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차려주는 행복한 생일상

공꽃님

발행일 2011.02.17. 00:00

수정일 2011.02.17. 00:00

조회 2,223

서울에 올라온 지 벌써 63년이 되었습니다. 꽃다운 25세에 남편과 결혼했지만 채 3년을 못 살고 남편이 세상을 떴습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딸 하나를 낳았으나 그 딸마저 얼마 살지 못하고 먼저 하늘로 보내고 난 이후의 삶이란...누구나 가슴 한 구석, 남에게 말 못할 사연 하나쯤은 갖고 살겠지만, 내 삶도 가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그런 이야기였습 니다. 지나온 세월은 그렇게 굴곡져 흘러왔습니다.


남편과 딸을 잃고 나는 아주 많이 외로웠습니다. 친가의 조카 하나를 아들삼아 의지하면서 고이고이 길러주었습니다. 그 조카가 장가를 가서 조카, 조카며느리, 나 이렇게 한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고맙게도 함께 살자 해주어 조카며느리와 딸처럼 지내보려 했지만 모든 것이 내 맘 같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나 불편했던 며느리 시집살이. 마음고생을 하다가 큰 결심을 했습니다. 64세가 되어서야 혼자 힘으로 살아보자 싶어 이불 보따리 하나만 들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이후로의 삶은 고되었지만 마음만은 편안한 수급자의 삶입니다. 주위 복지관과 동사무소에서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늙으막에 그래도 이런 복이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고, 온통 감사한 일들 뿐입니다.


복지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가는 병원 투석을 다녀오던 길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고맙게도 담당 사회복지사가 저녁 즈음에 또 한 번 전화를 걸어주었습니다. 생신잔치가 있다고. 담당 사회복지사 말로는 분기에 한번 어른들을 자신의 음식점으로 모셔 잔치를 열어주시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담당에게 일주일에 두 번 투석을 가는데 그 날짜와 겹치지 않으면 가겠다고 전했습니다. 담당이 말해준 날짜는 다행히도 병원에 가지 않는 날. 병원에 다녀오고 난 다음날은 여지없이 누워있어야 하기 때문에 병원을 가기 전 날이어야만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날짜가 맞았습니다.


나에게 생신잔치는 특별한 의미입니다. 누구하나 의지할 곳 없는 단신으로 그래도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해주는 이가 있고, 그것을 위해 잔치를 열어주는 이가 있습니다. 드디어 잔치가 있는 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음식점을 향해 갑니다. 케이크가 준비되고 생일축하곡을 합창합니다. 나는 이날 특별히 케이크에 꽂혀있는 촛불도 불어보았습니다. 고마우신 사장님과 초대해준 복지관 관장님과의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주인공이 이쯤은 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요. 준비된 샤브샤브가 나옵니다. 이가 없는 우리 노인들에게는 샤브샤브는 소화도 아주 잘되고 부담 없이 듬뿍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나는...상상합니다. 채전마루 사장님은 내 아들입니다. 아들이 내 생일날 친구들과 함께 나를 이런 좋은 곳에 모시고 파티를 해 주는 상상...참석한 모두가 행복한 얼굴입니다. 아... 아들 덕에 나는, 이곳의 주인공인 나는, 정말 고맙고 뿌듯함에 눈시울이 붉어집니 다. 정말 감사합니다.

공꽃님(기부업체 채전마루의 서비스 이용시민)

#복지 #디딤돌 #기부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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