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한옥마을에서 배우는 옛 선현들의 '여름나기'

시민기자 김윤경

발행일 2022.07.11. 14:19

수정일 2022.07.11. 14:21

조회 2,780

북촌문화센터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외국인 관광객들
북촌문화센터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외국인 관광객들 ⓒ김윤경

언제부터 우리는 '한옥'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한옥은 개항 이후 서양 근대 건축양식이 들어오며 기존 양식과 대비하기 위해 생긴 신조어라고 한다. 생각보다 한옥이 오래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서양 건축이 들어오기 전, 일반적인 건축물에 굳이 별도의 단어를 만들어 사용할 필요는 없었을 듯싶다. 

긴 여름날을 보내기 위해 저마다의 피서법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에어컨도 없었던 옛날에는 이런 무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한옥이 처마와 마당, 바람길 등 과학적으로 시원한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또한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더위를 식히는 여덟가지 일)'를 통해 선비들의 피서법을 들어왔다. 문득 우리 조상들이 보낸 여름나기가 궁금해졌다. 멀리 가지 못한다면 시원하고 고즈넉한 서울 한옥에서 여름을 맞는 건 어떨까. 북촌한옥마을로 발길이 향했다.  

계동마님의 숨결을 느껴볼 북촌문화센터' 장장하일(長長夏日)'

서울시 북촌문화센터에서는 7월 9일부터 7월 30일까지 매주 토요일 긴 여름을 지혜롭고 즐겁게 나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공연과 전시, 체험, 특별해설 등으로 구성되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이름하여 '장장하일' 행사다. 7월 9일 행사 첫날 북촌문화센터를 찾았다. 
북촌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장장하일'
북촌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장장하일' ⓒ김윤경

“'장장하일'이라고 쓰여 있는데. 영화상영 하나?”, “아냐. 전시하고 공연한대.” 북촌문화센터 입구에 놓인 ‘장장하일’이라고 쓰인 파란 입간판은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우리 술이 한옥과 어울려 전시되어 있다.
우리 술이 한옥과 어울려 전시되어 있다. ⓒ김윤경

입구에 들어서면 체험 프로그램을에 참여할 수 있다. ‘시원한 여름 냉차 시음’을 통해 새콤한 오미자차를 마실 수 있으며, 우리 여름 술을 시음해볼 수 있다.  체험 시간과 인원은 정해져 있다.
담당자가 외국인에게  우리술을 설명하고 있다.
담당자가 외국인에게 우리술을 설명하고 있다. ⓒ김윤경

“어떤 걸 드시겠어요? 이건 김포 쌀로 만든 막걸리고요. 충주 사과, 망고 같은 과일로 만든 술도 있어요. 연꽃과 여주 햅찹쌀을 사용해 은은하게 번지는 맛이 좋습니다.” 설명을 듣던 한 외국인이 막걸리를 가리키며 한입 마시더니 "굿"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필자도 세 가지 술을 조금씩 맛봤는데, 설명을 듣고 마시니 느낌이 달랐다. 특히 바로 옆 한옥 안채에 전시된 우리 술은 한옥의 분위기와 찰떡궁합처럼 어울린다.
더위를 식혀 줄 탁족체험도 가능하다.
더위를 식혀 줄 탁족체험도 가능하다. ⓒ김윤경

안으로 들어서자 툇마루에 앉아 대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탁족체험이다. 노란색 대야 옆에는 깨끗하고 두툼한 개별 수건이 놓여 있어 닦을 수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시원해 “발이 얼 것 같다”며 만족해 했다. 
시원한 물줄기를 보니 벌써 더위가 가버린 느낌이다.
시원한 물줄기를 보니 벌써 더위가 가버린 느낌이다. ⓒ김윤경

필자도 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있으니, 청량함이 온몸에 퍼졌다. 상쾌해진 마음으로 한옥 내부로 들어갔다.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문이 열린 공간은 모두 둘러 보고 쉴 수 있단다. 무척 더운 날씨였지만, 마루에 걸터 앉아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시민들은 더위를 잊은 듯 보였다. 
교육관 내에서 받는 체험 수업
교육관 내에서 받는 체험 수업 ⓒ김윤경

쉼터와 각 공간을 지나면 가장 안쪽에 교육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 주마다 조각보 햇빛 가리개나 등나무 과일 채반 만들기, 천체투영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물론 인스타그램에서 미리 공지를 보고 신청한 뒤, 무작위 추첨을 통해 선정되어야 한다. 마지막 토요일인 30일에는 칠월칠석을 맞아 '사랑의 꽃말'이라는 공연과 칠석다례를 체험해볼 수 있다. 또한 7월 23일은 만들기 체험프로그램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조선 왕실 향낭'을 만들게 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정자에 앉아 오목체험을 할 수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정자에 앉아 오목체험을 할 수 있다. ⓒ김윤경
투호체험
투호체험 ⓒ김윤경

“오목 잘 못하는 데.”, “나도 오목 잘 못 둬. 이런 곳에서 하는 게 재밌지.”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육관으로 가는 도중 투호와 정자에서 오목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더욱 더 즐거움을 선사했다. 한편 투호를 던지는 가족들은 생각보다 안 들어간다며, 각도를 조절하라고 조언을 하고 있었다. 명중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들 뜬 목소리와 표정에서 즐거움이 묻어난다.
아늑한 분위기의 쉼터
아늑한 분위기의 쉼터 ⓒ김윤경

