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걷는 서울의 궁 여행, 종묘와 운현궁

시민기자 김혜민

발행일 2021.04.02. 10:09

수정일 2021.05.04. 16:17

조회 2,010

서울은 알고 보면 재밌는 유적지가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끔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그러다 보면 책 한 권을 읽은 듯 오래된 이야기들이 한 발짝 다가와 이야기를 건넨다. 첫번째 발길이 멈춘 곳은 종묘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종묘 영녕전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종묘 영녕전 ⓒ김혜민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옵소서"

임금 앞에 납작 엎드린 신하들이 간곡하게 외친다. 대체 종묘사직이 뭐길래 이렇게 간곡한 것일까? 신하들은 위태로운 종묘사직을 보존할 책임이 임금에게 있다고 진언한다. '종묘'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신위란 죽은 사람의 사진이나 지방 따위를 말하는데 죽은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사직'은 토지 신과 곡식 신을 일컫는다.
한적하고 고요한 종묘
한적하고 고요한 종묘 ⓒ김혜민
이제 제법 초록해진 종묘
이제 제법 초록해진 종묘 ⓒ김혜민

왜 조선시대 땐 종묘사직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조선은 유교 사상을 따랐는데 유교 예법에 따르면 국가의 도읍지에는 반드시 세 곳의 공간이 있어야 했다. 세 곳이란 왕이 머무르는 궁궐,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묘 그리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1394년 조선을 세울 때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한 후 가장 먼저 지은 것이 바로 이곳 종묘였다. 그만큼 종묘는 조선의 뿌리가 되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묘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세기 초에 중건하였고, 그 이후 필요에 따라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회색빛 도시는 사라지고 새소리만 들려오는 종묘
회색빛 도시는 사라지고 새소리만 들려오는 종묘 ⓒ김혜민
어두웠지만 가끔 햇살이 바닥에 그림을 그렸던 날
어두웠지만 가끔 햇살이 바닥에 그림을 그렸던 날 ⓒ김혜민

가볍게 한 바퀴 휙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새소리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만큼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입장료를 내고 종묘 외대문(정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신로를 마주한다. 부드러운 흙길 사이를 가로지르는 돌길 위로 올라섰다 '보행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란다'라는 안내문을 보고 헐레벌떡 발을 내려놓는다.

돌길 중 가장 가운데 약간 높은 부분이 혼령이 다니는 신로이고, 오른쪽 돌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 왼쪽 돌길은 왕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라고 한다. 이 돌길은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는 주요 건물인 정전까지 이어진다.
망묘루 앞에 자리한 연못
망묘루 앞에 자리한 연못 ⓒ김혜민
계속 걷고 싶은 길
계속 걷고 싶은 길 ⓒ김혜민

신로를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망묘루 앞에 조성된 연못을 마주한다. 오롯이 주변 풍경을 담담히 담아내는 연못 안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종묘는 제례를 지내는 공간이다 보니 물고기 한 마리도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죽은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공간답게 화려한 색상이나 장식을 억제하고 장엄하고 웅장하지만 담백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종묘 내 건축물의 특징이다.
고요하고 한적한 종묘를 둘러보고 종묘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운현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현궁 노락당과 그 뒤편에 자리한 운현궁양관
운현궁 노락당과 그 뒤편에 자리한 운현궁양관 ⓒ김혜민
운현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인 노락당
운현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인 노락당 ⓒ김혜민

'제 2의 궁궐' 운현궁의 봄

2006년 화제의 드라마였던 '궁'에서 황태자 부부가 살았던 '동궁양관'이 운현궁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운현궁 뒤편에 자리한 서양식 건물의 정확한 명칭은 '운현궁 양관'이다. 궁이라고 하면 장엄하고 웅장한 건물을 생각하는데 운현궁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그 이유는, 이곳은 고종이 출생한 후 12세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이기 때문이다. '잠저'란 왕세자와 같은 정상 법통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받은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지칭한다. 궁궐은 아니지만, 고종의 잠저이기 때문에 '궁'의 칭호를 붙일 수 있었다.
운형궁의 별당인 이로당
운형궁의 별당인 이로당 ⓒ김혜민
운현궁에는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운현궁에는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김혜민

왕의 아들이 아닌 고종은 어떻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강화도령'이라는 별칭을 가진 철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 '강화도'에서 평범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다 왕위에 올랐지만, 철종의 아들들은 유난히도 빨리 세상을 떠났고, 철종에겐 왕위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 게다가 철종마저도 단명했다.

하지만 고종은 달랐다.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철저한 계획에 따라 철종을 이어 왕위에 올랐다. 고종의 잠저인 운현궁은 철종의 잠저와 달리 '제2의 궁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운현궁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래도 제2의 궁궐인데! 
운현궁의 봄
운현궁의 봄 ⓒ김혜민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왕가의 상징인 운현궁이 축소되고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운현궁양관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조선의 왕족을 감시하고 회유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알려졌다. 
운현궁은 다양한 봄꽃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명소로도 이름난 곳이다. 멀리 가지 않고도 서울의 역사를, 그 안에 스며드는 봄의 따스함과 화사함을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이 봄, 발길 닿는 대로 서울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 종묘

○ 위치 : 서울 종로구 종로 157(종로3가역에서 도보 5분)
○ 운영시간
- 2월 ~ 5월, 9월~10월 : 9:00 ~ 17:00
- 6월 ~ 8월 : 9:00 ~ 17:30
- 11월 ~ 1월 : 9:00 ~ 16:30
○ 휴무일 : 매주 화요일
○ 입장료 : 어른(만 25세~64세) 1,000원
○ 홈페이지
○ 문의 : 02-765-0195

■ 운현궁

○ 위치: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64 (안국역 4번 출구에서 도보 3분)
○ 운영시간
- 11월~3월(동절기): 9:00~18:00
- 4월~10월(하절기): 9:00~19:00
○ 휴무일: 매주 월요일(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운영)
○ 입장료: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02-766-9090

시민기자 김혜민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여행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인 유튜버 여행작가 봄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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