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진만 찍는 공무원
admin
발행일 2009.12.08. 00:00
저는 작가가 아니라 '잡가'입니다 "사진기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형님께서 집안 행사를 촬영하기 위해 어렵게 빌려온 것이었죠." 그가 처음 카메라를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카메라라는 물건이 마냥 신기해 형님 곁에서 한 번만 만지게 해달라고 졸랐던 것이 엊그제 같다. 당시 그의 형님은 동생의 간절한 소원을 뿌리치고, 잘 때조차 머리맡에 사진기를 고이 모셔두었다. "당시 카메라는 정말 귀한 것이었죠. 조그만 집 한 채 가격 만했으니까요." 나영완 주임은 어린 호기심에 형님의 머리맡에 있던 카메라를 몰래 가져와 자신의 방에서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통 어떻게 찍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만져도 찰칵, 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 그는 덜컥 고장을 냈나 싶어 서둘러 원래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고 회상한다. "나중에 왜 안됐는지 알았죠. 필름을 돌린 다음에 찍어야 했던 것이죠."(웃음) "스물셋 되던 해에 처음 카메라를 구입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주임은 자신만의 카메라를 장만하고, 카메라를 배우기 위해서 스승을 찾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진강좌가 많지 않아서, 카메라 기술은 도제방식으로 전수됐다. 그는 몇 개월 동안 카메라 사용법을 익히고, 또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러나 초기에는 단순한 취미생활이었다고. "당시에 사진은 고급 취미 생활에 속했죠."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부담해야 했던 비용들을 하나둘 열거한다. "출사를 나가려면 교통비ㆍ식비가 들고, 카메라만 하더라도 필름값ㆍ인화비ㆍ슬라이드비까지 들어가니 한 번에 수 십 만 원은 돈도 아니었던 것이죠." 그는 직업적인 사진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술자로 일할 때에도 음식점을 운영할 때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사진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른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그것이 그의 고민이었고, 매일 같이 다음 출사 나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생업보다도 사진이 우선시 될 때도 있었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알게 된 것은 사진은 발로 찍는다는 겁니다. 돌아다니지 않으면 찍을 것도 없는 것이죠."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좋은 사진을 얻을 기본이 된 것이고, 다음은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만 한단다. 그래야 조금은 괜찮다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고. "저요? 만족스런 컷은 평생 10컷도 안됩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한 컷도 없죠." 그러면서 그 자신은 작가라기보다는 '잡가'라고 강조했다. 이것저것 관심 가는 것에 사진기를 가져다 놓고 들여다보는,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진 찍는 공무원, 좀 이질적이긴 하죠
"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정신이 나갔다고 했죠." 불혹의 나이, 나영완 주임은 공무원의 길을 선택한다.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잠시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서울의 아름다움을 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사진작가들은 다들 돈도 되지 않고 고생만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금 그들은 저를 부러워하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사진을 찍는 공무원이라는 것이 좀 이질적이긴 하죠." 다른 공무원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이 있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조금은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동료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그는 서울의 곳곳을 다니면서 풍경을 담아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부럽다고 해요. 때로 좋은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더운 여름 땡볕에서 뛰어다니거나, 추운 겨울 옥상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는 그리 좋지만은 않죠." 공무원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는 몇몇은 자신의 생활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바쁘지 않은 시간, 자신과 함께 근처에 나가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쉽지 않음에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고. "서울이라면 안 가 본 곳이 없어요." 사진을 찍으러 10여 년간 서울을 누비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곳은 다 가 봤다는 나영완 주임. 그러나 아직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이유는 서울은 하루하루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그런 그에게 깊은 잔상을 남기는 기억은 몇몇 흥미로운 기억과 죽을 뻔했던 순간들이다. "한번은 히딩크 감독과 사진을 찍은 적이 있죠." 히딩크 감독은 당시 연패로 인해서 국내에서 인기가 없었는데, 어느 행사장에 갔을 때 그를 보게 된다. 그때 함께 간 동료들을 한 컷 찍어주겠다고 해서 찍었다. 그 이후로 4강신화를 이루며 더없이 귀중한 사진이 되었다고. "사진이란 그런 것 같아요. 찍을 때는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가 달라지죠. 그게 또 사진의 힘이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다가 죽을 뻔한 적도 많습니다." 그는 비원에서 사진 찍기 좋은 풍경을 살피다가 떨어져 돌에 부딪쳐 다친 적도 있고, 급하게 사진을 찍다가 걸림목에 걸려서 사진기를 박살낸 적도 있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 추운 겨울 눈이 흠뻑 쌓인 곳에서 설경을 찍으려고 북한산을 혼자 수차례 미끄러지면서 오른 적도 있고,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서 헬리콥터를 타고 체감온도 영하 30도 이상인 곳에서 해뜨기 전 1시간을 문을 열고 기다린 적도 있다. "그때 정말 대단했죠. 손가락이 어는 것은 물론이고, 카메라도 온도가 안 맞아 작동을 안 했죠. 그때 수동으로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품에 안고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값비싼 촬영을 망칠 뻔했던 거죠." 누비다보면,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많은 곳을 다니다 보니, 정말 서울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보는 건 한옥과 성벽입니다." 서울에서 한옥은 북촌 일대가 대표적이다. 지키려고 많은 이들이 애를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자신도 변화해 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자주 그곳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성벽의 경우에는 집 근처라서 자주 보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최근 복원을 하면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변화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서 일주일에서 한 번 이상은 성벽 주변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이건 제가 지갑 속에 넣어 다니는 보물지도죠." 그가 꺼내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몇몇 종지 조각이었다. 그 중 하나는 서울의 다리 이름과 다리의 모습이 잘 나오는 곳을 표시한 쪽지였고, 다른 하나는 서울의 전망을 잘 살필 수 있는 고층빌딩의 담당자 연락처,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서울의 일출, 일몰 시간이 적힌 쪽지였다. "이게 또 하나 재산이죠." 그는 막상 막막한 순간에 지갑 속의 보물지도를 꺼내서 본다. 그러면 오늘 날씨가 어떠니 어디 가면 작품 사진이 하나 나오겠다는 것이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한다.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년 이후에는 문화해설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서울에 대해서 공부도 많이 하고 있고, 관련된 책도 자주 찾아보곤 하죠." 나영완 주임은 앞으로 서울의 아름다움을 전문적인 지식과 함께 소개해 주는 문화해설사가 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어린 학생들은 물론이고, 서울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서울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끼게 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만이 알고 있는 소중한 공간들을 재미있게 설명해준다면 그것보다도 보람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는 최근 관심을 가지게 된 서울의 지리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사는 곳이 와룡동인데, 그곳에서 자신의 집이 용의 눈에 해당된다는 설명이었다. 용의 눈을 떠올리다가, 혹시 나영완 주임이 그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눈이 되어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눈은 많은 사람들의 눈이 되어서 서울의 아름다움을 소개해 주는 것 같았다. 오늘도 서울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또 사진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고 있는 나영완 주임. 그의 작업은 그의 사진처럼 시간이 지나면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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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김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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