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파출소가 동네 문화공간으로! '서교 펀 활력소' 즐기는 법

시민기자 김윤경

발행일 2026.02.23. 14:54

수정일 2026.02.23. 16:10

조회 93

새로 탄생한 '서교 펀 활력소' ©김윤경
새로 탄생한 '서교 펀 활력소' ©김윤경
마포구 서교동에 하얀 3층 건물이 새단장했다. 어떻게 보면 카페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쉼터처럼도 보인다. 입구 옆 유리창에는 '그건 네 생각이고(It's your opinion)'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곳은 불과 얼마 전까지 비어 있던 서교치안센터(파출소) 건물이었다. 그 낡은 공간이 '서교 펀 활력소'라는 이름으로 다시 열렸다.
입구 창에 첫 전시 제목 '그건 네 생각이고'가 붙어 있다. ©김윤경
입구 창에 첫 전시 제목이 붙어 있다. ©김윤경
공사 전 비어 있던 서교치안센터(파출소) 건물 모습 ©서울시
공사 전 비어 있던 서교치안센터(파출소) 건물 ©서울시
예전 이곳은 편하게 들어가지 못하는 장소였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작은 도서관과 라운지, 팝업 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 문화거점으로 홍대 특유의 자유롭고 실험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다양한 커피와 음료를 24시간 저렴하게 마실 수 있고, 책과 전시를 즐기고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홍대 특유의 자유롭고 실험적인 분위기를 살린 1층 공간 ©김윤경
홍대 특유의 자유롭고 실험적인 분위기를 살린 1층 공간 ©김윤경
착한 가격으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24시간 무인 카페도 운영 중이다. ©김윤경
착한 가격으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24시간 무인 카페도 운영 중이다. ©김윤경
지난주 금요일 ‘서교 펀 활력소’를 찾았다. 평일 낮시간임에도 주변은 청년, 외국인들로 북적댔다. 계단을 올라 1층에 들어서자, 벽면 서가에 꽂힌 책들과 작은 체험을 겸한 전시가 눈에 들어왔다. 책장 한쪽에는 기부 받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맞은편에는 24시간 무인 커피머신이 있다.
빨간색 테두리 안은 서교치안센터였을 때 수갑을 채워 놓았던 곳이다. ©김윤경
빨간색 테두리 안은 서교치안센터였을 때 수갑을 채워 놓았던 곳이다. ©김윤경
수갑 아이디어에 착안해 이 공간에 알루미늄 바를 만들어 캐리어 분실을 막는 홀더를 만들 예정이다. ©김윤경
수갑 아이디어에 착안해 이 공간에 알루미늄 바를 만들어 캐리어 분실을 막는 홀더를 만들 예정이다. ©김윤경
파출소 시절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옥상에 깃발을 고정하는 깃대 같은 거다. 벽면에 붙어 있던 수갑을 고정하던 쇠틀은 철거됐지만, 그 흔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캐리어 고정 거치대를 만들 예정이다. 숙직실 높은 바닥은 일부러 두어 한국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를 줄 생각이다. 얼핏 보면 새로운 곳이지만 한편으론 과거의 모습을 또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낸 공간이기도 하다. 

'서교 펀 활력소' 어떻게 이용할까?

이곳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공간운영을 맡은 함의영 대표(피치마켓)가 첫 전시 <그건 네 생각이고(It's your opinion)>를 비롯해 공간에 관해 꼼꼼하게 안내를 해줬다.
전시와 기부한 책이 있는 책장 ©김윤경
전시와 기부한 책이 있는 책장 ©김윤경
1층은 도서와 전시를 체험할 수 있다. 도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시민이 '인생 책'에서 직접 문구를 뽑아 추천 글을 남기며 기부한 책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서울시를 주제로 한 책들이다. 책을 기부할 때는 제공된 엽서에 그 책이 자신의 생각에 어떤 전환점을 주었는지를 적어 함께 남긴다. 그렇게 기업인부터 동네 아이들이 기증한 동화책까지 다양하게 꽂혀 있다. 책은 물론, 기증자가 적은 이야기도 읽어보면 좋겠다. 지금도 책 기부는 환영하고 있다.
책에는 기증자의 이야기 엽서가 들어 있다. ©김윤경
책에는 기증자의 이야기 엽서가 들어 있다. ©김윤경
"서울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이 꼭 홍대를 찾는다고 해요. 명동 다음으로 외국인이 많은 이 동네에서 어려운 한국어 대신 '쉬운 한글'로 접근해 보자는 생각을 가졌죠"

