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도 적립되나요?

admin

발행일 2009.07.10. 00:00

수정일 2009.07.10. 00:00

조회 3,018


복지국가ㆍ사회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고들 한다. 누구나 복지에 대해 말하는 시대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 돌아올 세금 부담의 무게를 생각하면 예산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복지의 수혜자들이 점점 자립심을 상실하고 책임회피 성향에 빠진다며 복지제도의 병폐에 대한 지적이 나온 지도 오래다. 게다가 복지는 금방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도 않고, 단기적인 시야로 서둘러 접근해서도 안 되는 분야가 아니던가. 사면초가에 빠진 대한민국 복지제도의 돌파구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하이서울뉴스는 해답이 될 수 있는 단초들을 모아 보기로 했다. 복지기획 시리즈의 첫 주자는 바로 '희망플러스통장'과 '꿈나래통장'이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2008년 1월, 1기 참가자 100가구로 시범사업 실시. 2009년 1월, 2기 신청자 모집, 6500명 이상 접수, 3:1의 경쟁률, 2202가구 최종 선발. 2009년 5월, 3기 신청자 모집, 2만명 이상 접수, 2:1의 경쟁률, 현재 선발 심사중. 2009년 9월, 4기 신청자 모집 예정.

이상은 '희망플러스통장'과 '꿈나래통장'의 중간보고서다. 겨우 1살 반밖에 안 된 '희망플러스통장'과 '꿈나래통장'을 우리가 논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이 두 개의 '통장사업'이 물질적이고, 사후적이고, 일회적이었던 현금 지급 중심의 복지 틀을 벗어나 정신적이고, 사전예방적이고, 대상자의 자립을 지원하는 보다 장기적인 방식으로 복지정책의 전환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희망플러스통장’은 많이 알려졌듯이 자립‧자활의 의지가 높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서울시와 민간 기업이 저축 금액만큼 지원하여 만기에는 두 배의 적립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자산형성 지원사업'이다. 저소득 가구가 성장기 자녀의 교육자금을 마련하도록 하는 '꿈나래통장'도 '희망플러스통장'과 같은 방식이다. 매월 3만원에서 10만원을 5년 또는 7년간 저축하면 역시 두 배의 적립금과 이자를 지원받는다. 예를 들어, 매월 20만원을 3년간 빼먹지 않고 저축한다면, 720만원의 두 배인 1440만원의 적립금과 이자를 합쳐 약 2천만원을 만기에 지급받게 되는 식이다.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돈도 중요하지만 희망과 기회가 더 필요하다"

2000만원? 요즘 전세 보증금이나 학비 등 치솟는 물가를 고려한다면 이 돈으로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돈도 중요하지만 희망과 기회가 더 필요하다”는 김보영(41세) 씨의 말을 들어보면 세상에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그는 “희망플러스통장에 저축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그 희망을 보았다”면서, “3년 뒤 옷수선 가게를 차려 딸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빠듯한 생활이라 저축금을 따로 떼어내기가 어려운 적이 한두 번 아니었지만, 딸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며 버텼다"고 전한다.

참가자들의 3년 뒤 목표는 다양하다. “목돈이 마련되면 장기임대주택을 신청해서 생애 최초의 내 집 마련에 사용하겠다”는 한덕규(47세) 씨나, “빠듯한 월급이지만 매달 10만원씩 꾸준히 저축해서 3년 후엔 꼭 전세로 옮길 것”이라는 박경수(50세) 씨처럼 주거비용 마련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김동영(44세) 씨처럼 "3년간 열심히 저축해서 조그만 미용실을 창업하려고 한다. 낮에는 자활센터에서 일하고 밤늦게 여성발전센터를 찾아가 이미용 실기 연습을 하는데 하나도 힘들지가 않다"며 창업의 희망에 부푼 이도 적지 않다.

