사 기내 잡지 등에도 실렸다던 안내문도 세월을 먹어 빛바랜 모습이다.
40년 이어 온 옛날국수 제면소의 모습 Ⓒ최용수
봄비가 그친 날 옛날국수 제면소를 찾았다. 처마 밑 걸대에 매달린 노란색 강황국수가 바람을 탄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모자를 쓴 어르신이 밀가루 반죽을 치댄다. 제면소 사장 임유섭 어르신이다.
오늘 같이 쾌청한 날은 국수 작업에 최적이라며 손놀림이 바쁘다. 사람이 들어가도 인기척을 못 느낀다. 한 걸음 더 다가서니 일손을 멈춘다. 마침내 옛날국수 제면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늘 같이 쾌청한 날은 국수 작업에 최적이라며 손놀림이 바쁘다. 사람이 들어가도 인기척을 못 느낀다. 한 걸음 더 다가서니 일손을 멈춘다. 마침내 옛날국수 제면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노란색 강황국수. 궁산과 한강에서 불어오는 자연 바람을 이용하여 건조, 숙성한다. Ⓒ최용수
Q. 언제부터 옛날국수 제면소를 시작했나요?
A. 언제부터 이곳에서 국수공장을 했는지는 기억 못 하겠어요. 이곳에 터 잡을 때는 하수관조차 없었던 때였는데, 아마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쯤 된 것 같아요. 살아 오느라 정신이 없네요.
1946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주인장은 18세 때 서울에 올라왔다. 먹고 살기 위해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가양동의 궁산 기슭 이곳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며 50년은 넘은 듯하다고 말했다.
A. 언제부터 이곳에서 국수공장을 했는지는 기억 못 하겠어요. 이곳에 터 잡을 때는 하수관조차 없었던 때였는데, 아마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쯤 된 것 같아요. 살아 오느라 정신이 없네요.
1946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주인장은 18세 때 서울에 올라왔다. 먹고 살기 위해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가양동의 궁산 기슭 이곳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며 50년은 넘은 듯하다고 말했다.
처마 밑의 좁은 공간, 국수틀 하나. 장인은 이 정도면 넉넉하다고 말했다. Ⓒ최용수
Q. 하필 국수공장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 처음에는 ‘경남상회’라는 이름으로 쌀가게를 했어요. 근데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먹고살기 어렵게 되었어요. 어느 날 방화동 한 국수가게(제면소)에 갔었는데, 그때 찾아오는 손님이 많은 걸 보고 ‘나도 이 기술을 배우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는 것만 눈에 들어와 덜컥 기계를 사들였는데, 기술을 전수 받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오랜 기간 시행착오가 많았고, 밀가루를 여러 포대나 버렸는 걸요. 기술을 익힌다고 밤샘을 밥 먹도록 했는데, 그때가 80년대였으니 어느새 40년이 흘렀어요.
A. 처음에는 ‘경남상회’라는 이름으로 쌀가게를 했어요. 근데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먹고살기 어렵게 되었어요. 어느 날 방화동 한 국수가게(제면소)에 갔었는데, 그때 찾아오는 손님이 많은 걸 보고 ‘나도 이 기술을 배우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는 것만 눈에 들어와 덜컥 기계를 사들였는데, 기술을 전수 받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오랜 기간 시행착오가 많았고, 밀가루를 여러 포대나 버렸는 걸요. 기술을 익힌다고 밤샘을 밥 먹도록 했는데, 그때가 80년대였으니 어느새 40년이 흘렀어요.
제면용 가루. 쫄깃한 국수는 좋은 재료에서 출발한다. Ⓒ최용수
Q. 국수를 만드는 데 제일 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뭘까요?
A. 요즘은 공장에서 생산한 국수가 마트마다 넘쳐나지만 40~50여 년 전에는 기계국수가 흔치 않았어요. 면을 뽑고 즉시 말려 포장 판매하는 기계식 국수와 달리 여기서 만드는 국수는 일손이 많이 들어갑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뽑은 면은 햇볕과 바람을 이용하여 닷새간의 숙성 기간을 거칩니다. 숙성 기간 동안 면이 쉬거나 뒤틀리지 않고 맛 좋은 국수를 완성하려면 자식을 키우듯 오랜 시간 지켜보며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A. 요즘은 공장에서 생산한 국수가 마트마다 넘쳐나지만 40~50여 년 전에는 기계국수가 흔치 않았어요. 면을 뽑고 즉시 말려 포장 판매하는 기계식 국수와 달리 여기서 만드는 국수는 일손이 많이 들어갑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뽑은 면은 햇볕과 바람을 이용하여 닷새간의 숙성 기간을 거칩니다. 숙성 기간 동안 면이 쉬거나 뒤틀리지 않고 맛 좋은 국수를 완성하려면 자식을 키우듯 오랜 시간 지켜보며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메밀국수 건조 모습. 뽑은 국수는 최소 5일간의 숙성 기간을 거쳐야 완성된다. Ⓒ최용수
Q. 시판되는 국수와 사장님 국수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국수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쫄깃함인데요, 이는 면을 뽑고 말리는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이곳에서는 면을 뽑으면 만 하루 동안 표면의 물기가 걷히도록 기다립니다.
