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허들링'이 필요해…청년 살리는 마음건강 지원 제도들

시민기자 이성국

발행일 2022.04.15. 13:00

수정일 2022.04.15. 14:51

조회 1,760

코로나 3년, 무거운 청년 예술가의 발걸음 ⓒ이성국
코로나 3년, 무거운 청년 예술가의 발걸음 ⓒ이성국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과 절망

코로나 3년째, 가난한 청년 예술가 K는 더 외로워졌고 더 힘들어졌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면 사람과 멀어지게 된다. 거리의 모두가 적이었고 모두가 비웃는 것 같았다. 나에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과 절망이 절벽 끝으로 밀어내는 것 같았다. 

K는 휴대폰 속에서 도와 줄 누군가를 찾았다. 그러나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 당장 도로로 뛰어들면 고통이 끝날까. K는 죽을 것 같다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며 거리를 걸었다. 걷지 않으면 정말 뛰어들 것만 같았다. 
"혼자 힘들어하지 마세요"  ⓒ이성국
"혼자 힘들어하지 마세요" ⓒ이성국

혼자 힘들어하지 마세요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글이 눈에 박혔다. “혼자 힘들어하지 마세요” 전화를 걸면 꽁꽁 언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릴 수 있을까. 휴대폰 요금이 없어요. 지금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어요. K는 돈을 걱정하며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저한테 전화해 줄 수 있나요?”
“네, 연락 드릴게요.”

왜냐고, 무슨 일 때문인지 묻지 않는 상담사가 신기했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바로 전화가 왔다. K는 지금 우울, 불안, 공황이 왔다고, 너무 고통스러워 도로로 뛰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상담사는 “도와 드릴게요.” 하고는 K의 위치를 확인하고 가까운 정신과를 알려 주며, 3회까지 무료로 진료와 약 처방을 받을 수 있으니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당장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2017년부터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마음건강 주치의’ 제도였다.

K는 가난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고마웠다. K는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고 좋아졌다. 지나고 보니 약 때문이 아니라 상담사의 따뜻하고 진심 어린 말 덕분에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힘내요 당신"을 가리키는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김은희 팀장 ⓒ이성국
"힘내요 당신"을 가리키는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김은희 팀장 ⓒ이성국

오는 7월 '서울시 조기중재센터' 개소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오는 7월부터 청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서울시 조기중재센터’를 운영한다. 정신건강복지센터 김은희 팀장은 조기중재센터를 설명하며 ‘허들링(Huddling)’을 이야기했다.

"거센 눈보라가 몰려오면 펭귄들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모입니다. 원의 중앙엔 새끼들이 있어요. 맨 바깥에 있는 펭귄의 몸은 얼어붙기 시작해요. 그때 펭귄들은 서서히 원을 그립니다. 안에 있던 펭귄은 바깥으로, 얼어 죽기 직전인 펭귄은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여요. 펭귄들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체온을 나누며 서로를 지켜내는 거예요."

"저는 인생에서 가장 폭풍이 몰아치는 시간이 청소년기, 청년기라고 생각해요. 그 시기는 몸과 뇌가 함께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성장한다는 건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10~30대 청소년, 청년기에 주요 정신건강의 문제가 모여 있어요. 그걸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2021년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인데, 20~30대의 우울 위험군, 자살 생각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습니다."

"조현병, 조울증, 주요 우울장애와 같은 무거운 정신질환이 쉽게 발생하는 연령대가 청소년기부터 초기 성인기 시기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인생의 폭풍이 강렬하게 몰아치는 그 시기에 허들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40대인데, 힘들어하는 10대~20대 청년들에게 우리가 먼저 사회적인 지지와 연대, 즉 허들링을 해 주고 제가 60대~70대가 됐을 때 그들이 저를 허들링해 주는 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사람의 허들링이 가시화되는 하나의 체계가 ‘서울시 조기중재센터’입니다.”
정신건강 지킴이 운동과 홍보 대사들 ⓒ이성국
정신건강 지킴이 운동과 홍보 대사들 ⓒ이성국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 때 행복은  커지고 우울은 작아집니다" ⓒ이성국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 때 행복은 커지고 우울은 작아집니다" ⓒ이성국

