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쓰레기 줄이는 '다회용컵' 빌려주는 기업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1.08.02. 15:37

수정일 2021.08.02. 15:47

조회 6,623

서울시 청년 임팩트 투자기업 '트래쉬버스터즈', 재사용 문화 확산 노력

“플라스틱 제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무조건적인 사용 억제보다는 이미 생산되고 사용된 플라스틱을 재사용하고 이를 순환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린피스의 2019 플라스틱 보고서 중에서)

결국 플라스틱 사용 여부보다는 플라스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기존에 생산된 플라스틱을 버리지 않고 순환하게 만드는 것이 지속 가능한 환경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플라스틱 처리 문제를 두고 고심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기업이 있다.
제로 웨이스트 커피점에서 다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내줬다.
제로 웨이스트 커피점에서 다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내줬다. ⓒ윤혜숙

산책을 하다가 시원한 음료를 마실 겸 우연히 들른 커피점에서의 일이다. 제로 웨이스트 매장이었다. 매장에 비치된 오렌지색 안내문에 눈길이 갔다. 다회용 컵 사용 후 반납하는 순서가 제시돼 있었다. 음료를 마실 때 선택권이 주어졌다. 본인이 지참한 컵이 없다면 매장에서 마시고 반납하면 된다. 컵을 가져가려면 보증금을 내야 했다. 물론 나중에 컵을 반납할 때 보증금을 되돌려준다. 잠깐 망설이다가 컵을 반납하러 재방문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매장에서 마시기로 했다. 

직원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오렌지색 컵에 얼음과 함께 음료를 담아줬다. 그동안 커피점에서 본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비교해 훨씬 단단했다. 다회용 컵이어서 그런가 보다. 음료를 다 마시니 직원이 싱크대에 얼음 및 음료를 버린 뒤 자동 컵 세척기에 컵과 뚜껑을 차례대로 올려서 물로 헹군다. 그리고 컵과 뚜껑을 구분해서 반납함에 집어넣는다. 다회용 컵 반납함이다. 그 앞에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다회용 컵만 넣어주세요.”라고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직원이 다회용 컵의 남은 음료를 버리고 있다.
직원이 다회용 컵의 남은 음료를 버리고 있다. ⓒ윤혜숙

음료를 마시는 동안 지켜보니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관심을 갖고 자꾸만 물어본다. 다회용 컵 사용의 취지를 알려주면 다들 친환경을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한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매장의 직원은 “제로 웨이스트 매장답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다회용 컵을 대여하기 전에는 직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주방에서 컵을 씻었다. 그에 비하면 주방 일이 줄어서 훨씬 편하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취지에 따라서 기꺼이 동참해 주고 있다”고 감사를 전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커피점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매장의 직원이 손님이 사용했던 컵을 깨끗하게 씻는 것만 봤다. 여긴 달랐다. 다회용 컵을 수거해서 씻는 업체가 따로 있었다. 매장에서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해당 업체는 ‘트래쉬버스터즈’였다.
직원이 남은 음료를 버린 후 다회용 컵을 간단히 세척하고 있다.
직원이 남은 음료를 버린 후 다회용 컵을 간단히 세척하고 있다. ⓒ윤혜숙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래쉬버스터즈는 어떤 업체일까? 일회용품이 발생하는 다양한 곳의 문제들을 찾아서 해결해 나가는 기업이다. 축제, 행사장, 영화관, 야구장, 축구장, 장례식장, 배달까지 정부의 일회용품 사각지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찾던 중 일회용품을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를 생각해냈다.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는 세척, 살균, 재사용의 과정을 반복해서 거친다. 따라서 일회용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직원이 다회용 컵과 뚜껑을 분리해서 수거함에 집어넣고 있다.
직원이 다회용 컵과 뚜껑을 분리해서 수거함에 집어넣고 있다. ⓒ윤혜숙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축제가 끝나고 나면 엄청난 양의 일회용 쓰레기 더미가 생겨난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그뿐이다. 또한 서울시의 일회용품 사용 기준에 대한 공문 중 축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종의 사각지대였는데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자 ‘지속 가능한 도시 모델' 만들기 스터디 모임이 결성됐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던 축제기획자 곽재원 대표, 브랜드 컨설턴트 김재관 이사, 디자이너 최안나 이사, 설치작가 곽동열 이사가 모여 트래쉬버스터즈를 창업했다. 마침 서울시에서 ‘서울시 청년 임팩트 투자'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었고, 2019년 9월 법인을 세운 뒤 투자 지원 후 2년간 자금을 지원받았다.
2019년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행사장에서 다회용기를 선보였다.
2019년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행사장에서 다회용기를 선보였다. ⓒ트래쉬버스터즈

