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천지창조'를 백남준이 미디어아트로 표현하면 이런 모습?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3.12.01. 14:43

수정일 2023.12.01. 14:43

조회 1,481

문화역서울284에서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무료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선미
문화역서울284에서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무료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선미

문화역서울284에서 ‘융합예술’의 현재를 만날 수 있는 무료 전시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3’가 열리고 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백남준의 작품 <시스틴 채플>을 비롯해 국내외 작가 18인의 작품 23점이 가상현실(VR)과 키네틱 아트,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아트, 사운드 설치 작품 등으로 구현돼 있다.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전시장 입구에서 로봇이 리플릿을 건네주었다. ⓒ이선미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전시장 입구에서 로봇이 리플릿을 건네주었다. ⓒ이선미

여전히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최첨단 기술 기반의 예술이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전시장을 찾았다. 입구에서 리플릿을 찾으니 로봇이 친절하게 건네주었다. 마치 ‘융합예술’로 떠나는 여행의 티켓을 받은 기분이었다.
문화역서울284의 중앙홀 ⓒ이선미
문화역서울284의 중앙홀 ⓒ이선미

중앙홀에 백남준 작가의 작품 <토끼와 달>이 자리하고 있었다. <토끼와 달>은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전시 주제인 ‘달로 가는 정거장’의 아이콘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 ‘달로 가는 정거장’의 아이콘인 백남준 작가의 작품 <토끼와 달>이 중앙홀에서 맞이한다. ⓒ이선미
이번 전시의 주제 ‘달로 가는 정거장’의 아이콘인 백남준 작가의 작품 <토끼와 달>이 중앙홀에서 맞이한다. ⓒ이선미

천장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아래로 사일로랩의 작품 <시유>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수백 개의 실타래가 실을 풀고 감는데, 소리와 불빛도 오가며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게 했다. 전시가 진행될수록 실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전시 종료에 맞춰 실이 다 감긴다고 한다.
음악과 조명 속에 수백 개의 실타래가 실을 풀고 감는 작품 <시유> ⓒ이선미
음악과 조명 속에 수백 개의 실타래가 실을 풀고 감는 작품 <시유> ⓒ이선미

'언폴드엑스 - 달로 가는 정거장'은 세 곳의 게이트를 아우른다. 각각의 게이트는 세 가지 주제를 연결하는데, 중앙홀과 1층, 서측 복도를 포함하는 ‘게이트1. 환승시간’은 기술 발전으로 도래한 새로운 시간의 감각을, 2층에서 만나는 ‘게이트2. 우리 여행자들’은 기술이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우리’, 공동체의 감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게이트3. 내일 도착’에서는 미래에 새로운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시스템을 예측하게 한다.

기술 발전으로 도래한 새로운 시간의 감각을 만나기 위해 '게이트1. 환승시간'으로 향했다. 중앙홀에서 3등대합실로 들어서니 저 안쪽으로 백남준 작가의 <칭기즈 칸의 복권>이 눈에 들어왔다. 잠수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탄 20세기의 칭기즈 칸은 동양과 서양을 이었던 실크로드가 광대역 전자 고속도로로 대체된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 전시되었던 <칭기즈 칸의 복권>도 만날 수 있다. ⓒ이선미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 전시되었던 <칭기즈 칸의 복권>도 만날 수 있다. ⓒ이선미

루이-필립 롱도의 <감시>는 일단 재미있었다. 관람객이 스크린 앞에 서면 카메라가 전신을 스캔해 거대한 모자이크로 보여준다. 의미를 몰라도 짧은 움직임을 통해 나온 결과물에 다들 즐거워했다.
스크린 앞에 선 관람객을 스캔해 모자이크로 보여주는 작품 <감시> ⓒ이선미
스크린 앞에 선 관람객을 스캔해 모자이크로 보여주는 작품 <감시> ⓒ이선미

중앙홀을 지나 반대쪽 1, 2등대합실로 향했다. 첫 방에 백남준의 <시스틴 채플>이 설치돼 있었다. ​공간은 사방팔방에서 이어지며 쏟아지는 이미지와 어떤 소리들로 가득 찼다. 이미지들은 알아볼 수도 있고 모호하기도 했다. 소리 또한 그랬다. 성경과 성인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실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백남준의 <시스틴 채플> ⓒ이선미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백남준의 <시스틴 채플> ⓒ이선미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룸톤의 작품 역시 실험적인 프로젝트였다. 작가가 꾼 꿈의 일부를 가상현실로 재구성해 VR 기술로 관람객과 공유하는 작품인데 각성 상태인 관람객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지나 타인의 꿈에 들어가볼 수 있게 했다.
한 어린이가 VR기술로 타인의 꿈에 들어가 보는 룸톤의 <Inside Dream>을 체험하고 있다.ⓒ이선미
한 어린이가 VR기술로 타인의 꿈에 들어가 보는 룸톤의 <Inside Dream>을 체험하고 있다.ⓒ이선미

