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의 주인공은?(feat.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4.01.19. 14:07

수정일 2024.01.19. 14:09

조회 2,043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지하철 예술마당 공연이 열리고 있다. ⓒ윤혜숙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지하철 예술마당 공연이 열리고 있다. ⓒ윤혜숙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려서 서둘러 8번 출구 쪽으로 나가려던 때, 색소폰 연주 소리가 들렸다. 순간 앞에 있는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생활소음 규제로 인해 매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줄어든 지 오래이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철 역사 안에서의 음악 소리라니! 음악이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공연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지하철 예술무대라고 표시된 벽면 앞에서 두 명의 연주자가 공연 중이었다. 한 명은 소프라노 색소폰을, 나머지 한 명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워크&힐링존 ⓒ윤혜숙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워크&힐링존 ⓒ윤혜숙

무대와 떨어진 객석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있는 워크&힐링존이었다. 워크&힐링존은 서울시가 주관하는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Stress Free Design)의 하나로 조성됐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대기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여러 사람이 무대를 바라보면서 공연에 심취해 있었다. 휴대전화를 충전하면서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기자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빈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지켜봤다. 관객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오늘 공연엔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분들은 한 곡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고 있었다. 두 연주자가 들려주는 곡들이 비교적 오래전에 발표된 곡들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호응이 높은 것 같았다.
지하철 예술무대에 나선 밴드 에릭문은 대중가요를 소프라노 색소폰과 기타로 연주한다. ⓒ윤혜숙
지하철 예술무대에 나선 밴드 에릭문은 대중가요를 소프라노 색소폰과 기타로 연주한다. ⓒ윤혜숙

기자가 머문 30여 분 동안 연주자들은 7곡을 연주했다. ‘님이여’, ‘그 겨울의 찻집’, ‘광화문연가’, ‘홍시’, ‘보고 싶다’, ‘부초 같은 인생’, ‘무정블루스’…. 그중에서 기자의 귀에 익숙한 곡은 ‘광화문연가’, ‘보고 싶다’ 단 두 곡에 불과했다.

연주자는 오늘의 공연을 위해서 미리 연주할 곡의 목록을 정해 두지만, 공연을 관람하는 청중의 연령대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바꾼다고 했다. 노년층이 많으면 어르신들이 즐겨 듣는 트로트 위주로, 청년층이 많으면 청년들이 즐겨 듣는 팝송이나 발라드 위주로 곡을 선곡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09년부터 지하철 예술무대에서 공연할 예술인을 선발하고 있다.ⓒ윤혜숙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09년부터 지하철 예술무대에서 공연할 예술인을 선발하고 있다.ⓒ윤혜숙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09년부터 서울시 지하철 예술 무대에서 공연할 예술인을 선발하는 프로그램‘메트로 아티스트(Metro Artist)’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인에게는 공연과 홍보의 기회를, 시민들에게는 활기찬 지하철 환경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던 때는 지하철 예술무대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그때는 실내에서의 공연을 연기하거나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연주자는 에릭 문, 김승량 두 명의 연주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밴드명은 에릭문이다. 에릭문은 대중가요를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연주하고 있다. 소프라노 색스폰을 주 악기로 연주하되, 때로는 기타를 보조 악기로 연주할 때도 있다.

에릭문 밴드는 10여 년 전부터 지하철 예술무대에서 공연해 왔고,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공연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다시 공연을 재개했다. 한 달에 4~5회 주말에 공연한다. 공연이 끝난 뒤 에릭문 멤버들과 일문일답을 나눴다.
지하철 예술무대를 즐기는 관객들은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로 호응해줬다. ⓒ윤혜숙
지하철 예술무대를 즐기는 관객들은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로 호응해줬다. ⓒ윤혜숙