지난 2019년 곽재원 대표가 담당자로 있던 서울숲 재즈페스티벌에서 다회용 식기 사용 테스트를 진행했다. 축제 현장에서 일반 고객은 일정 보증금을 내고 식기를 대여했다. 입점 업체는 일회용품 사용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주최 측에서는 쓰레기 처리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관객 수는 전년 대비 늘었음에도 매해 400여 개씩 나오던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5개로 줄어들었다. 일회용기를 다회용기로 바꾼 것만으로 낸 큰 성과였다. 축제와 행사에 초점을 맞춰 시작한 트래쉬버스터즈는 코로나19로 많은 행사가 취소되면서 다음 모델로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분야로 서비스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해 배달시장이 급증하면서 일회용 쓰레기 대란을 만들고 있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렇다면 트래쉬버스터즈의 다회용 컵은 어떻게 제작될까? 다회용기는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소재인 BPA FREE PP(폴리프로필렌)라는 플라스틱 소재로 제작되고 있다. 소재를 선택하는 기준에서 재활용 및 다회용이 가능한지 두 가지에 중점을 두었다고. 300~400번 사용 후 재생해서 쓸 수 있는 소재라서 플라스틱을 다회용기 소재로 선택했다. PP 소재는 사용 후 손상 및 훼손이 되면 가루로 만들어서 다시 원제품으로 생산하고 또다시 가루로 만들어서 재생하는 순환시스템이다. 또한 열전도율도 낮고 가벼워서 야외에서 사용하기 쉽다. 
트래쉬버스터즈에서 수거한 다회용 컵은 총 6단계로 세척하는 과정을 거친다.
트래쉬버스터즈에서 수거한 다회용 컵은 총 6단계로 세척하는 과정을 거친다. ⓒ트래쉬버스터즈

다회용기 대여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회용기를 수거한 뒤 세척하는 부분이다. 제로 웨이스트 매장에서 직원이 세척하는 것은 일종의 초벌 세척이라고 보면 된다. 컵을 수거하기 전 컵 안의 내용물을 물로 간단히 헹구는 과정인 셈이다. 그 이후 총 6단계의 전문 세척 시스템으로 다회용 식기를 관리한다. 수거한 다회용 식기는 1) 초음파 세척 2) 불림·애벌 세척 3) 고온·고압수 세척 4) 열풍 건조 5) UV-C 살균 소독 6) 정밀검수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진공 포장되어 출고된다. 

UV-C (자외선) 살균 소독을 통해 바이러스는 99% 박멸되고, 꼼꼼히 검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위생적이고 안전하다. HACCP 인증에 사용되는 ATP 오염도 측정기로 오염도(미생물)를 테스트한 결과, 트래쉬버스터즈의 다회용기는 식품 위생 안전 기준인 200RLU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인 19RLU로 확인되었다. 이는 포장 제거 직후의 일회용 컵의 125RLU보다 더 낮은 수치다.

다회용 컵의 경우 하루 800잔을 다회용 컵으로 전환 시 약 41,600g의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 월 832,000g(연 9,984,000g)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드는 등 탄소 배출 감소 효과가 있다. 또한 75리터 쓰레기봉투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평균적으로 100개~150개 정도가 들어간다. 75리터 쓰레기봉투 7개가 절약되고(15,000원 상당) 이는 월 140개, 연 1,680개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올 4월부터 다회용 컵 대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KT 광화문지사의 경우 쓰레기봉투의 사용량이 기존의 약 1/10 정도로 감소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KT 사내카페에서 직원이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다.
KT 사내카페에서 직원이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다. ⓒ트래쉬버스터즈

트래쉬버스터즈는 다회용품 사용 시스템을 만드는 데 큰 목적이 있다. 일회용품과의 경쟁은 편리함과의 경쟁인 셈이다. '다회용기를 일회용품만큼 쓰기 쉽게 만들면 어떨까?' '플라스틱 자체를 더는 추가로 생산하지 않게 사이클을 닫아버리고, 파손이 되거나 훼손된 플라스틱 식기는 전량 그 위치를 추적해서 수거, 원재료화해서 다시 식기로 만들면 어떨까?' 란 질문에서 출발한다. 각 기업에서 생산한 플라스틱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만들고, 한국에서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등을 실천한다면 친환경을 위한 대안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이게 트래쉬버스터즈의 생각이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주문이 늘어나면서 일회용품 사용랑도 급증했다. 매장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각 가정에서의 수거 등의 문제가 있다. 트래쉬버스터즈 관계자는 "배달 음식은 종류가 상당히 많아 용기의 표준화가 되기 전까지는 시스템을 바꾸기 어렵다. 한 업체나, 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지자체나 배달 중개 플랫폼 등 다양한 분야가 함께 대안 솔루션을 찾아 해결해야 시스템이 바뀔 것”이라고 조심스레 입장을 전했다. 
커피점 매장에 부착된 다회용 컵 사용 안내문
커피점 매장에 부착된 다회용 컵 사용 안내문 ⓒ윤혜숙

업체가 아닌 개인도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까? 관계자는 “개인의 경우 행사 및 축제 등에서 최소 대여 수량부터 대여 서비스가 가능하다.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http://trashbusters.kr/)에서 상담을 통해 가능 여부를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습관을 바꿔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트래쉬버스터즈가 주도적으로 ‘재사용 문화’를 만들어갈 테니, 이러한 새로운 환경 문화와 함께 시민들은 각자 ‘함부로 버리지 않는’ 생활 방식에 동참해 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친환경을 위해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백 번의 말보다 다회용품을 사용하게 하는 한 번의 실천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트래쉬버스터즈의 다회용품 대여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좋겠단 생각이다.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재사용 문화가 자리잡길 바란다.

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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