2층의 '게이트2. 우리, 여행자들'에서는 기술 발전 과정에서 새롭게 만나는 개인 혹은 공동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트리스탄 슐츠의 <스킨3.0>도 관람객의 참여를 필요로 했다. 카펫 위에 서서 작품을 바라보면 카메라가 인식한다. 관람객이 다양한 자세로 움직이면 개별 생체 데이터와 동작이 캡처되고 추상적인 3D 아바타가 실시간으로 생성된다. 카메라 시스템과 상호작용해 관람객이 실험에 참여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관람객이 카메라 앞에 서서 움직이면 카메라 시스템과 상호작용한 결과로 아바타가 만들어지는 트리스탄 슐츠의 작품 <스킨3.0> ⓒ이선미
관람객이 카메라 앞에서 움직이면 카메라 시스템과 상호작용한 결과로 아바타가 만들어지는 트리스탄 슐츠의 작품 <스킨3.0> ⓒ이선미

‘우리, 여행자들’은 매일 더 심각해지는 자연환경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인류세를 살아가고 있다. 올리 소렌슨의 <인류세의 파노라마>를 지나 장지연의 앞에 서자 마음이 좀 서늘해졌다. 작가가 밝히기로는 석양에 물드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정원에서 오래된 조각상과 가득한 이끼가 어우러지던 순간, 자연과 함께 숨 쉬던 경이로운 그 공기와 시간으로부터 질문이 시작되었다는데 관람자의 시선으로는 상실의, 사라져가는, 잃고 마는 어떤 시간과 풍경에 대한 환기 같았다.
장지연의 <Uncanny Nature>는 자연과 함께 숨 쉬던 경이로움을 안겨준 공기와 시간을 경험하며 시작된 질문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선미
장지연의 <Uncanny Nature>는 자연과 함께 숨 쉬던 경이로움을 안겨준 공기와 시간을 경험하며 시작된 질문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선미

‘게이트3. 내일 도착’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게 구성했다. 게이트가 시작되는 통로에서 미셸 브레와 에드몽 쿠쇼의 <민들레>가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마이크를 들고 입김을 후 불면 민들레 홀씨가 퍼져나간다. 관람객의 숨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미풍의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전환되어 화면 속 민들레 씨앗이 날아간다. 기술이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냈다.
과거에 간이식당으로 쓰이던 통로에서 ‘게이트3. 내일 도착’이 시작되었다. ⓒ이선미
과거에 간이식당으로 쓰이던 통로에서 ‘게이트3. 내일 도착’이 시작되었다. ⓒ이선미
한 시민이 김호빈의 <황색 재앙(Yellow Peril)>을 관람하고 있다. ⓒ이선미
한 시민이 김호빈의 <황색 재앙(Yellow Peril)>을 관람하고 있다. ⓒ이선미

마지막 방에 있는 상희 작가의 <원룸바벨>은 지난해 제작한 작품인데 원래의 전시에 배리어프리를 도입해 새로 선보인다고 한다. 이 작품은 관람객이 플레이 영역을 돌아다니며 진행되지만 배리어프리 버전은 서거나 앉아서도 관람이 가능하도록 했다.
진행요원이 관람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선미
진행요원이 관람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선미

문화역서울284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유물 같은 공간이다.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에 ‘지금 이 순간’의 예술이 자리를 잡으니 또 다른 의미들이 태어난다. 관람객들의 표정 또한 편안해 보였다. 조급하지 않고 순간에 머무는 표정으로 전시 공간들을 누렸다.

1925년 문을 열어 유라시아 연결 철도의 출발점이 됐던 구 서울역사에서 미래를 생각해보는 전시, 아득한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에 일어나는 몇 가지 질문을 챙겨 다시 현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전시는 화∼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오며가며 한 번은 꼭 들러봐도 좋은 전시다.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3’ - 달로 가는 정거장’

○ 장소 : 서울시 중구 통일로 1 문화역서울284
○ 기간: 11월 10일~12월 13일까지
○ 운영일시: 화~일요일 11:00-19:00(매주 월요일 휴관)
언폴드엑스 누리집
문화역서울284 누리집
○ 문의 : 02-3407-3500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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