비단 외국인만이 아니다. 요즘 세대별로 언어 격차도 적지 않다. 인터넷 등으로 인해 문해력이 떨어지는 젊은 세대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신조어와 디지털 언어는 중장년과 어르신 세대에게 어려움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세대 간 대화 격차를 좁히려면 쉬운 말부터 써야 하지 않을까. 
분명 어려운 문장이었는데 쉽게 읽어볼 수 있었다. ©김윤경
분명 어려운 문장이었는데 쉽게 읽어볼 수 있었다. ©김윤경
현장에서 노트북으로 '쉬운 말 번안기'에 연결해볼 수 있었는데, 직접 뉴스 기사 하나를 앱에 붙여 넣자 90초 만에 쉽게 변환됐다. "자존심이 걸린 한판 승부"처럼 복잡한 문장이 "경기에 나갑니다. 우승하려고 합니다"처럼 바뀌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직접 피치마켓에서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26단계의 난이도로 글을 조절하며 읽는 사람의 수준에 맞게 문장 구조 자체를 바꿔줬다.
초록색 인조잔디 매트가 깔린 1층 뒷 마당 ©김윤경
초록색 인조잔디 매트가 깔린 1층 뒷 마당 ©김윤경
1층으로 나가면 뒷마당이 보인다. 아래는 초록색 인조잔디 매트를 깔았고, 공사 후 남는 벽돌로 꾸며 야외 정원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현재는 전시와 연결된 프로그램을 하지만 향후 플리마켓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2층 작은 도서관과 테이블이 들어올 큰 모임 공간 ©김윤경
2층 작은 도서관과 테이블이 들어올 큰 모임 공간 ©김윤경
담당자 사무실에만 문에 구멍이 난 이유는 그들의 도움을 잘 듣기 위해서다. ©김윤경
담당자 사무실에만 문에 구멍이 난 이유는 그들의 도움을 잘 듣기 위해서다. ©김윤경
2층은 작은 도서관과 커뮤니티 라운지가 위치한다. 편하게 책을 대여하고 대관해 모임을 할 수 있다. 이곳 공간에는 문이 없는데 운영자들을 위한 사무공간에는 문이 있다. 그렇지만 위편에는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어 물어보니 "혹시 조용하게 도움을 원했는데 저희가 못 들을까봐 설치했어요"라고 답했다.
국기게양대가 남아 있어 과거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김윤경
국기게양대가 남아 있어 과거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김윤경
가급적 보수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기도 했다. ©김윤경
가급적 보수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기도 했다. ©김윤경
3층은 사기업과 협업해 공유 주방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개발한 쉬운 한식 레시피를 외국인들이나 주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옥상 공간은 영화 상영회 등을 열 수 있도록 안전시설을 정비한 뒤 쓸 예정이라고 했다.

1층은 24시간 개방되고, 2층은 사전 예약을 하면 오후 6시 이후에도 네이버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경찰차가 드나들던 곳은 앞으로 휠체어 등이 다닐 수 있는 통로로 꾸며질 예정이다.
'그건 네 생각이고' 첫 전시 포스터 ©김윤경
'그건 네 생각이고' 첫 전시 포스터 ©김윤경

