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와 장미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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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7.05.31. 00:00

수정일 2007.05.31. 00:00

조회 2,284



시민기자 이승철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 창문을 열자 살며시 스며든 꽃향기가 발길을 뒷동산으로 인도한다. 향기의 주인공은 아카시아 꽃이다. 엊그제 내린 비 때문인지 꽃은 더욱 싱그럽고 향기도 진하다. 이 세상의 수많은 꽃향기 중에서 아카시아를 당할 꽃이 있을까?

뒷동산 숲속은 온통 아카시아 향기로 넘쳐난다. 숲에 아카시아 나무가 제일 많기 때문이다. 어른 키만큼의 작은 나무에서부터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나무들까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저마다 하얀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고 있어서 나무와 꽃들이 몹시 흔들리고 있었지만 어디서 날아왔는지 그 바람을 헤집고 수많은 꿀벌들이 꽃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꽃향기가 진한 만큼 꿀도 많기 때문이리라.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꼬마들 몇이 노래를 부르며 위에서 뛰어 내려온다. 산동네 개구쟁이 들이다. “너희들 아카시아 꽃이 뭔지 알아?” 녀석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에이! 여깃잖아요, 이 꽃이 아카시아 꽃인데 아직도 모르세요?”

녀석들은 꽃을 활짝 피운 나무를 발로 툭툭 차고 잽싸게 달아난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기분도 상쾌하다, 강북구 오동공원 나지막한 뒷동산은 아카시아 꽃이 뒤덮여 거의 하얀 빛깔이다. 그런데 그 아카시아 나무들 밑에도 또 다른 꽃들이 다투어 피어 있었다.

붉은 병꽃 나무 들이었다. 푸른 잎 사이사이에 한껏 붉은 꽃들이 촘촘히 피어 있는 모습이 여간 고운 자태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아카시아 그늘에서는 젊은이 하나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빠진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아카시아 향에 취해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길가의 연립주택 창가에는 꽃봉오리가 한껏 부푼 장미덩굴이 금방이라도 빨간 꽃들을 피워낼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아카시아 향에 이끌려 뒷동산으로 가는 길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파트 울타리의 장미와 찔레 덩굴들도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찔레들은 이미 만개한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서자 찔레향도 만만치 않다. 아카시아 향만큼 진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상당히 진한 향기가 후각을 상큼하게 자극한다. 이제 막 꽃을 피워내려고 잔뜩 커진 장미꽃 봉우리들 사이에 먼저 핀 몇 송이의 장미들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것 같다. 그래 역시 장미꽃이다, 모양이 화려하고 아름답기로는 장미꽃을 당할 꽃이 있을까. 탐스럽게 핀 장미는 꽃 중의 꽃으로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오랜 호흡에 지친 사랑의 각혈 /자신만의 계절에 /보암직하게 /토해내었다. 날숨 터질 때마다 /조절된 농암에 /여왕이 /그 이름이다’ <정진기의 시 .장미꽃.>

장미꽃은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화가들에게도 시인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꽃이다. 장미꽃 특유의 아주 특별한 전설도 있다. 아름다운 꽃에 어울리지 않는 매서운 가시 때문이다. 신이 처음으로 장미를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사랑의 신 큐피드는 그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고 너무도 사랑스러워 키스를 하려고 장미꽃을 향해 입술을 내밀었단다. 그러자 꽃 속에 숨어있던 벌이 깜짝 놀라서 그만 꼬리에 있는 침으로 큐피드의 입술을 콕 찌르고 말았다.

곁에서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비너스는 큐피드를 가엾게 여겨 벌을 잡아 침을 빼내어 장미 나무의 가지에 꽂아 두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 번 호된 아픔을 겪은 큐피드였지만 장미 나무에 침이 꽂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감수하며 장미꽃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의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아름다움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장미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 땐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감수하고서야 장미를 가까이 둘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상큼한 이 계절, 장미와 향기 짙은 아카시아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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