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예찬, 동네마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생활권 공원을 희망하다
발행일 2019.09.18. 13:58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에 올라가봤다. 변화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라서 계속 바뀌는 공식명칭보다 남산타워가 더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 싶지만, 어쨌든 공식명칭은 남산서울타워이다.
처음으로 올라간 남산서울타워에서 나는 마치 남산서울타워가 서울타워이던 시절의 나로 돌아간 것처럼 흥분했다. 360도로 밖을 구경할 수 있는 유리창의 빈자리를 찾아 전망대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걸음마다 창밖으로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고, 그 새로운 풍경은 절대 질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실루엣에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시원하게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 빈 유리창을 찾아가며 돌았던 수십 바퀴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해 지기 전의 파란 하늘과 잿빛 서울도 아름다웠지만 야경은 정말 비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서울의 야경에 대한 나의 지론은 ‘노동자의 야근과 한강변에 위치한 자본가의 저녁으로 이루어진다.’지만 밤의 불빛들이 뿜어내는 멋진 광경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 야경 ⓒ김동옥
왜 서울의 야경은 이토록 아름다울까. 나는 서울을 정말 사랑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시간의 서울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서울은 언제나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돌아다니는 것이라면 낮의 서울을 압도적으로 좋아하지만, 가만히 풍경만 바라보는 것이라면 밤의 서울에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건 아마 밤이 되면 모든 것이 검게 칠해져 어느 것이 건물이고 어느 것이 개천, 나무, 혹은 산인지를 구별해주는 것이라곤 반짝이는 저 빛들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밤의 서울은 반짝이는 빛만이 그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물이면 그 자리의 빛을 보고 그 건물을 떠올리고, 그렇지 않은 건물은 그냥 작고 반짝이는 빛으로 남겨두면 된다. 그리고 대충 그 자리에 무언가 있겠지, 어쩌면 공원이 있을 수도 있고 하면서 넘겨버리면 된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나는 서울의 아름답지 않은 건물을 지워버리고, 답답한 공간을 날려버린다. 넘쳐나는 인공의 산물을 잠시 자연으로 대체하는 상상을 한다.
한국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집착이 서울을 도시답게 만들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도시는 인위적인 산물이므로 필연적으로 자연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집이 남쪽을 향하고, 당연히 발생하는 도시의 소음을 막기 위해 방음벽을 만든다. 길게 뻗도록 만들 수 있는 길을 굳이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걷기 좋은 거리라고 만든다. 더 걷기 어렵게. 그리고 이런 것들이 서울의 미관을 해치고 결과적으로 향유할 수 없는 도시로 만든다..." 듣는 내내 정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연에 대한 집착이 서울을 도시답지 않게 만드는 완전히 그릇된 태도인지는 모르겠다.
‘자연’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절대적인 긍정성은 도시에서 나고 자라 산림이 울창한 ‘자연’으로 들어가면 다리를 스치는 벌레와 팔을 찌르는 식물에 한 시간도 참지 못하고 기겁을 하며 도망갈 사람마저도 무의식적인 호감을 품게 한다. 그래서 인공성의 최첨단인 아파트에서도 단지 내에 작은 공원을 만들고, 조경을 가꾸며 자연의 조각을 찾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공공공간이 아파트 가격을 얼마나 높이고 있는지는 굳이 논문을 찾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신문이나 인터넷만 봐도 얼마나 훌륭한 자연이 포함되어 있는지 자랑하는 신축 아파트 광고를 볼 수 있으니까.
아파트 내에 조성한 작은 정원 ⓒ김동옥
아파트가 단지 내에 조그만 자연을 조성하는 것은 나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도 그 아기자기한 자연을 함께 누리고 싶은데 그들은 폐쇄적으로 조성하여 관람객을 제한하니까. 하지만 도시를 도시답게 만들기 위해 자연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도시 내에 존재하는 자연은 도시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마치 코코아에 소량의 소금을 넣을 때 더 달콤해지듯이 도시의 인위적인 아름다움은 자연이 함께 있을 때 배가 된다.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도시, 걷는 게 즐거운 도시. 굉장히 매력적인 개념이다. 마치 도시다운 도시의 이데아처럼 느껴진다. 관광객이 골목마다 사진을 찍고 있고(이건 지금도 서울 종로 쪽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걸어서 출퇴근하며, 자동차를 타고 대형마트로 나가는 것이 아닌 동네의 로컬 마트에서 생필품을 구비하는 모습. 이것이 서울을 묘사하는 건지 뉴욕인지 런던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도시(정말로 구별을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서울엔 서울만의 특징이 있으니까. 도시 한복판의 궁이라던가, 도시를 반으로 가르며 흐르는 엄청 큰 강이라던가).
하지만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 도시는 쉼터가 필요하다. 무조건 시각적으로 흥미를 유도하도록 유지하다보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지친다. 뇌도 지치고 몸도 지치고. 재미없는 건물들, 거대한 건물, 흥미를 끌지 못하는 벽만 있을 때보다야 더 늦게 오겠지만 결국 피로는 오고야 만다.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 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눈치가 보이고 피곤할 때마다 카페에 들어가기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자연, 특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마다 놓인 공원이다.
서울에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생활권 공원이 적다 ⓒ김동옥
서울엔 공원이 너무 적다. 2015년 기준 서울, 런던, 뉴욕의 공원 면적을 살펴보면 1인당 공원 면적은 적은 편은 아니지만,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생활권 공원이 적다. 산이 많은 지형적 특성 때문에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산지가 많아 도시 내 필요한 공원의 양이 충분하다는 착각이 생긴다. 등산하려는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공원을 방문 빈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가볍게 동네 뒷산에 산책하러 가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하지만 내가 주장하는 공원은 목적이 있어야 가는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일상에서 목적지로 가는 여정 중에 들릴 수 있는 공원을 말하는 것이다. 시가지에 고르게 분포하여 누구나 언제든 갈 수 있는 공원이다.
만약 일상에서 힘들이지 않고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면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아파트 조경에 대한 욕구도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걷다가 언제든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면 걷는 양이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서서히 폐쇄적인 자연을 걷어내고 걸어서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면 어쩌면 걸어 다니는 거리의 주변이 되살아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골목이어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은 이색적인 가게들이 서울을 채워나가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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