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따뜻하게, 공예박물관에서 누비버선 만들었어요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2.12.07. 15:26

수정일 2022.12.07. 15:36

조회 2,150

지난해 문을 연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절기마다 어울리는 공예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여름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모시를, 가을에는 짚과 풀을 이용한 공예를, 그리고 겨울을 앞두고 누비로 만드는 <겨울溫도: 한땀 한땀 누비공예>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과거와 달리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지 않으니 누비를 해 볼 기회도 없었다. 비록 크리스마스 장식을 위한 소품을 만드는 거지만 맛보기라도 누비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한밤중에 신청이 시작됐는데 다행히 선착순 신청에 성공하여 참가할 수 있었다.
서울공예박물관의 <겨울溫도 : 한땀 한땀 누비공예>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선미
서울공예박물관의 <겨울溫도 : 한땀 한땀 누비공예>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선미

첫눈 내린 토요일 오후, 바람이 없어 전날보다는 덜 추운 안국동을 찾았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조선 시대에는 '안국동별궁'으로 불리며 왕실의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풍문여고 시절의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어린이박물관 등 추가로 필요한 부분은 새로 건축하여 지난해 예술과 생활을 연결하는 '공예 허브'로 재탄생했다.
안국동별궁 자리에 들어선 서울공예박물관은 예술과 생활을 연결하는 '공예 허브'이다. ⓒ이선미
안국동별궁 자리에 들어선 서울공예박물관은 예술과 생활을 연결하는 '공예 허브'이다. ⓒ이선미
누비공예 프로그램은 서울공예박물관 전시3동에서 진행되었다. ⓒ이선미
누비공예 프로그램은 서울공예박물관 전시3동에서 진행되었다. ⓒ이선미

누비공예 프로그램이 진행된 전시3동은 <자수, 꽃이 피다>와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 상설 전시가 열리는 곳이다. 시간이 되자 예약에 성공한 시민들이 속속 찾아왔다. 

탁자 위에 이날 체험할 공예 재료가 놓여 있었다. 네모 반듯하게 자른 목화솜과 버선 모양 붉은색 명주, 쪽가위와 가위, 펜과 자 등. 그런데 아이스크림 스푼은 왜 필요한지 궁금했다. 
누비공예 체험을 위해 미리 준비된 재료들 ⓒ이선미
누비공예 체험을 위해 미리 준비된 재료들 ⓒ이선미

공예 강사님이 잠시 누비에 대한 소개를 했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고 홈질을 해서 마무리하는 바느질 기법인 누비는 일반적으로 방한을 위한 것이었지만, 중요한 물건이나 파손되기 쉬운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두텁게 만드는 용도로 이용하기도 했다. 누비를 하고 수를 놓아 예쁘게 장식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 초기 유물에서 누비옷을 볼 수 있는데, 그 후 다양한 옷가지와 침구 등에 누비가 쓰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누비가 스님들이 해진 옷을 기워 입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정약용의 <아언각비>에 기워 꿰맨 옷을 가리키는 '납의(衲衣)'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못 옮겨 '누비(縷緋)'라고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운 옷을 입은 '납자(衲子)'라는 말이 승려를 뜻하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누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선미
누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선미

누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본격적인 체험에 들어갔다. 기본적인 준비가 미리 되어 있어 어느 정도 진도는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솜을 대고 홈질하고 뒤집어서 누비를 시작하는 게 마냥 쉽지는 않았다. 간격을 좁게 두고 홈질을 해야 해서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긴장해야 했다.
솜을 가운데 두고 누비를 하기 위해 수성펜으로 원하는 만큼의 선을 그어 홈질한다. ⓒ이선미
솜을 가운데 두고 누비를 하기 위해 수성펜으로 원하는 만큼의 선을 그어 홈질한다. ⓒ이선미

누비를 할 때 비로소 재료에서 본 아이스크림 스푼의 용도를 알게 됐다. 위에서 바늘을 넣어 솜과 또 한 장의 명주를 통과시켜 다시 위로 올리려고 하면 바늘이 빠져 버리거나 손을 찔릴 위험이 있다. 이때 스푼으로 천을 지그시 누르고 바늘을 뽑아 올리면 손을 다칠 위험 없이 홈질을 할 수 있다. 뜻밖의 용도에 참석자들이 다들 웃었다.

예정된 시간이 지났지만 누비 버선은 끝내지 못했다. 다들 생각보다 어렵다며 재료를 챙겼다. 집에 돌아와 천천히 차분하게 완성했다. 
처음에는 용도를 알 수 없었던 스푼이 누비를 할 때 아주 요긴한 도구가 되었다. ⓒ이선미
처음에는 용도를 알 수 없었던 스푼이 누비를 할 때 아주 요긴한 도구가 되었다. ⓒ이선미
마무리하지 못한 채 집에 챙겨온 재료로 마침내 완성한 누비 버선 ⓒ이선미
마무리하지 못한 채 집에 챙겨온 재료로 마침내 완성한 누비 버선 ⓒ이선미

서울공예박물관 곳곳에도 누비로 된 전시물들이 있다. 직접 실과 바늘로 긴장하며 누비를 체험해 본 다음이라 전시실의 누비 작품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였을지 생각하니, 예쁘다거나 멋있다는 표현을 넘어 그 정성이 느껴졌다. 

좁은 간격으로 누비고 그 위에 꽃이 핀 화분을 수놓아 담배나 돈, 부싯돌 등 소품을 담는 데 사용했던 ‘자수 쌈지’와 양볼에 수를 놓고 코에 색실로 술을 단 ‘타래버선’도 예쁘지만, 골무들은 정말 앙증맞았다.
직물을 누비고 수까지 놓아 완성한 ‘자수 쌈지’와 ‘타래 버선’ ⓒ이선미
직물을 누비고 수까지 놓아 완성한 ‘자수 쌈지’와 ‘타래 버선’ ⓒ이선미
바느질할 때 사용하는 골무도 천을 두툼하게 누비고 예쁘게 수도 놓았다. ⓒ이선미
바느질할 때 사용하는 골무도 천을 두툼하게 누비고 예쁘게 수도 놓았다. ⓒ이선미

서울공예박물관은 감고당길을 사이에 두고 열린송현녹지광장과 마주하고 있다. 오랫동안 둘러쌓여 있던 공사 가림막이 개방돼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선 시민들이 감고당길 초입에서 진행되는 1인 공연에 박수치며 함께하고 있었다. 

서울공예박물관에는 전시 관람 말고도 즐길 거리가 늘 있다. 특히 어린이박물관은 찾을 만한 충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상설 프로그램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방학을 맞아 마련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눈여겨보는 게 좋다. 어린이들을 한껏 행복하게 해 줄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린송현녹지광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즐거운 공간이 되고 있다. ⓒ이선미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린송현녹지광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즐거운 공간이 되고 있다. ⓒ이선미

서울공예박물관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3길 4 (안국동)
○ 교통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50m
○ 관람시간 : 10: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누리집
○ 문의: 02-6450-7000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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