조기 발굴, 조기 개입으로 위기상황을 넘어가는 일

서울시 조기중재센터의 지원 대상은 만 15세~34세 청년이다. 정신과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낙인 없고 안전한 환경에서 개인·관계·사회적 회복을 경험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정신건강을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나와 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 시기를 잘 경험하는 것이며, 조기중재센터는 이를 돕고자 한다. 특히 남들과 다른 정신증적 경험을 하거나 개인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청년을 위한 전문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올해 7월 1일 개소 예정이지만 문을 여는 그 순간까지 단 1초라도 지체하지 않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년과 가족들의 손에 닿을 수 있도록 밀접한 전달 체계를 만드는 작업도 병행 중에 있다.
청년 몽땅 정보통의 '청년 마음건강' 지원 사업 ⓒ청년 몽땅 정보통
청년 몽땅 정보통의 '청년 마음건강' 지원 사업 ⓒ청년 몽땅 정보통

'서울시 청년 마음건강' 지원 사업

청년 몽땅 정보통(서울청년포털)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년 마음건강’ 지원 사업  대상자도 2022년엔 연 7,000명으로 확대된다. ‘사전 온라인 자가검진 도구’를 도입해 마음건강 상태별 맞춤 지원을 하고, 의료기관과 연계한 전문 치료도 제공한다. 올해 1차 모집은 3월에 진행했고, 5월(2차), 7월(3차), 9월(4차) 총 4회 모집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시 청년 마음건강 지원 사업은 2019년 청년들이 제안하는 ‘청년 자율예산’ 사업으로 시작되어 올해로 3년차를 맞았다. 지금까지 서울 청년 5,000여 명의 마음건강을 관리해 왔다. 타 지자체는 물론 중앙정부에서도 벤치마킹하는 등 청년의 사회안전망을 지키기 위한 필수 지원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달라지는 네 가지는 ① 지원 규모 확대, ② 사전 온라인 마음건강 자가검진 도구 도입, ③ 디지털 마음건강 관리 앱 도입, ④ 고위기군에 특화된 집중관리다. 심한 우울감을 느끼는 고위기군의 집중관리를 위해 심리장애 치유에 특화된 임상심리사를 신규 위촉하고, 전문적 정신 치료가 필요한 청년에게는 서울시 협업 의료기관(224개소)과 연계하여 전문 치료를 제공할 계획이다. 1인당 80,000원의 치료비도 지원한다.
맑고 푸른 서울 하늘과 한강을 곁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기 바란다. ⓒ이성국
맑고 푸른 서울 하늘과 한강을 곁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기 바란다. ⓒ이성국

돕는다는 것은 함께 비를 맞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

“수화기 너머 따뜻한 목소리가 저를 살렸죠. 제가 힘들었을 때 ‘마음건강 주치의’에게 도움을 받았듯,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제가 기꺼이 사람의 허들링을 해 줄 것 같아요.” K는 웃으며 말했다. 표정은 누구보다 밝고 목소리는 명랑했다. 돌아서 걸어가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문득 머릿속에 신영복 선생의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는 '함께 맞는 비' 글귀가 떠올랐다. 눈물겹게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를 맞아도 좋고, 눈물을 흘려도 좋을 것 같다. 사람의 허들링이 더욱 구체화되는, '서울시 조기중재센터'가 태어날 7월이 기다려진다. 

정신건강복지센터

홈페이지
○ 문의 : 02-3444-9934 (서울시 정신건강 통합 플랫폼 블루터치)

청년 마음건강 지원 사업

홈페이지
○ 문의 : 02-120, 02-731-2120 (서울청년포털)

시민기자 이성국

매일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그러므로 나는 매일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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