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 터에서 숭례문까지, 정동순성길 숨은 역사를 만나다
발행일 2022.07.06. 11:11
한양도성 정동순성길 특별 안내는 12월 25일까지 매주 일요일 운영한다. ⓒ이준엽
한양도성은 조선 건국 이래, 도읍지 한양의 든든한 울타리로 지금까지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600년이 훌쩍 넘는 긴 세월만큼 4대문과 4소문, 성곽길 그리고 성돌 하나하나에 유구한 역사가 가득하다.
오늘 한양도성 6개 구간 중, 가장 변화가 많았던 도성 서쪽 돈의문박물관마을부터 숭례문까지, 정동순성길에 숨은 역사 이야기를 서울KYC(한국청년연합) 도성길라잡이의 특별 해설로 만났다. ☞ [관련기사] 봄과 함께 시작! '해설이 있는 한양도성' 선착순 모집
오늘 한양도성 6개 구간 중, 가장 변화가 많았던 도성 서쪽 돈의문박물관마을부터 숭례문까지, 정동순성길에 숨은 역사 이야기를 서울KYC(한국청년연합) 도성길라잡이의 특별 해설로 만났다. ☞ [관련기사] 봄과 함께 시작! '해설이 있는 한양도성' 선착순 모집
정동순성길 특별 안내는 돈의문역사관에서 우리의 근대 역사를 되새기며 시작한다. ⓒ이준엽
한양도성 정동순성길 특별 해설프로그램은 돈의문박물관마을에 모여 돈의문역사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정동순성길은 힘들었던 우리 근대 역사를 다시 되새겨 보는 길이었다. 원래 정동은 정릉이 있던 자리로, 무덤은 태종 이방원에 의해 옮겨지고 그 이름만 남아 조선시대 초기부터 정동으로 불리웠다. 19세기 말이 되자, 정동은 덕수궁과 서울역에 가깝다 보니 안전하고 편리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 면에도 매우 중요한 곳이 되었다. 그래서 선교사의 개신교회와 신식학교가 정동에 먼저 세워지고,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하였다. 구한말 당시 정동은 양인촌으로 불릴 만큼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서구문화가 자리잡은 곳이었다고 한다.
일제는 근대화를 명목으로 돈의문, 소의문을 철거했고, 한양도성을 헐었다. ⓒ이준엽
이런 정동의 변화는 돈의문과 소의문 그리고 성곽에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대한제국을 강탈한 일제는 결국 1915년 전차의 궤도 복선화에 방해된다며 돈의문을 철거했다. 계속해서 조선의 근대화라고 부르며 한국의 민족 정신을 훼손하기 위해 한양도성을 대대적으로 헐어내고, 그 자리에 건물을 세웠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그 표지판과 표지석들이 길 위에 남아 역사의 현장을 증언할 뿐이다. 참고로 1915년 철거된 돈의문의 기와와 목재는 헐값(205원 50전)에 낙찰되었다.
돈의문 터: 일제는 1915년 전차의 궤도 복선화에 방해된다며 돈의문을 철거했다. ⓒ이준엽
정동순성길을 완주하고 받은 입체경, 옛 돈의문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준엽
그래도 성곽의 일부가 학교 담장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어 다행인 곳이 있다. ‘한양도성 성벽’으로 표시된 창덕여중 담장은 정동 일대에서 유일하게 눈으로 성곽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성곽 안쪽으로는 1886년 프랑스공사관이 있었고, 1914년에는 서대문소학교, 1973년부터 지금까지는 창덕여자중학교가 있다.
정동순성길 프로그램이 특별한 이유는 옛 성곽이 지나갔던 길을 답사하기 위해, 일반인들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제한구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의문 철거와 정동의 역사를 배운 뒤, 이어서 진행하는 답사이기에 더욱 더 생생하게 성곽길이 눈 앞에 그려졌다.
정동순성길 프로그램이 특별한 이유는 옛 성곽이 지나갔던 길을 답사하기 위해, 일반인들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제한구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의문 철거와 정동의 역사를 배운 뒤, 이어서 진행하는 답사이기에 더욱 더 생생하게 성곽길이 눈 앞에 그려졌다.
창덕여중 운동장 한 켠에 있는 1896년 건립된 프랑스 공사관 머릿돌 ⓒ이준엽
이화여고 원형운동장 앞에서 한양도성이 이어지는 길을 설명하는 도성길라잡이 ⓒ이준엽
돈의문 터부터 머릿속 상상을 통해 성곽길을 계속 이어가며 답사했다. 창덕여중 운동장에서는 땅 속에 묻혀 있는 도성을 상상했고, 이화여고 원형운동장에서는 그 근처로 지나가는 한양성곽을 생각했다. 상상 답사는 러시아대사관과 배재학당 서관을 지나, 서소문인 소의문 터에 닿았다. 소의문 역시 일제에 의해 1914년 강제 철거되고, 그 터만 남았다.
러시아대사관, 배제학당으로 이어지는 정동순성길 구간 ⓒ이준엽
소의문 터: 서소문인 소의문은 일제에 의해 1914년 주변 성벽과 함께 완전 철거되었다. ⓒ이준엽
소의문 터에서 숭례문으로 이동하다가, 대한상공회의소가 보일 즈음에서 반가운 성곽이 실제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 성벽 일부가 남아있던 곳에 최근 다시 몇 단을 쌓아 올려 보강해 놓았다. 일제가 무너트린 대한제국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느낌이 들었다.
숭례문: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1398년에 세워졌다. ⓒ이준엽
프로그램의 마지막 장소는 한양도성의 정문, 숭례문이었다. 1398년에 세워져 600년 넘는 세월 동안, 일제, 전쟁, 방화의 몸살을 앓으면서도 꿋꿋하게 서울을 지켜온 대문이다. 2013년 마지막 복구작업을 완성하면서 왼쪽과 오른쪽에 성곽도 함께 복원해, 한양도성의 정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성문 보호를 위해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싼 옹성을 갖춘 흥인지문 ⓒ이준엽
도성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한양도성박물관. 기획전 <도성을 지키는 성, 탕춘대성>이 한창이다. ⓒ이준엽
조선시대에는 순성놀이가 있었다. 40리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 경치와 살구꽃, 복사꽃, 버들을 구경하는 놀이다. 과거 급제 등 소원하는 것이 이뤄지려면 하루만에 마쳐야 효험이 있단다. 올가을 단풍이 한창일 즈음, 온가족 건강을 기원하는 한양도성 순성놀이를 계획해 본다.
이화여고에 방문해 유관순 열사 동상을 만났다. 일제에 의해 돈의문이 철거된 지 4년 후에, 3.1운동이 일어났다. ⓒ이준엽
한양도성 정동순성길 해설 프로그램
○ 기간: 3월 20일~12월 25일
○ 운영일시: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단, 5주차 일요일, 추석연휴, 도성문화제가 열리는 10월 2주차 미운영)
○ 신청방법: 서울시 공공예약서비스에서 ‘정동 순성길’ 검색 예약
○ 문의: 02-2133-2657(서울시 한양도성도감)
○ 운영일시: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단, 5주차 일요일, 추석연휴, 도성문화제가 열리는 10월 2주차 미운영)
○ 신청방법: 서울시 공공예약서비스에서 ‘정동 순성길’ 검색 예약
○ 문의: 02-2133-2657(서울시 한양도성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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