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스테마’의 기적, 도봉에서도 펼쳐지다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영옥

발행일 2011.12.05. 00:00

수정일 2011.12.05. 00:00

조회 2,353

제1회 렛츠 고!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도봉 연주회 현장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지난 11월 30일 오후 도봉구민회관 대강당에선 29명의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오케스트라 공연을 위해 막바지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악기를 들고 무대 위로 여유 있게 나오는 동작부터 인사법, 표정, 연주 시 유의 사항과 연주곡 중간에 있는 퍼포먼스의 통일, 구호 연습, 지휘자의 손짓과 몸짓에 따라서 완벽하게 연주 호흡을 맞추는 것에 이르기까지 초등학생 연주자들의 모습은 자못 진지했다. 때론 칭찬으로 때론 날카로운 지적으로 꼼꼼하게 최종 리허설을 챙기는 지휘자에 따라 초등학생 연주자들은 3시간 가까운 긴 시간동안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누구나 공정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도봉’은 지난해부터 서울시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함께 펼쳐 온 3년짜리 문화복지사업의 일환으로 태어났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에 의해 베네수엘라 빈곤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처음 시도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저소득층 무료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모델로 한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사업은 많은 자치구와의 경쟁 끝에 도봉구가 낙점되면서 도봉지역 저소득층 초등학생들을 모집하게 됐다. 저소득층을 우선 선발을 기준으로 모집된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시향 관계자들이 직접 심층 면접을 거쳐 30명을 선발했다.

서울시향 단원이자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도봉의 음악감독이며 지휘자인 김영훈 씨는 “99%가 악기를 처음 접한 아이들이었다. 일부러 악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배제했다. 다 같은 백지 상태에서 누가 얼마나 노력해서 얼마나 할 수 있는지, 타고난 재능이 있는지,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 음악이 인성 개발과 심성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 아이들의 변화를 보고 싶었다. 또한 노력하면 느리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도 심어주고 싶었다”라며 선발 기준을 설명했다.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하더라도 음악에 대한 열정, 여럿이 합주할 수 있는 태도를 지녔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고, 약 6:1의 높은 경쟁률 속에서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선발했다. 그 중 저소득층 학생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시 재정적 지원 아래 지도교사, 악기와 악보 등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맡았고, 도봉구는 방음시설을 갖춘 최적의 교육환경에서 교육이 이뤄지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교육 뿐 아니라 사회성과 화합을 자라게 하다

선발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바이올린과 첼로로 나뉘어 5개 반이 만들어지면서 지난 5월부터 쌍문동청소년랜드(도봉구 쌍문동 소재)에 모여 일주일에 3번, 3시간씩 총 9시간을 전·현직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 5명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수준 높은 음악교육과 소양교육, 예절 등 무료 음악교육을 받았다.

“이론교육 등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5월부터 약 6개월간 맹연습했습니다. 시향 출신인 한 선생님 당 6명씩 그룹을 지어 실기 교육이 실시됐고, 다년간 현장에서 활동한 음악전문가들로부터 악기교육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어 아이들에게 크게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6개월 밖에 안했는데 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바이올린 수업을 받는 친구보다 자기가 더 잘한다며 와서 자랑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도교사가 모두 함께 잘해야 한다고 일러주니, 잘하는 친구가 못하는 친구를 가르쳐주고 함께 잘 할 수 있도록 자기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며 악기를 배우고 함께 합주하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는 작은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합주를 하면서 소리가 하나로 뭉쳐진다는 것을 알고 너무 재미있어 했고, 서로 도우며 자신들도 모르게 사회성이 커지고 있었던 거죠. 가르치는 우리가 깜짝 놀랄 정도였고, 어느 면에서는 오히려 배우는 바가 많았습니다. 외부에서 전공하는 아이들을 가르쳐봤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교육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음악의 힘 ... 아이들의 변화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표정은 어둡고 어깨는 움츠리고 있던 아이들이 악기를 들고 연주를 하나씩 해 낼 때마다 어깨가 펴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도 조금씩 자랐다. 오케스트라 모임이 없는 날에도 악기를 메고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도 있었다.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자부심이 대단해졌다.

김영훈 지휘자(좌), 진지하게 리허설 중인 아이들(우)

지난 12월 2일 오후 7시 30분 도봉구민회관 대강당에서는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도봉’의 첫 공연이 있었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공연에서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는 헨델반, 모차르트반, 베토벤반, 바하반, 하이든반 등이 반별 연주를 펼쳤다. 비발디의 사계, 슈베르트의 송어, 파가니니의 베니스의 사육제, 징글벨, 고향의 봄, 바하의 미뉴엣 2번 등 익숙한 명곡들이 이어졌다. 한 곡 한 곡 연주될 때마다 큰 박수가 이어졌고, 김영훈 지휘자에 맞춰 첼로와 바이올린 앙상블을 선보인 우리동네 오케스트라는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앙코르도 3번이나 이어졌다. 당당하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연주를 마친 자녀들의 괄목상대한 모습에 감격해 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았다. 연주를 마친 단원들 또한 무척 행복해 보였다.

내년 1월에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는지 개인별 오디션을 거쳐 오케스트라에서의 자리 배치도 다시 하고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얼마나 변화했는지 연구 자료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3년간 지속될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사업은 2013년까지 해마다 30명씩 오케스트라 단원을 충원해 2013년에는 90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성원될 예정이며, 관악기와 타악기 분야로도 무료 음악교육을 확대할 계획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니 좋아요. 실력이 아주 좋아진 것 같고요. 매일 연주하고 싶어요. 이젠 바이올린이 제일 좋아져서 장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습니다.”(우리동네 오케스트라 단원 국하빈 군)
“바이올린을 6개월 동안 배울 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계속 하고 싶어요. 저는 음악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우리동네 오케스트라 단원 기채연 양)

이 아이들의 손에 바이올린이 쥐어지지 않았다면 이런 꿈을 꿀 수 있었을까? 또한 이렇게 기뻐하며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음악을 매개로 아이들이 어떻게 화합하고 성장했는지 보여준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의 기적이 여기 도봉에서도 변화를 몰고 오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음악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아브레우 박사의 바람처럼 음악이 사람의 귀와 마음만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생(生)과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 ‘엘 시스테마’가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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