Q. 10여 년간 지하철 예술 무대에서 공연하는 동안 인상적인 순간이 있다면요?
A. 연로하신 할머니가 다가오셔서 “정말 고마워요. 젊은 사람들이 이런 오래된 곡을 연주해 주다니 옛 추억이 떠올랐어요”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지폐 천 원을 꺼내서 제 손에 쥐여주고 가셨어요. 그분에게 힐링이 되는 연주였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Q. 지하철 예술 무대에서 공연할 때의 장단점은 뭔가요?
A. 장점은 지하철 역사가 실내이다 보니 춥거나 비가 내리는 날에도 연주를 할 수 있어요.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외에서 공연할 수 있지만, 점점 기온이 내려가 한겨울에 접어들면 연주자도 관객들도 추위로 힘들어하죠. 단점이라면 무대 주변에 매장이 있으면 아무래도 영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Q.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이외에 다른 지하철 역사에서도 공연해 보셨나요?
A. 노원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공연해 봤어요. 지하철 역사마다 분위기가 달랐어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외국인이 많이 드나들어요. 그분들은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다가 이곳에 한참 머물러 있어요. 트로트와 같은 우리의 대중가요를 들으면서 신기해 하시는 것 같아요. 노원역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오셔서 저희가 연주할 적에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세요. 또 흥에 겨워서 무대로 나와서 막춤을 추는 분들도 계세요. 다른 관객들을 위해서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데 신이 나서 춤을 추시니까 어쩔 수 없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는 잠시 쉴 수 있는 워크&힐링존이 잘 조성돼 있다. ⓒ윤혜숙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는 잠시 쉴 수 있는 워크&힐링존이 잘 조성돼 있다. ⓒ윤혜숙

Q. 지하철 예술 무대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A. 지하철 예술무대에서 공연할 아티스트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뜬 것을 보고 둘이 의기투합해서 신청했어요. 서울교통공사 누리집에 가면 지하철 예술마당 신청 방법이 있어요. 거기서 신청한 뒤 승인이 나면 공연할 수 있습니다.

Q. 본업을 하면서 거리공연도 10년 넘게 하고 계시는데요, 무대 공연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일단 도전하십시오! 공연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관객들이 오히려 “괜찮습니다. 다시 하세요”라고 격려해 주새요. 오늘도 연주하다가 갑자기 목에 사레가 들렸어요. 그래서 연주를 중단하고 물을 마신 후 다시 또 시작했어요. 그런데 관객들이 손뼉을 치면서 다시 하면 된다고 기다려 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그러니 뜻이 있는 분이라면 용기를 내어 참여하면 얻어가는 게 많으실 것 같아요.

Q. 공연을 관람하는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A. 거리공연은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하는 공연입니다. 연주자가 일방적으로 공연을 이끌어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관객이 공연에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건대입구역, 광화문역 등에서 지하철 예술무대가 열리고 있다.ⓒ윤혜숙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건대입구역, 광화문역 등에서 지하철 예술무대가 열리고 있다.ⓒ윤혜숙

이야기를 들으니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공연이 중단되면서 공연을 기획하는 업체도 폐업한 사례가 많단다. 이젠 코로나19도 종식되었으니 예전처럼 공연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행인들이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실내에 울려 퍼지는 아티스트의 연주에 잠시나마 즐거워하길 바란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를 비롯해 건대입구역, 광화문역, 선릉역, 노원역, 가산디지털단지역, 이수역에서 지하철 예술마당이 열리고 있다. 보컬, 악기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리며, 시니어 모델 동호회 패션쇼가 열린 적도 있다. 평소 무대에서의 공연을 꿈꾸고 준비했지만, 정작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도전해 봐도 좋겠다.

지하철 예술무대 공연도 거리공연인 만큼 시간에 맞춰서 공연을 관람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당 지하철역에서 대기하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때 아티스트의 연주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지하철 역사에서 만나는 낯선 즐거움이다. 늘 북적이고 바쁜 지하철역에서 갖는 잠깐의 여유로 하루가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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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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