참가자 중 73퍼센트를 차지하는 여성 중에서 특히 모자가정의 여성들은 자립의욕이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장 높다. 싱글맘인 이정례(38세) 씨는 “여섯 살 난 창현이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꿈나래통장'에 가입했다. 나중에 우리 아들이 진학할 때 이 통장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김명순(36세) 씨도 '꿈나래통장'으로 아이를 대학까지 꼭 가르치겠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이 엄마가 저축한 돈이 모여 아이의 꿈을 이루는 작은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희망플러스 통장'과 '꿈나래 통장' 가입자들은 1기의 98명과 지난 3월 말에 합류한 2기의 2202명을 합쳐 모두 2300명이 저축을 유지하고 있다. 1기에 함께 출발했던 100명 중 2명은 중도 탈락했는데, 그 중 한 명은 지방으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시 거주자라는 자격요건에 위배돼 대상자에서 빠진 경우다. 집안에 불거진 불상사로 어쩔 수 없이 하차한 나머지 한명을 제외하면 거의 전원이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발달계좌(IDA)라는 자산형성 프로그램을 최초로 도입했던 미국에서도 '희망플러스 통장'과 '꿈나래 통장'의 높은 유지율에 놀랐을 정도다.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대만 등 유사한 지원책을 우리보다 앞서 실시해온 나라의 저축 유지율은 많아야 70퍼센트 남짓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역으로 그네들이 서울의 '희망플러스 통장'과 '꿈나래 통장' 사례를 벤치마킹하겠다며 공동연구를 제안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교육을 비롯한 부가서비스 지원이 자립 의지 북돋워


이렇게 참가율이 높은 원인으로는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제공하는 금융교육 등 각종 실용 교육이 한 몫 했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재단에서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가족 캠프를 주최하고, 더 힘든 이웃들을 위한 자원봉사 모임도 꾸리는 등 참가자들에게 경제적 자립 못지 않게 정신적인 자립도 지원할 프로그램 역시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앞서 인용했던 김보영 씨도 재단의 각종 교육에 참여하면서 자신에게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고, 그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그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새로운 꿈에 젖어 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이 '통장사업'에 대한 호응도 부쩍 높아진 분위기다. 올 상반기에 들어온 민간후원금은 개인 소액기부금을 제외하고도 42억 2만 9천 700만원에 이른다. 타 지자체의 벤치마킹 제의도 줄을 잇고 있다. 대구시 달서구청의 '행복나눔 통장', 경남 창원시의 '희망두배로 통장', 평택복지재단의 '기쁨두배로 통장', 경기도 남양주시의 '희망나무 통장'과 '꿈나무 통장'이 서울의 '통장사업'을 배워갔으며,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현재 차상위 근로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자산형성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지지를 보내는 시민들의 한마디가 참가자들과 실무자들에게는 더욱 힘이 된다고 한다. "세금 내고 사는 보람을 느낍니다. 어찌 보면 당장 지금의 밥 한 끼보다 영혼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이러한 정책이 필요하지요"라는 어느 하이서울뉴스 독자의 댓글처럼 말이다.

물론 1년 6개월을 막 넘어선 '희망플러스 통장'과 '꿈나래 통장'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제한된 인원으로 참가 희망자들을 미처 모두 수용하지 못한 점, 신빈곤층 등 틈새계층 가구를 보듬어야 하는 숙제, 그와 맞물린 자격요건 완화 요구 등 앞으로 과제는 밀려들 것이다. 그러나 지난 5월 모집부터는 신용불량 정보조회 범위를 축소하고, 신청 서식을 간소화하고, 저축액과 기간도 다양화시키고(꿈나래 통장), 라이프-코칭 개념의 컨설팅 서비스도 추가하는 등 부지런히 다듬고 보완하고 있다. 최근에는 통장 가입자 가구의 자녀를 대상으로 한 '예술로 희망드림' 프로젝트도 신설했다.

참가자들은 자발적으로 인터넷 모임도 만들어서 결코 포기하지 말자며 서로를 격려한다고 한다. 그 모임의 주축이자, 많은 이들과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면서 어느덧 '희망통장의 전도사'가 되어버린 산후관리사 박성순 씨(54, 산후관리사)는 "가장 큰 절망을 맛본 사람만이 가장 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역시 희망만이 살 길이다. 특히 요즘처럼 절망의 시대를 버텨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 이어지는 기획시리즈에서는 '희망의 인문학'을 찾아갑니다.


하이서울뉴스/조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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