그 후 자연 바람을 이용하여 서서히 말리면서 숙성 기간을 거칩니다. 여기는 한강과 궁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을 많이 봅니다. 입지 여건이 좋은 거지요. 충분한 숙성과 자연 건조가 쫄깃한 맛을 내는 저만의 노하우입니다.
대문 앞 걸대에 매달린 노란색 강황국수(카레국수)가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숙성된다. 안쪽에는 창포물에 감은 여인의 머리같은 150cm길이의 메밀국수가 줄지어 매달린 모습이 장관이다. 숙성 중인 면에서는 밀가루와는 달리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 지극한 정성을 먹고 자라는 것이 이곳 수제국수의 매력이다.
A. 국수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쫄깃함인데요, 이는 면을 뽑고 말리는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이곳에서는 면을 뽑으면 만 하루 동안 표면의 물기가 걷히도록 기다립니다.
그 후 자연 바람을 이용하여 서서히 말리면서 숙성 기간을 거칩니다. 여기는 한강과 궁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을 많이 봅니다. 입지 여건이 좋은 거지요. 충분한 숙성과 자연 건조가 쫄깃한 맛을 내는 저만의 노하우입니다.
대문 앞 걸대에 매달린 노란색 강황국수(카레국수)가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숙성된다. 안쪽에는 창포물에 감은 여인의 머리같은 150cm길이의 메밀국수가 줄지어 매달린 모습이 장관이다. 숙성 중인 면에서는 밀가루와는 달리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 지극한 정성을 먹고 자라는 것이 이곳 수제국수의 매력이다.
제면소에서 생산하는 옛날국수는 전통 그대로 다발 묶음을 판매한다. Ⓒ최용수
Q. 굳이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요?
A. 제가 만드는 국수는 온전히 ‘수제국수’입니다. 반죽에서 완성 때까지 사람의 손이 끊임없이 필요한 힘든 과정을 거치지만, 그래야 고유의 맛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전통 방식을 바꿀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혼자라 많은 양을 만들지 못해요. 옛날국수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맛 나눔’할 정도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A. 제가 만드는 국수는 온전히 ‘수제국수’입니다. 반죽에서 완성 때까지 사람의 손이 끊임없이 필요한 힘든 과정을 거치지만, 그래야 고유의 맛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전통 방식을 바꿀 수 없는 이유입니다.
혼자라 많은 양을 만들지 못해요. 옛날국수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맛 나눔’할 정도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메밀국수, 강황국수, 일반국수 3종류를 생산하며 대량 생산이 어려워 수요를 따르지 못한다. Ⓒ최용수
Q.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하실 생각인가요?
A. 글쎄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은데, 10년 만이라도 더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 바람이지만 10년 후면 아들 나이가 50대 중반이 되는데 그때 이 일을 하겠다면 참 좋을 텐데...그때까지는 해야지요. (웃음)
A. 글쎄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은데, 10년 만이라도 더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 바람이지만 10년 후면 아들 나이가 50대 중반이 되는데 그때 이 일을 하겠다면 참 좋을 텐데...그때까지는 해야지요. (웃음)
제면소는 양천고성지 궁산 아래 있어 깨끗한 바람으로 국수를 건조하기 좋은 위치다. Ⓒ최용수
큰 욕심이 없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대형 음식점에서 소문을 듣고 주문을 문의해 왔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판매점이 따로 없어 국수를 사려면 이곳에 와야 한다. 그저 먹고 살기만 하자고 시작한 국수 만드는 일이지만, 40년의 세월이 쌓이니 전통적인 수제국수 기술이 빛을 발할 때가 된 듯하다. 늘 곁에서 손발이 되어 주던 아내가 먼저 하늘로 떠난 후로는 국수가 유일한 친구로 남았다며 애착이 커 간다고 했다.
“울적하고 쓸쓸할 때면 국수 작업을 시작해요. 잡념이 사라지고 금방 마음의 평온을 찾아요.”
노년기에 접어든 주인장의 말이 가슴을 짠하게 울렸다. 오래오래 주렁주렁 국수발이 내걸린 옛날국수 제면소를 상상하며 아쉬운 이별 악수를 했다.
“울적하고 쓸쓸할 때면 국수 작업을 시작해요. 잡념이 사라지고 금방 마음의 평온을 찾아요.”
노년기에 접어든 주인장의 말이 가슴을 짠하게 울렸다. 오래오래 주렁주렁 국수발이 내걸린 옛날국수 제면소를 상상하며 아쉬운 이별 악수를 했다.
제면소는 양천향교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 안쪽에 나지막히 숨어 있다. Ⓒ최용수
옛날국수 경남상회
○ 위치 : 서울시 강서구 양천로47나길 48-13
○ 교통 :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1번 출구에서 333m
○ 영업시간 : 08:30 ~ 19:00 (일요일 휴무)
○ 대표메뉴 : 강황국수, 메일국수, 일반국수
○ 교통 :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1번 출구에서 333m
○ 영업시간 : 08:30 ~ 19:00 (일요일 휴무)
○ 대표메뉴 : 강황국수, 메일국수, 일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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