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울림 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황금자 할머니를 기리며
발행일 2024.03.15. 10:05
강서구가 구청 1층 로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황금자 할머니 10주기를 기리는 추모 전시회를 열었다. 3월 8일 시작된 전시회는 4월 19일까지 열린다.
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자 할머니는 강서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924년생인 황금자 할머니는 13세가 되던 해 군수 공장에 끌려가 노역에 시달리다가 이후 간도로 옮겨져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광복 후 돌아온 뒤 1994년부터 강서구의 한 임대 아파트에 터를 잡게 되었다.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폐지를 줍고 빈 병을 수집했다. 이렇게 아껴 모은 돈과 정부 지원금 등을 합쳐 2006년 4,000만 원의 첫 기부를 시작해 전 재산 1억 7,000만 원을 아낌없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자 할머니는 강서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924년생인 황금자 할머니는 13세가 되던 해 군수 공장에 끌려가 노역에 시달리다가 이후 간도로 옮겨져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광복 후 돌아온 뒤 1994년부터 강서구의 한 임대 아파트에 터를 잡게 되었다.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폐지를 줍고 빈 병을 수집했다. 이렇게 아껴 모은 돈과 정부 지원금 등을 합쳐 2006년 4,000만 원의 첫 기부를 시작해 전 재산 1억 7,000만 원을 아낌없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강서구청 1층 로비에서 한 방문객이 고(故) 황금자 할머니 추모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이유빈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황금자 할머니의 유품들 Ⓒ이유빈
황금자 할머니가 받으신 강서구민상 대상 상패와 국민훈장 동백장 Ⓒ이유빈
‘기부로 세상을 밝히고 별이 된, 황금자 할머니’라는 명제가 붙은 이번 전시회에서는 태어나서 별세하기까지 그의 일대기를 각종 자료와 사진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한복을 비롯한 성경책, 지팡이 등 유품과 강서구민상 ‘대상’, ‘국민훈장 동백장’,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등 상패도 함께 전시됐다.
주방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단아한 할머니의 모습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양아들로 삼은 김정환씨와 꽃밭에서 찍은 사진 등 황금자 할머니의 행복한 모습들도 마주할 수 있다.
전시회에는 ‘사후에 모든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하겠다’는 내용의 유언 증서와 통장도 공개돼 눈길을 모은다. 2014년 1월 26일 황금자 할머니가 별세했을 때, 여러 매체들이 앞다퉈 다룬 보도 자료도 한데 모아 전시했다.
주방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단아한 할머니의 모습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양아들로 삼은 김정환씨와 꽃밭에서 찍은 사진 등 황금자 할머니의 행복한 모습들도 마주할 수 있다.
전시회에는 ‘사후에 모든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하겠다’는 내용의 유언 증서와 통장도 공개돼 눈길을 모은다. 2014년 1월 26일 황금자 할머니가 별세했을 때, 여러 매체들이 앞다퉈 다룬 보도 자료도 한데 모아 전시했다.
주방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생전의 황금자 할머니 Ⓒ고(故) 황금자 할머니 추모 전시회
황금자 할머니의 유언 증서. 사후에 모든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故) 황금자 할머니 추모 전시회
전시장에 들어서며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화사한 한복이었다. 명찰이 부착된 한복은 할머니가 강서구민상 대상과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할 때 입으셨던 한복이다.
할머니가 소지하셨던 핸드폰과 지팡이도 보인다. 할머니의 핸드폰에 저장된 단축번호 1번은 당시 사회복지사로 등촌3동 주민센터에 재직 중이던 김정환 씨(현 강서구청 생활보장 과장) 전화번호였다. 김 복지사와의 인연으로 이전까지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할머니는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소지하셨던 핸드폰과 지팡이도 보인다. 할머니의 핸드폰에 저장된 단축번호 1번은 당시 사회복지사로 등촌3동 주민센터에 재직 중이던 김정환 씨(현 강서구청 생활보장 과장) 전화번호였다. 김 복지사와의 인연으로 이전까지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할머니는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강서구민상 대상과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할 때 입으셨던 한복이다. Ⓒ이유빈
할머니가 소지하셨던 핸드폰과 지팡이 Ⓒ이유빈
나눔의 따뜻함과 행복의 의미를 알게 된 할머니는 주변의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2006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지원금과 폐지 수집으로 모은 돈을 합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써 달라며 구에 기부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평생 고통스런 삶을 사셨지만 황금자 할머니는 4차례에 걸쳐 전 재산을 강서구 장학회에 기탁했다.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지니고 있는 것 모두를 사회에 내놓았다.
강서구 장학회에서는 할머니의 뜻을 기려 매년 4명의 대학생에게 황금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23년까지 대학생 50명에게 9천여 만 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따뜻한 나눔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같은 숭고하고 감동적인 기부로 황금자 할머니는 지난 2007년에 강서구민상 대상을, 2011년에는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평생 고통스런 삶을 사셨지만 황금자 할머니는 4차례에 걸쳐 전 재산을 강서구 장학회에 기탁했다.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지니고 있는 것 모두를 사회에 내놓았다.
강서구 장학회에서는 할머니의 뜻을 기려 매년 4명의 대학생에게 황금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23년까지 대학생 50명에게 9천여 만 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따뜻한 나눔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같은 숭고하고 감동적인 기부로 황금자 할머니는 지난 2007년에 강서구민상 대상을, 2011년에는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황금자 할머니는 4차례에 걸쳐 전 재산을 강서구 장학회에 기탁했다. Ⓒ이유빈
2007년 강서구 장학회에서 설치한 황금자 할머니 부조 Ⓒ이유빈
작은 전시회가 열린 구청 로비에서는 황금자 할머니의 부조도 만나볼 수 있다. 황금자 할머니의 숭고한 뜻을 기려 2007년 강서구 장학회에서 설치했다. 황금자 할머니가 별세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기부의 의미는 지금도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
강서구는 황금자 할머니를 포함해 강서구에 거주한 12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고자 2019년 강서 유수지 공원에 ‘강서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바 있다. ‘강서 평화의 소녀상’ 옆에는 고 황금자 할머니상도 세워져 있다.
강서구는 황금자 할머니를 포함해 강서구에 거주한 12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고자 2019년 강서 유수지 공원에 ‘강서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바 있다. ‘강서 평화의 소녀상’ 옆에는 고 황금자 할머니상도 세워져 있다.
강서구 마곡 유수지 공원의 ‘강서 평화의 소녀상’ 옆에 고 황금자 할머니상이 세워져 있다. Ⓒ이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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