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추억이 모락모락…다시 태어난 상도동 '부강탕'

박혜리 도시건축가

발행일 2023.03.03. 17:50

수정일 2023.03.03. 18:10

조회 10,989

박혜리 도시 건축가
부강탕의 과거(좌)와 현재(우)
부강탕의 과거(좌)와 현재(우)

박혜리의 별별 도시 이야기 (13) 요즘 목욕탕, 상도동 부강탕

동네 목욕탕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아파트가 주거 유형으로 보편화되고 실내 욕실이 점점 대중화되면서 역설적이게도 ‘대중 목욕탕’은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대형 찜질방이 목욕탕의 기능적 장점까지 포함하게 되고, 최근 코로나19의 직격탄으로 대중목욕탕은 결국 설 곳을 점점 잃게 되었다. 동네에 대표 목욕탕이 하나씩 있을 정도로 목욕탕은 주민들의 주요 거점시설 중 하나였다.

필자의 동네 상도동에는 ‘부강탕’이 있었다. 이곳도 2019년까지는 영업을 지속하다가 2020년 코로나 이후로 폐업 아닌 폐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 2년여 빈 건물로 있다가 2022년 11월 리모델링후 새로운 모습으로 개업하였다. ‘부강탕’이라는 이름과 건물은 고이 간직한 채 새로움을 입혀 카페, 갤러리 및 브런치카페로 다시 태어나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이어가게 되었다.

옛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사례가 많고, 또한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도 외관을 많이 바꾸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적절한 고쳐쓰기를 하였는데, 기존 가치에 새로운 가치를 덧입히는 방식, 즉 ‘적응적 재사용(Adaptive Reuse)’의 좋은 사례로 보여 이 곳에 소개하고자 한다.

부강탕의 새로운 주인, 배재현 대표(더플라잉팬 공동대표)는 20여년 식음료사업을 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 리모델링 및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고 한다. 그간 쌓인 노하우와 민감해진 그의 감각이 이 건물을 다시 살렸다. ☞배재현 대표와의 인터뷰 영상 참고(유튜브채널: 초현실부동산)

본래 이 목욕탕은 1층 입구에 매표소가 있고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여탕이, 2층에는 남탕, 3층에는 개인주거공간, 그리고 지하는 창고 등으로 쓰였던 4개층 단독 건물이었다. 현재 3층은 새롭게 갤러리 공간으로 준비 중이고, 1층은 카페, 2층은 브런치 식당, 지하는 직접 빵을 굽고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공간으로 변신하였다.
동네에 대표 목욕탕이 
하나씩 있을 정도로 
목욕탕은 주민들의 
주요 거점시설 중 하나였다.

꽃집으로 변한 ‘매표소’

기존 1층에는 작은 진입공간과 벽 너머로 여탕이 있었다. 이곳이 꽃과 화분으로 진열이 되었는데, 배재현 대표는 평소 화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1층 진입공간과 매표소 공간을 꽃집으로 꾸몄는데 이 작은 공간에 가장 정성을 많이 들였을 만큼 신경을 많이 썼다고.
진입공간에 놓여진 작고 아름다운 꽃집, ‘에스떼(Aeste)’
진입공간에 놓여진 작고 아름다운 꽃집, ‘에스떼(Aeste)’

마당으로 열린 ‘여탕’, 카페가 되다

목욕탕은 본래 ‘닫힌 공간’이다. RC(철근콘크리트) 기둥구조와 벽돌 비내력벽*으로 세워져 있던 구조체를 활용하여 비내력벽이었던 일부 벽체를 철거함으로써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여전히 ‘여탕’ 문은 전리품마냥 서 있긴 하지만 꽃집의 ‘하나의 장식벽’이 된 셈이고 여탕 내부는 햇빛 가득 품을 수 있도록 큰 투명 유리창이 마당을 향해 뚫리게 되었다.

*비내력벽: 자체 하중만을 받고 상부에서 오는 하중은 받지 않는 벽체
아직 남아있는 ‘여탕’ 문
아직 남아있는 ‘여탕’ 문
큰 창으로 개방감을 확보한 1층 카페 공간
큰 창으로 개방감을 확보한 1층 카페 공간

따라서 구석 공간이었던 뒷마당 공간은 하나의 ‘정원’이 되어 곧 봄이 다가왔을 때 가장 기대되는 공간이 되었다. 마당에는 벚꽃나무 2그루가 심겨졌고 내외부를 서로 조망하는 풍부한 공간감을 갖게 되었다. 탕 욕조 여러개 중 하나만 남겨 사이드 공간을 의자로 사용하고 전면에 작은 테이블을 놓았다. 이 곳은 소금빵과 딸기 케이크가 기막힌 맛으로 유명하다.
목욕탕은 본래 ‘닫힌 공간’이다. 
일부 벽체를 철거함으로써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1층 카페로 변신한 여탕. 욕조가 목욕탕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1층 카페로 변신한 여탕. 욕조가 목욕탕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옛 벽돌마감이 그대로 드러난 브런치 카페로 변신한 ‘남탕’

2층으로 올라가면 남탕이었다. 이 곳은 브런치 카페로 바뀌었는데 전체적으로 둘러 싼 벽돌벽이 인상깊다. 이 벽체에는 본래 목욕탕 타일 및 벽체가 덧씌워졌는데, 그 마감을 싹 벗겨내니 이렇게 아름다운 벽돌벽이 드러났다고 한다.

2층의 욕조는1층과 같은 사이즈의 욕조였지만 다르게 변형했다. 한 단을 없애고 욕조에는 귀여운 ‘목어’를 넣어 유희적이고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2층 화장실로 가는 입구에 가벽처럼 세워진 동파이프 행렬은 기존 사우나실에 있던 배관을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2층 브런치 카페에 있는 욕조 장식. 귀여운 목어가 가운데 헤엄을 치듯 놓여 있다.
2층 브런치 카페에 있는 욕조 장식. 귀여운 목어가 가운데 헤엄을 치듯 놓여 있다.

여전히 늠름한 굴뚝, 전 층의 배기구로 다시 쓰이다

목욕탕이 동네의 랜드마크가 되기 쉬웠던 이유가 바로 ‘굴뚝’이다. 보통 건물높이보다 훨씬 높게 솟을 수 있는 예외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에 리모델링하더라도 기념비적으로 남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곳은 제대로 기능하는 굴뚝이다. 주방이 있는 지하에서부터 전층 배기를 담당하는 굴뚝으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굴뚝은 좀 더 늠름해보인다!
여전한 위용을 자랑하는 굴뚝. 굴뚝으로서의 기능을 간직한 채 랜드마크의 지위를 이어간다.
여전한 위용을 자랑하는 굴뚝. 굴뚝으로서의 기능을 간직한 채 랜드마크의 지위를 이어간다.

동네 목욕탕이 점점 사라지면서 카페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사례가 제법 많다. 목욕탕의 아이템을 카페와 접목시킨 재미있는 사례도 있고, 독특하고 견고한 목욕탕 건물 자체를 활용한 좋은 문화시설로 변신한 사례도 있다. 그 중 여기 부강탕은 유치하지 않고 점잖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재료(벽돌, 욕조, 굴뚝 등)의 재질 및 질감을 잘 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좋은 사례로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 추억이 있는 건물이 이렇게 무너지지 않고 새롭게 태어나 준 것에 감사하고 그래서 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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