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걸작 '세한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21.02.02. 12:11

수정일 2021.02.02. 17:07

조회 1,481

인생의 봄날과 겨울, 즉 가장 즐거운 때와 어려운 때를 한 곳에서 느껴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있어 다녀왔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 특별전이 4월 4일까지 열린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중단했던 박물관 운영을 재개했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특별전이 진행 중인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에 따라 30분 간격으로 50명이 입장할 수 있었다. 
혹한의 제주도 모습이 담긴 영상 ‘세한의 시간’은 김정희가 감내했을 고통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혹한의 제주도 모습이 담긴 영상 ‘세한의 시간’은 김정희가 감내했을 고통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박분

1부. 세한歲寒-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

전시는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주제로 구성한 1부 ‘세한’전과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를 주제로 구성한 2부 ‘평안’전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한 편의 영상이 펼쳐진다. 거센 파도와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등 혹한의 제주도 모습을 ‘세한의 시간’으로 해석한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줄리앙 푸스’가 이방인의 시선으로 표현했다.
‘세한의 시간’은 거센 파도와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등 혹한의 제주도 모습이 담긴 영상이다.
‘세한의 시간’은 거센 파도와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등 혹한의 제주도 모습이 담긴 영상이다. ⓒ박분

세한(歲寒)은 설 전후 가장 심한 추위를 이르는 말로 인생의 시련이나 고난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7분자리 영상은 세한도 속 세한을 보여줌으로서 제주도의 척박한 환경에서 김정희가 감내했을 고통과 절망감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국보 제180호, 김정희의 ‘세한도’는 전시장 복판에 전시돼 있었다. 장장 15m에 달해 전시실을 압도하는 모습이다. 두루마리 형태로 길게 펼쳐진 모습에 놀랍기도 했지만 말로만 들었던 세한도를 직접 볼 수 있어 감개무량했다. 
 15m의 길이로 전시실을 압도하는 세한도 모습 ⓒ박분
15m의 길이로 전시실을 압도하는 세한도 모습 ⓒ박분

1844년 조선 후기 당대의 대학자였던 김정희(1786~1856)는 제주도 유배지에서 그림 한 장을 그렸다. 귀양살이를 하는 스승을 위해 청나라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인 역관(통역을 담당한 조선시대 관직)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김정희는 이상적의 인품을 한겨울 바람 찬 언덕에 서있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했고 그러한 내용의 발문도 그림에 함께 실었다. 후대에 길이 남을 명작 ‘세한도’의 탄생 배경이다.  
김정희가 사용한 인장들, 인장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그는 수백 개의 인장을 사용했다.
김정희가 사용한 인장들, 인장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그는 수백 개의 인장을 사용했다. ⓒ박분

세한도는 조선 후기를 풍미하였던 추사 김정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조선 최고의 문인화로 평가 받고 있다. 문인화는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김정희는 ‘추사’, ‘완당’ 등 수많은 호를 사용했고 인장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져 이름과 자호, 좋은 시구를 새긴 수백 개의 인장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연히 훑어보다 찬 숲에 눈길이 이르니 한 폭의 그림은 분명히 좌우명이로구나” (오순소)
“여러 번 된서리를 맞아도 가지와 잎은 변함이 없고 온화한 기운이 서려서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네” (진경용)
“드리워진 저 송백의 자태 푸르름으로 혹독한 겨울을 이기네 어찌하여 굳센 가지를 쭉 뻗어 눈서리 속에 홀로 서있는가”(왕조)
세한도에 담긴 문인들의 감상 글 중 일부,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칭송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세한도에 담긴 문인들의 감상 글 중 일부,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칭송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박분

‘세한도’에 줄줄이 이어지는 문인들의 감상 글을 읽다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곧은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칭송하는 내용들이다. 따뜻한 응원과 격려의 글이어서 뿌듯함이 차오른다. 혹 김정희가 보았다면 큰 힘이 되었으리라. 문인들의 감상 글 뒤로 여백의 공간이 더러 보인다. 후일 또 다른 문인의 감상글을 위해 남겨둔 공간일 듯하다. 세한도를 마주한 관람객들이라면 아마도 저 빈 곳을 채울 감상 글을 저마다 한 줄, 떠올려보지 않았을까 싶다.