첫 전시 <그건 네 생각이고 (It's your opinion)>

"보통 '괜찮아'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 뒤에 오는 말에 따라 뉘앙스가 다르죠. 예를 들어 '괜찮아, 널 용서해'와 '괜찮아, 이제 그만하자' 일 때 '괜찮아'는 같은 말이라도 확실히 다르니까요."
현재 1층에서는 첫 번째 전시 <그건 네 생각이고(It's your opinion)>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누구는 나무를 먼저 보고 누구는 하늘을 본다. 같이 출발해도 다른 도착점에 이르며 그 과정에는 수만 가지 무수한 갈림길을 거친다. 이 전시를 통해 무엇을 다르게 보고 있는지, 어디서 갈라졌는지를 체험해볼 수 있다. 또 타인의 다양함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1층에서는 전시와 책을 모두 볼 수 있다. ©김윤경
1층에서는 전시와 책을 모두 볼 수 있다. ©김윤경
세 번째 부스에서 QR코드를 찍으면 또 다른 AI 서비스와 연결된다. 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알려주는 재미있는 체험이다. QR코드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입력하면 곰돌이 푸, 쇼펜하우어, 산티아고 세 캐릭터가 각기 다른 시각으로 답장을 보내준다. 푸는 엉성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쇼펜하우어는 근본 원인을 파고들며, 산티아고는 초월적인 시선으로 답변한다. 푸의 말에는 일부러 오타도 들어 있다. "단어를 틀렸다고 그 사람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함 대표의 설명이었다. 어떤 말이 가장 위안이 될까. 그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책장 옆에 있는 컴퓨터에서 '쉬운 말 번안기'를 활용해 쉬운 말로 바꿔볼 수 있다. ©김윤경
책장 옆에 있는 컴퓨터에서 '쉬운 말 번안기'를 활용해 쉬운 말로 바꿔볼 수 있다. ©김윤경
뒷마당은 '생각 정원'으로 꾸며져, 여러 상황에 대한 질문 팻말들이 심어져 있다. 그는 "다양성을 존중하라고 구호를 외치는 대신,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지역의 예술가들이 문의가 오고 있다니 앞으로도 좋은 전시들이 기대된다. 전시에 맞춰 도슨트 투어나 QR 도슨트를 운영하고 있어 함께 들어 보면 좋을 듯 싶다.
함의영 대표 ©김윤경
함의영 대표 ©김윤경

눈치 없이 와도 되는 곳 — '511 서교'가 꿈꾸는 커뮤니티

운영 방식도 독특하다. 공식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지만 함 대표는 매일 오전 5시에 출근해 7시부터 '새벽 서점'을 비공적으로 운영할 생각이 있다. 그가 꿈꾸는 '새벽 서점'은 부담 없이 한 명이 오면 한 명과, 여러 명이 오면 모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 형태다.

함 대표는 이 공간에 '511 서교'라는 별칭을 붙였다. '명공이 닷새 동안 하나의 돌을 그린다'는 의미를 담은 511(五日一石)에서 따온 것으로 한 지역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온 공을 다한다는 뜻이다.
그가 이 공간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건 하나다. "무엇도 눈치를 보게 만들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편하게 행동해도 폐가 아니라면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이 다양성을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서울시가 추진 중인 '윻'의 일환이다. 유휴공간을 머물고 싶은 지역 명소로 재탄생시키는 이 사업은 지난해 여의도 지하벙커를 전시·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으며 폐 치안센터를 활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차가 드나들던 길은 휠체어 길로 단장할 예정이다. ©김윤경
경찰차가 드나들던 길은 휠체어 길로 단장할 예정이다. ©김윤경
서울시 미래공간기획관실 담당자는 "이번에 개장하는 '서교 펀 활력소'를 비롯해 올해 안으로 도곡치안센터를 포함한 몇 군데 더 개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방치된 곳이 모두를 위한 다채로운 모임 공간과 작은 도서관으로 변모해 무척 설렌다. 특히 핫플 옆에 위치해 어떤 영감을 선사할까. 더욱이 이번 사업은 서울시의 자산에 민간의 아이디어와 자본이 더해 유휴공간을 신속히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시켜 그 의미를 더한다. 폐 파출소에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피어난 '서교 펀 활력소'가 줄 모두의 즐거움을 기대해 본다.

서교 펀 활력소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6길 29
○ 운영일시 : 09:00~18:00(1층 무인카페는 24시간 개방). 변동 가능 ☞ 도슨트 프로그램 신청 바로가기
○ 개관 기념 도슨트 프로그램 : 2월 23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되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참여 가능
○ 전시 일정 : 인스타그램

시민기자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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