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자랑스러운 이유, 공평동 금속활자 발굴 현장에서 찾다!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10.06. 11:04

수정일 2021.10.07. 09:04

조회 1,579

일성정시의, 물시계 등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유물도 나와...

지난 6월 탑골공원 옆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나지역) 내 유적 발굴조사’에서 유물들이 대거 출토됐다. 조선시대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과 자동물시계의 부품 '주전',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1점, 그리고 총통과 동종 등이었다. 그 가운데 물시계 주전과 일성정시의 등은 기록에만 존재하던 것으로 실물을 접하게 된 학계가 들썩였다.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나지역) 내 유적 발굴조사’ 현장 ⓒ이선미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나지역) 내 유적 발굴조사’ 현장 ⓒ이선미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 금속활자가 나왔다는 유적 발굴 현장을 찾았다. 종로YMCA에서 승동교회 골목으로 들어가자 곧장 유적 발굴조사 현장이 나왔다. 수도문물연구원 현장조사 양현모 팀장의 안내로 발굴된 지점과 유물 발굴 당시의 상황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양 팀장은 금속활자가 처음 발견될 당시에도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한다.  
금속활자 등이 발굴된 공평동 제15·16지구 유적지 위성사진. 탑골공원과 승동교회가 가까이 있다.
금속활자 등이 발굴된 공평동 제15·16지구 유적지 위성사진. 탑골공원과 승동교회가 가까이 있다. ⓒ문화재청
양현모 수도문물연구원 팀장이 발굴 현장을 안내해 주었다. ⓒ이선미
양현모 수도문물연구원 팀장이 발굴 현장을 안내해 주었다. ⓒ이선미

발굴조사 현장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중심부로, 의금부 같은 관청과 시전 행랑이 위치했던 운종가 근처다. 양현모 팀장은 유물 발굴 지점에 불을 땐 흔적이나 온돌 같은 시설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창고였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수도문물연구원과 한울문화재연구원에서 구역을 나눠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선미
수도문물연구원과 한울문화재연구원에서 구역을 나눠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선미

유물들은 지표면 아래 3.5미터 정도인 16세기 문화층에서 발굴됐다. 처음에는 소형 화기인 총통이 나왔다. 4대문 안에서도 총통은 몇 번 발굴된 적이 있기 때문에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유물들은 누군가 일부러 묻어 놓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옆에서 금속 유물이 나왔다. 물시계 부속품인 주전과 둥근 모양의 환 조각들이 나오고 동종의 파편도 있었다. 확인 결과 둥근 환은 세종 때 만들었다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였다. 
일성정시의 및 동종 출토 당시 모습
일성정시의 및 동종 출토 당시 모습 Ⓒ문화재청
<세종실록>에 제작 기록만 있던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이번에 처음으로 실물이 발굴됐다.
<세종실록>에 제작 기록만 있던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이번에 처음으로 실물이 발굴됐다. ⓒ이선미

금이 간 도기 항아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항아리를 들어올리자 공깃돌 같은 파편이 떨어졌다. 세척해 보니 금속활자였다. 활자들은 낱개로 떨어졌지만 뭉뚱그려진 것들도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는 조각들은 발견된 구역에 놓는다. 한꺼번에 모아두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이선미
발견되는 조각들은 발견된 구역에 놓는다. 한꺼번에 모아두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이선미

전문가들의 판독 결과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가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 등을 확인했다. 서지학자들은 기록으로만 보던 활자의 실물을 보며 감개무량하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현재 출토 유물들은 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고고학적 가치가 인정된 현장에는 발굴조사 후 세워질 빌딩 지하에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과 같이 유적관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적 발굴 현장.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이선미
유적 발굴 현장.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이선미
연구원들과 현장작업자들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 발굴 현장 ⓒ이선미
연구원들과 현장작업자들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 발굴 현장 ⓒ이선미

전문가에게 듣는 한글·한자 금속활자 이야기

이번 발굴에서 가장 반가운 유물 가운데 첫 번째가 한글 금속활자다. 그 동안 조선 후기의 금속활자는 보고된 사례가 많았지만, 이렇게 조선 전기의 활자들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은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고 역사적인 발견이라고 한다. 인사동 유물을 확인한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이승철 팀장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이 팀장은 ‘금속활자 주조기술’로 박사학위를 받은 금속활자 전문가이기도 하다.
실물이 발굴된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 금속활자ⓒ
실물이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문화재청

Q. 동국정운식 표기에 따른 한글 금속활자를 처음으로 확인했는데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이 발견의 의의는?

"금속활자를 검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장에 갔을 때는 조선후기 정도 활자가 아닐까 했는데 총통류 자료들과 비교해 보니 임진왜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그 안에 인쇄본으로만 전해지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따른 활자가 보였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은 사대부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임금은 한자를 아예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자와 한글을 함께 쓰는 것임을 밝혔다. 이를 위해 사용한 것이 중국한자음을 우리말로 표기한 동국정운식 표기법이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1455년경 주조된 을해자 30여 점이 있는데, ‘동국정운’은 1448년 간행되었으므로 시기가 앞선다. 이 표기법은 3, 40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인쇄본으로만 전해졌다. 이번 발굴로 실물 활자와 인쇄본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Q. 한문 금속활자 중에도 의미 있는 발견이 있다고?

"이번에 발굴된 한자 금속활자는 아주 다양하다. 그 중에 1434년 만들어진 갑인자는 ‘조선 금속활자의 꽃’이라고도 불릴 만큼 유려하고 깔끔하다. 갑인자는 생김새가 정사각형으로 균일해 다른 활자와 확연히 다른데, 1차 육안 감식에서 갑인자 인쇄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글자가 8개 확인됐다. 이 활자가 갑인자로 최종 공인된다면 구텐베르크보다 20년 빠른 연대가 확인돼 세계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Q. 이번에 발견된 금속활자 등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도 있는가?

"유네스코문화유산이 되려면 진정성, 독창성, 완전성 등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학계의 연구와 검증이 전제돼야 한다. 조심스럽지만, 이번에 발굴된 금속활자와 국립중앙박물관, 규장각에 보관된 금속활자들을 종합해 연구가 이뤄지고, 국제적으로 역사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금속활자는 사람들이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서적이라는 매체의 수단으로서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Q.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면?

"연구자 입장에서 이렇게 중요한 유물을 가장 먼저 확인했다는 사실에 며칠은 잠이 안 올 정도로 기뻤다. 일반에게는 금속활자가 어떤 글자인지, 어느 시대에 어떤 책을 기록했는지 등이 중요하지만 ‘금속활자 주조기술’ 연구자로서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활자의 생김새, 특히 뒷모양과 크기, 획의 각도 등을 통해 주조기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데이터들이 주조기술을 복원하는 데 큰 단서를 제공해주리라고 기대한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한글 금속활자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한글 금속활자 ⓒ문화재청

흔히 종로를 ‘조선의 폼페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서울에는 몇 개의 역사적 층이 켜켜이 존재한다.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며 재건하는 과정에서 묻혔던 유물들의 발견이 그래서 더 반갑다. 특별히 훈민정음 창제 즈음에 쓰인 한글 금속활자의 발견은 ‘백성들이 쉽게 표현하고 알아듣게 하기 위해’ 한글을 만든 세종의 고마운 의지를 상기시킨다. 한글은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히려 우리가 한글을 허투루 대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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