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000간`의 `청년 봉제사`들
발행일 2015.03.18. 13:26
2015-1. 희망광고기업 (12) 창신동 봉제골목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 러닝투런
서울시에서는 경제적 여건으로 광고를 하기 어려운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 분들을 위해 시가 보유한 홍보매체를 무료로 개방하여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내 손안에 서울'에서도 이들의 희망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세 분의 시민기자님들이 공동으로 취재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 함께 들어보시죠! |
멋진 카페의 바리스타처럼, 앞치마와 토시마저도 스타일리쉬한 청년 봉제사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디자이너와 협업으로 새로운 패션을 선도하는 야심 찬 꿈을 키워 봐도 좋겠다. 하지만 좁고 허름한 작업장에서 기계적으로 미싱을 돌리는 과거 봉제사의 이미지 때문에 망설여질 터, 그렇다면 '청년 봉제 제작사 양성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보자. 봉제사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창신동 봉제 골목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올 청년 봉제인 양성사업을 기획 · 운영하고 있는 `000간`을 찾아가 자세히 알아보았다.
창신동 봉제 골목의 어제 함께 내일을 꿈꾸는 청년들.
창신동 봉제 골목 안쪽 언덕길에 위치한 `000간`은 마치 작지만 예쁜 카페 같다. 소품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은,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곳이다. 평소 간단한 마실 거리도 파는 모양인데, 이날은 젊은 친구들이 뭔가를 만드느라 몹시도 분주해 보였다. 방석이며 손목 쿠션, 장식장 따위를 만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투리 천 같이 이곳 골목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모아 만든 것이다. 독특한 개성만점 제품들이 모두 재활용된 작품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이나 벽장식, 소품 등도 대부분 천을 재활용해 꾸민 것들이다. 공간 안팎을 구경하고 있노라니, 앞 건물 봉제 공장 아저씨며, 지나가던 아주머니나 아이들도 '빼꼼'하고 내부를 들여다보곤 이곳 젊은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다. 이쯤 되니, 낡고 오래된 봉제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은 듯 닮은 이 공간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000간`은 창신동 봉제 골목에서 예술프로그램과 디자인 제품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 재생을 모색하는 사회적기업 '러닝투런'이 만든 공간이다. 지역 주민과 지역 공동체와 함께 지역 문제를 나누며, 참여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며, 채워가는 공간이다.
이곳`000간`은 젊은 예술가들의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11년 창신동 해송 지역아동센터에서 미술강사로 아이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창신동 지역 문제에도 눈을 뜨게 되었고 결국 이곳 봉제 골목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지역 아동,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예술교육프로그램는 물론, 각종 전시회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예술 행사들을 기획· 진행하였다. 또한, 이곳 골목에서만 하루 평균 22톤, 연간 8천 톤의 자투리 천이 버려진다는 사실을 주목, 이를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자는 생각에서, '오늘만 의자'를 시작으로, 방석, 손목쿠션, 브로치 등을 만들어 제품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자투리 천이 나오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셔츠'를 기획 · 상품화하기에 이른 것. 이들의 취지에 공감한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방석이나 셔츠를 찾는 사람도 늘어났다. 에코백, 모두의 앞치마나, 창신동 아이들의 그림으로 디자인한 앞치망토, 제로웨이스트 파우치 같은 상품도 기획해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고민의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상품을 개발해, (이곳 영세봉제공장에) 새로운 일거리를 가져다 드리면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거부하시는 거예요. 여긴 모두 하청공장들이다 보니, 본 공장 일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항상 대기상태로 있어야 했던 거죠."