1921년 지어진 북촌문화센터 가옥은 계동 근대 한옥이다. 민형기 부인인 유진경 가옥으로 계동마님이 살던 곳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계동마님은 시집오고 50여 년간 이곳에서 살아왔다.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다면 ‘계동마님 찾고 보물찾고’를 신청해 들어보길 추천한다. '장장하일' 및 일반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는 북촌문화센터 홈페이지나 SNS를 참조하면 된다.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작은 전시관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작은 전시관 ⓒ김윤경

작은 전시관에는 한옥과 관련한 설명과 서울시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좀 더 관심있게 보기 좋다. 예로부터 서울 북촌지역은 관료나 양반 등이 살았던 고급 가옥이 많은 양반촌이었단다. 북촌은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전통적인 한옥의 장점과 근대 도시 적응을 위한 새로운 도시주택 유형을 보여줬다. 2000년 서울시는 북촌가꿈사업을 확정했으며, 한때는 사라질 뻔하기도 했던 가옥들이 서울시, 북촌주민, 단체 등의 노력으로 되살아났다. 또한 전통주거지이자 한옥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문화유산적 가치를 높이는 계기를 높게 평가받아 2009년에는 유네스코 아‧태문화유산상 우수상을 받았다.    

계동 배렴가옥에서 만나는 전시

북촌문화센터에서 나와 계동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면 배렴가옥과 만난다.
계동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배렴가옥
계동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배렴가옥 ⓒ김윤경

배렴가옥은 한국 화가인 제당 배렴선생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 지금은 서울시 공공한옥으로 운영되고 있다. 배렴가옥은 국가등록문화재 제85호로 1936년 경에 지어진 곳으로 전시관과 세미나실, 1950년대 북촌에 있던 근대 한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 전통가의 전문가와 대화 및 실험의 형식으로 만들어가게 된단다.
구은정 작가의 '마음의 음성'
구은정 작가의 '마음의 음성' ⓒ김윤경

이곳에서는 7월 5일부터 8월 7일까지 구은정 작가의 '마음의 물성'이라는 주제로 조각과 설치작업을 볼 수 있다. 먼저 대청마루에는 커다랗고 푹신한 솜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 위에 여섯 가지 물성의 심장이 있어 사람들이 만지면서 감상할 수 있다. 
커다랗고 푹신한 솜 테이블로 만든 구은정 작가의 '마음의 물성' 2
커다랗고 푹신한 솜 테이블로 만든 구은정 작가의 '마음의 물성' 2 ⓒ김윤경
구은정 작가의 '마음의 물성' 3
구은정 작가의 '마음의 물성' 3 ⓒ김윤경

격자로 이루어진 장식장에는 스물다섯개의 작품이 있는데 작가의 마음을 반영해 빚었다고 한다. 또 긴 방에 있는 작품은 단순히 멈춰 있지 않는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흔들리고 비에 의해 변화한다. 그날에 따라 달라지는 전시는 가변적이라 더 기대된다. 
방문객이 그린 그림 중 잘 그린 작품은 창밖에 붙여 놓았다.
방문객이 그린 그림 중 잘 그린 작품은 창밖에 붙여 놓았다. ⓒ김윤경
방문객 누구나 준비되어 있는 투명시트지에 하얀 펜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방문객 누구나 준비되어 있는 투명시트지에 하얀 펜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김윤경

"이건 어느 작가님 작품인가요?" 유리창에 붙여진 투명한 그림을 가리키자, 담당자는 일반 방문객이 그린 작품 중에서 잘 어울리는 몇 가지를 선정해 걸어놓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실력이 워낙 출중해 깜짝 놀랐다. 옆에는 누구나 투명시트지에 하얀 펜으로 자유롭게 그려볼 수 있다. 
1936년경 지어진 배렴가옥
1936년경 지어진 배렴가옥 ⓒ김윤경

'일일서재'에서는 매주 금요일 배렴가옥에서 직접 큐레이팅한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해볼 수 있다. 하루 1팀(최대 2인)만 받아 고요한 공간에서 무료로 필사하며 배렴가옥 세미나실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다. 지친 우리 마음을 보듬어 주는 공간을 통해 마음을 정화시키고 필사도 해보면 좋겠다. 접수는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가능하니 잊지 말고 신청해보자.
서울시에서는 2016년부터 '서울우수한옥'을 선정해 인증마크를 달아주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016년부터 '서울우수한옥'을 선정해 인증마크를 달아주고 있다. ⓒ김윤경

한편 서울시는 한옥 설계 및 시공한 건축가의 노력을 격려하고, 한옥 거주자의 긍지를 높이기 위해 2016년부터 ‘서울우수한옥’을 인증해오고 있다. 2001년에는 서울공공한옥을 시작해 한옥 소유자에게 세금을 감면해주며 한옥 공사비 등을 지원했다. 또한 2002년에는 서울시 한옥자원조례를 제정해 한옥관리지역을 지정했고 2021년에는 한옥유지관리 매뉴얼 책자와 수선 시범 동영상을 배포했다.
한옥에서 옛 선현들의 슬기를 배우면 좋겠다.
한옥에서 옛 선현들의 슬기를 배우면 좋겠다. ⓒ김윤경

불쾌지수와 무더위가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날들이다. 폭염을 피해 고즈넉한 서울의 한옥에서 더위를 식혀보면 어떨까. 한적한 대청마루에 앉아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보길 추천한다. 고요한 정취 속에선 한 줄기 바람의 고마움까지 고스란히 느껴질지 모르겠다. 

북촌문화센터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37
서울한옥포털
○ 문의: 02-741-1033

배렴가옥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9
○ 운영시간 : 10:00~18:00
○ 비용 : 무료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seoulbrhouse
○ 문의: 02-765-1375

시민기자 김윤경

서울을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고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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