'세한도’는 청나라 문인 16인과 우리나라 문인 4인의 감상 글과 함께 두루마리로 꾸며졌다. 두루마리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앞쪽 바깥 비단 장식 부분에 ‘완당세한도’라는 제첨(서화의 제목을 써서 표지에 붙인 기다란 종이조각)이 보인다. 이상적은 청나라 문인들에게 받은 감상 글을 한데 묶어내면서 ‘세한도’에 감상 글을 남긴 청나라 문인 중 한 명인 은재 장목에게 제첨을 부탁했다고 전해진다. 세한도는 19세기 후반 이상적의 제자인 역관 김병신에게 전해졌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김준학에게 전해지고, 김준학은 세한도 앞쪽에 ‘완당세한도’라고 제목을 쓰고 시를 적어 넣었다. 세한도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소유주가 바뀌는 동안 조금씩 모습도 바뀌어갔다.  
 제자 허련이 그린 김정희의 초상화
제자 허련이 그린 김정희의 초상화 ⓒ박분

문인 학자들이 남긴 감상 글에서 김정희의 인물됨이 드러나듯 그에게는 송백과도 같은 벗과 제자들이 있었다. 전시는 제주 유배 기간 동안 편지와 물품을 주고받으며 김정희에게 위로가 되어준 초의선사, 제자 허련과의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제자 허련이 그린 온화한 모습의 김정희 초상화도 보인다. 김정희는 송백과도 같은 벗과 제자가 있어 제주에서 많은 작품 제작을 하며 세한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오세창, 손재형, 후지쓰카 지카시 등 일제 36년의 세한에 송백의 정신을 지킨 사람들의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세창, 손재형, 후지쓰카 지카시 등 일제 36년의 세한에 송백의 정신을 지킨 사람들의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분

지난 세월 동안 주인이 열 번 넘게 바뀌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곁으로 돌아온 세한도! 우리들 품에 돌아오기까지의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김정희가 남긴 예술과 학문을 이어가며 송백의 정신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라는 36년간의 세한 동안 오세창은 우리 문화재를 지키며 김정희 금석학의 맥을 이었고 김정희를 존경한 손재형은 1944년 폭격의 위험을 무릎쓰고 일본으로 가서 세한도를 되찾아왔다. 그리고 일본인이면서도 평생에 걸쳐 김정희를 연구한 후지쓰카 지카시까지 결국 이들 덕분에 세한도는 지켜질 수 있었다.

이번 전시가 세한도 기증을 기념하는 특별전인 만큼 전시실 한쪽에서는 ‘세한도’를 국가에 기증한 손창근 선생과 그의 부친 고 손세기 선생의 숭고한 뜻을 널리 알리고 있다. 두 부자는 ‘세한도’ 외에도 ‘불이선란도’를 비롯한 김정희의 다양한 작품 모두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2부 ‘평안' 전시실로 들어서면 평안감사를 맞아 잔치 준비에 분주한 백성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전개된다.
2부 ‘평안' 전시실로 들어서면 평안감사를 맞아 잔치 준비에 분주한 백성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전개된다. ⓒ박분

2부. 평안平安-어느 봄날의 기억

2부 ‘평안-어느 봄날의 기억’은 연광정 부벽루 대동강 등 세 장소를 배경으로 그린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를 바탕으로 구성한 미디어전시이다. 

“꽃피는 봄날 새로 부임한 평안감사가 그 첫발을 내딛습니다. 조선 팔도 감사 부임식 중에서도 평안감사를 환영하는 잔치는 가장 화려하고 성대했습니다.” 전시장 입구에 소개된 글을 읽으면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면 평안감사를 맞이하러 잔치 준비에 분주한 백성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전개돼 마치 관람객 자신이 평안감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중 부벽루연회도 미디어전시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중 부벽루연회도 미디어전시 ⓒ박분

연광정연회도, 부벽루연회도, 월야선유도 등 그림 3점으로 이뤄진 ‘평안감사향연도’는 평안감사의 ‘영광과 위엄’을 자랑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대작이다. 눈여겨보면 잔치를 준비하는 관리들의 모습뿐 아니라 잔치를 즐기는 백성들의 흥겨운 모습도 다루고 있다. 
김홍도의 '평양감사향연도' 중 '월하선유도' 미디어전시
김홍도의 '평양감사향연도' 중 '월하선유도' 미디어전시 ⓒ박분

전시는 그림뿐 아니라 3점의 그림을 바탕으로 한 영상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을 재구성한 영상은 재미난 볼거리다.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형식의 영상, 학춤, 북춤 등 무용수가 공연하는 영상, 대동강 달밤의 뱃놀이를 재현한 영상 등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관람객들이 ‘평안감사향연도’를 미디어전시 통해 감상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평안감사향연도’를 미디어전시 통해 감상하고 있다. ⓒ박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 특별전은 한겨울 추위와 같은 세한의 시기가 지나면 봄날 같은 평안의 시기가 찾아온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힘든 나날을 견디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전시이자 추사 김정희의 최고 걸작 ‘세한도’를 직접 감상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한겨울 지나 봄 오듯 - 세한歲寒 평안平安> 특별전 관람 안내

o 기 간 : 2020. 11. 24.(화) ~ 2021.4.4.(일)
o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o 전시품: <세한도>(국보 제180호), <평안감사향연도> 등 18점
o 입장 : 회차당(1회 30분) 50명 선착순(인터넷 예매 40명, 현장 발권 10명)
o 입장료 : 성인(만 25세~65세) 5,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만7세~25세) 3,000원
o 티켓문의 : 1688-0361
o VR 온라인 전시 ☞바로가기

시민기자 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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