`000간` 유다희 씨의 설명처럼, 하청공장인 그들 입장에선 본 공장의 주문이 들어오면 신속하게 물건을 만들어 보내야하기에 다른 일을 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시도도 주저할 수밖에 없는 하청공장의 한계를 인식, 뭔가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에 낡은 간판은 교체하고, 이름 없는 봉제공장에 이름을 짓고 간판을 달아드리는 '거리의 이름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간판을 통해 봉제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높이고, 앞으로의 지속적인 협업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설치 작업은 지역 청소년 · 청년들과 함께 워크숍 형태로 진행했는데, `000간`의 작업은 이처럼 지역 주민들과의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진행한다. 디자이너가 직접 하면 신속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겠지만, 지역 주민과 함께하며 지역에 대한 생각도 나누고, 보람도 함께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창신동의 미래를 준비하는 '쏘울쏘잉 (soul sewing)'
'러닝투런'이 운영하는 `000간`에서는 현재 청년봉제인을 양성하는 사업, '쏘울쏘잉(soul sewing)'을 기획 ·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청년 봉제 제작자를 육성하여 기존 봉제 인력과 협력하며 새로운 일거리를 지속해서 만들어나가려는 것이다. 이에 서울디자인재단과 한국봉제아카데미와 함께 '청년제작자 양성과정 훈련생'을 모집하고 있다. 오는 3월 20일부터 10월까지 약 8개월간 진행될 교육 과정에는 봉제 · 패턴 등 봉제 실무 교육 및 훈련은 물론, 실제 자신만의 제조업 브랜드를 만들고 창업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멘토링 교육과 창업 훈련이 진행된다고 한다. 2015년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지원사업으로 진행하는 만큼 교육비는 전액 무료이며, 소정의 재료비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고 하니, 청년 봉제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듯싶다.
"요즘 청년 취업이 힘들잖아요. 디자인 쪽은 더 심한데요. 봉제업에 대한 편견을 재포지션해서 새로운 직업 대안으로 제안하려 합니다. 사실 이곳의 하청공장들은 영업 능력이 없어요. 컴퓨터도 못하고 영수증 발급도 안되고.. 그래서 저희는 패턴 같은 봉제 기술도 가르치지만, 마케팅 과정도 넣었어요. 경영할 수 있는 스마트한 봉제사를 만드는 사업인 거죠."
동대문 의류시장의 배후기지인 창신동 봉제 골목은 과거 밤낮없이 미싱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하지만 패션산업의 메카였던 동대문의 쇠퇴와 더불어 어느새 미싱 소리도 흐릿해졌다. 한때 갓 상경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던 곳이었는데, 이젠 중노년층이 된 그들만이 여전히 이 골목에 둥지를 틀고 있다. 덕분에 수출역군이라 칭송해 마지않던 봉제사들도 맥이 끊길 판이다. 이곳 봉제 골목에서도 대부분은 50~60대, 아무래도 봉제사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자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보니, 젊은층이 기피하는 일자리가 된 것이다. 이는 우리 패션산업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옷은 디자이너와 봉제사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선 개성 있고 참신한 디자인은 이를 실현할 봉제기술 또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000간`의 쏘울쏘잉 사업은 창신동의 다음세대를 키워내는 사업이자, 창신동의 내일, 우리 패션사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업인 것이다.
"이곳의 빠르게 만드는 기술은 장단점이 있어요.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대량 생산은 많지 않거든요. 시대는 변하는데 일하는 모습은 변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저흰 쉽고 빠르게 대량의 작업만을 선호하던 기존 작업 성향에서,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작업이 가능하도록 영역을 확장시켜나갈 생각입니다."
쏘울쏘잉 사업에서는 이렇듯 봉제 골목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봉제사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봉제인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고 축적해 새로운 봉제인의 상을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다.
`000간`의 디자이너들은 젊은 봉제인을 위한 앞치마, 토시, 목장갑 등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세세한 것 하나하나 새롭게 디자인해, 봉제사하면 떠오르는 인식부터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작업복 스타일부터 남다른, 봉제 실무와 비즈니스 능력을 갖춘 젊은 봉제사를 만나볼 날도 멀지 않은 듯싶다.
창신동의 어제와 함께 내일을 준비하는`000간`의 새로운 도전이 궁금하다면, 블로그( blog.naver.com/000gan) 와 페이스북 (www.facebook.com/000gan?_rdr)에 들러보도록 하자. 아니면, 창신동 봉제골목 언덕에 위치한 `000간` 플랫폼에 들어봐도 좋겠다.
`000간` 플랫폼에서는 커피와 허브티 같은 간단한 음료도 준비되어 있고, 워크샵도 진행한다. 매주 화요일에서 토요일 오후 1시에서 오후 9시까지 운영하며, 때때로 워크숍이나 행사가 진행될 수 있으니 `000간` 페이스북에서 확인하고 들르는 것이 좋다. 또한, `000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면, 매달 1회 진행되는 '만나고 싶데이'에 참여하면 된다. 참가 신청은 이메일(000gan@000gan.com)로 받고 있으니 서둘러 신청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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