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누릴 수 있길 바라요" 농인 배우 안정우를 만나다

시민기자 정선아

발행일 2022.04.21. 14:40

수정일 2022.04.22. 09:46

조회 1,855

국립극단 창작연극 '소극장판-타지'의 무용수이자 배우, 안정우의 이야기
국립극단 연극 '소극장판-타지'의 배우 안정우 ⓒ국립극단
국립극단 연극 '소극장판-타지'의 배우 안정우 ⓒ국립극단

그녀가 처음 무대에 섰을 때의 역할은 무용수였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안정우는 햇수로 3년 차 배우 활동을 한 농인 배우다. 무대에 서는 것이 제법 익숙할 법도 하건만 스스로 ‘신인’이라고 자처하는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의 겸손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농인 배우이다 보니 배역을 맡는 데 있어서도 다소 제한적이고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일 년에 한두 번이 될까 말까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생계의 어려움으로 직결된다. 더군다나 그녀는 아이 엄마다. 이미 육아와 연기를 병행하고 투잡을 뛰고 있는 셈이다. 
공연 연습 중인 배우 안정우, 현대무용을 전공한 덕분인지 몸을 이용한 표현력이 뛰어나다 ⓒ정선아
공연 연습 중인 배우 안정우, 현대무용을 전공한 덕분인지 몸을 이용한 표현력이 뛰어나다 ⓒ정선아

하지만 무대가 좋은 그녀는 배우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바램도 크거니와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무대에 서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매우 큰 보람이다. 2019년 장애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통해서 처음으로 연극을 접했던 그녀는, 그때 함께했던 연출자가 무용 장면을 넣고 싶다고 제의함으로써 두 번째로 연극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이후 본격적으로 연극배우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참여하는 연극에 항상 무용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정우는 배우라고만 불리기보다는 무용수 및 배우라고 불리길 바란다. 본업이 무용수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무용으로 다져진 내공의 힘 덕분인지 실제로 연극 무대 위에서 몸을 이용한 표현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배우라고만 불리기보다는 무용수 및 배우라고 불리긴 바란다는 안정우 씨 ⓒ정선아
배우라고만 불리기보다는 무용수 및 배우라고 불리긴 바란다는 안정우 씨 ⓒ정선아

제 아무리 좋다고 한들 연극배우 활동이 매번 단비와 같을까. 농인이지만 청인과 함께 자랐기에 수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연극 연습을 할 때마다 소통의 벽에 자주 부딪힌다고 한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하는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같이 작업하는 배우와 스태프 간에 말 한마디 주고받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소극장판-타지'의 연습 과정에서 스태프 간의 대화가 자막으로 송출되고 있다. ⓒ정선아
'소극장판-타지'의 연습 과정에서 스태프 간의 대화가 자막으로 송출되고 있다. ⓒ정선아

그래서 이번 연극은 더욱 특별하다. 국립극단 ‘소극장판-타지’ 연습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스크린에 송출되고 있는 자막이다. 농인 배우를 위해 연습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화가 자막으로 송출되고 있는 것. 농인 배우 안정우의 눈은 매우 바쁘다. 연출자의 피드백을, 동료 배우와의 소통을, 눈으로 부지런히 쫓아서 머리에 입력하기 바쁘다. 매번 연극 때마다 소통의 부재를 느꼈던 그녀로서는 이번 연극의 준비 과정이 가뭄의 단비처럼 목마름을 해갈해 주지 않나 싶다. 

그녀도 스스로 이 연극이 특별하다고 느끼고 있다. 바로 함께 하는 배우들도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각 장애, 뇌병변 장애 등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배우들과 함께 만드는 연극이다. 서로 다른 장애가 있는 사람끼리 일상생활에서 만날 일이 거의 없는데 이번 ‘소극장판-타지’ 연극 내용은 몸의 상태가 다르고 각자 다른 장애가 있는 사람끼리 만나서 겪는 상황과 고민을 담은 것이라 한다.

일반적인 연극은 대본을 따라 작품 장면이 만들어지는데 이번 연극은 독창적인 창작을 목적으로 논쟁과 논의를 통해 대본과 장면이 수평적 관계로 만들어졌다. 그녀 스스로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연극이라고 기대감이 크다. 
'소극장판-타지' 연습 중인 배우와 수어 통역사 ⓒ정선아
'소극장판-타지' 연습 중인 배우와 수어 통역사 ⓒ정선아

연극 연습을 할 때 배우들 외에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수어 통역사다. 실제로 이 연극에선 배리어프리를 위하여 수어 통역, 자막, 음성 해설을 준비하고 있다. 배리어프리란 고령자나 장애인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제거하자는 운동. 이번 공연은 청각장애가 있는 관객을 위하여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이며 배우의 대사를 수어로 통역하고, 시각장애가 있는 관객을 위해서는 공연 장면을 음성해설로 제공한다. 

예매 방법도 시·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단연 돋보인다. 실제로 청각 장애가 있는 필자의 경우엔 전화 통화가 어려운데 네이버 톡톡을 이용해 예매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공연 개막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인 배우들 ⓒ정선아
공연 개막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인 배우들 ⓒ정선아

농인 배우 안정우는 이번 공연을 끝으로 육아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번 공연에 큰 에너지를 쏟으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기에 후회 없이 공연을 마무리 하고 싶은 것이 바람이다. 그래서 연습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하지만 무대에서 그녀를 계속 보고 싶은 것은 왜일까. 홀로 꿋꿋하게 걸어온 그녀의 배우 인생에도 조금 더 많은 벽들이 허물어져 배리어프리가 실행되는 것을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국립극단 창작연극 '소극장판-타지' 포스터  ⓒ국립극단
국립극단 창작연극 '소극장판-타지' 포스터 ⓒ국립극단

배우가 안정우가 말하는 배리어프리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중요성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누리자 라는 신념이다.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배리어프리다.

필자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예전 같으면 연극을 보러 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연극을 보러 가서 농인의 언어인 수어로 관객을 만나는 배우를 볼 수가 있으며, 무대 한편에 제공된 자막을 통해 배우의 대사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배리어프리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연극을 보러 간다는, 지극히 평범한 설렘을 이번 국립극단 창작공연 ‘소극장판 -타지’에서 느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더불어 다양한 관객들이 농인 배우 안정우의 라스트 댄스를 함께 손뼉 치며 마주할 수 있기 바란다.

국립극단 창작연극 '소극장판-타지'

○ 공연일시 : 2022년 4월 20일~5월 1일까지(전 회차 음성 해설, 한글자막, 한국수어통역 운영)
국립극단 홈페이지

시민기자 정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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