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최순우 옛집

admin

발행일 2008.06.02. 00:00

수정일 2008.06.02. 00:00

조회 1,819



시민기자 최근모




“한국적 아름다움”
자주 쓰는 말이지만 곰곰이 그 뜻을 생각해보면 아리송한 점이 있다. ‘중국’ 하면 일단 대륙적 기질에서 나오는 웅장함, ‘일본’ 하면 작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성북동에 가면 그 해답이 있다.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故 최순우 선생의 옛집에 가면 무엇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인지 확연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에게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로 잘 알려진 선생은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아는 심미안을 소유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기거하던 성북동 옛집에 다녀왔다.

한성대 입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홍익중고에서 내린다. 표지판이 있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뒤에서 경찰대 제복을 입은 학생들이 걸어온다. 그들도 초행길인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버스를 기다리던 노인 한 분이 그들에게 자청해서 길 안내를 한다. "최순우 옛집? 저기 보이잖아. 길 건너편에 표지판 보이지?..." 노인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표지판이 보인다. 경찰대 학생들과 예기치 않은 동행을 하게 됐다.


골목길 초입에 유일하게 남은 한옥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옥 특유의 반쯤 열린 대문을 통해 보이는 안채의 모습이 정겹다. 아주 오래된 향나무가 마당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尋牛莊)에 갔을 때도 마당 한 쪽에 향나무가 있었다. 크지 않은 마당과 앉아 쉬기 좋은 툇마루. 우물과 뒤뜰로 나 있는 작은 길. 일부러 화려하게 멋 내지 않고 그렇다고 빈약하지도 않은 소박함.

뒤뜰로 난 작은 길로 발길을 잡는다. 박석(薄石) 같은 큼지막한 돌들을 이정표 삼듯 바닥에 깔아 놓았다. 앞마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단출한 소박함에 약간 실망을 했는데, 뒤뜰에 도착하고서야 왜 최순우 선생을 최고의 심미안으로 꼽는지 알 수 있었다. 앉는 이를 겸손하게 맞아주듯 낮게 배치되어 있는 툇마루. 그곳에 앉게 되면 작은 문신석들이 초록빛 녹음 속에 숨어 보는 이와 숨바꼭질을 한다. 담 위에 넝쿨을 튼 담쟁이들 밑으로 탐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 장독대와 기단 위에 올려진 큼지막한 백자 항아리. 아름다운 평화로움이다.

아침 내내 가늘게 내리던 비가 갑자기 처마 위로 툭툭거리며 굵직한 빗줄기를 뿌린다. 비 오는 풍경에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툇마루에 내려놓았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한옥 툇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 것만큼 더 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바로 옆에 보온병과 찻잔이 놓여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따뜻한 보리차를 마련해 놓았다. 툇마루에 앉아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대비를 보며 여유롭게 마시는 보리차 한 잔. 찻잔을 잡은 손으로 얼굴도 모르는 방문객을 위해 준비한 집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게 전해져 온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과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 최순우 옛집 가는 길 http://nt-heritage.org/choisunu/main_3.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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