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언어 감수성'은 몇 점? 한글날 실천해 보는 '언어의 높이뛰기'

신지영 교수

발행일 2021.10.07. 15:18

수정일 2021.10.07. 15:18

조회 5,927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한글날 실천해 보는 ‘언어의 높이뛰기’ I 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글날이 특별한 이유

한글날이 다가오고 있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반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전 세계에서 문자와 관련된 날을 국경일로 삼아 기념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매년 돌아오는 날이라 덤덤할 수도 있지만 한글날을 국경일로 삼아 기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대부분의 나라는 문자와 관련된 날을 국경일로 삼는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우선 고유의 문자를 가진 나라의 수가 매우 적다는 점부터 떠올리면 관련 기념일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한글은 그 문자를 누가, 언제,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훈민정음 해례본’과 같은 놀라운 기록 유산과 함께 존재한다. 이를 통해 창제자가 밝힌 창제의 의미는 물론 창제의 원리에 대한 기록을 그 목소리 그대로 만날 수 있다. 한글은 실로 대한민국 문화유산을 넘어 세계 문화유산이다.

문자와 언어를 혼동하게 하는 한글날은 이제 그만

한글날 덕분에 우리는 매년 우리가 갖게 된 귀한 문자인 한글의 의미를 새기며 그 범위를 확장하여 우리의 말글살이를 함께 짚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런데 매년 한글날 우리의 말글살이를 성찰하며 내는 목소리는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다. 외래어의 오남용을 꾸짖거나 신조어나 비속어를 개탄한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괴이한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이 만들어 주신 우리말을 잘 가꾸고 지키자”라거나 “한글 파괴가 심각하다” 혹은 “이런 현실을 안다면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통곡하실 거다”와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한글은 언어가 아니라 문자인데 이런 말들은 언어와 문자를 혼동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한국어를 적을 수 있는 문자인 한글(창제 당시 이름으로는 훈민정음)을 만든 분이지 한국어를 만든 분이 아니다. 한국어는 세종 이전에도 수천 년간 존재했던 언어다. 그러니 ”세종대왕이 만들어 주신 우리말을 잘 가꾸고 지키자“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한글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신조어, 인터넷 은어, 욕설이나 비속어, 그리고 비문법적인 표현들의 사용은 모두 언어의 문제이지 문자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한글 파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지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굳이 표현한다면 한글 파괴가 아니라 한국어 파괴라고 하는 것이 맞다. 한글 파괴가 되려면 한글의 형태를 왜곡하거나 운용 원리를 지키지 않는 등의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세종대왕은 외래어의 범람과 왜곡된 언어 현실을 보고 통곡을 하시기 전에 한글이 이렇게 널리 쓰이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되어 지하에서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창제 당시에는 국가의 기본 글자로 대접받지 못했던 한글이 지금은 대한민국의 기본 문자가 되어 있으니 이를 안다면 세종대왕은 지하에서 기뻐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실 것이다.

제발 이번 한글날만큼은 한글과 한국어, 즉 문자와 언어를 혼동한 이상한 개탄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문자와 언어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이러한 목소리는 오히려 한글날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이다.
광화문광장 세종이야기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는 있는 시민들
광화문광장 세종이야기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는 있는 시민들

언어 감수성을 생각하는 날

이번 한글날은 이런 부적절하고 불명확한 개탄 대신, ‘언어 감수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언어 감수성을 바탕으로 ‘언어의 높이뛰기’를 실천해 볼 것을 제안해 본다.

언어 감수성이란, 언어에 대한 민감성을 의미한다. 언어 감수성을 통해 우리의 생각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잘 반영되어 있는지를 민감하게 살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과거의 언어 사용자가 만들어 전한 것이어서 오늘 우리의 생각에 비추어 보면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다수 존재한다. 우리의 생각은 변했지만 언어는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온 탓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더 이상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담긴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단어를 정말 오랫동안 사용했었다.

또, 집안일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지어미 부’ 자가 들어간 ‘주부(主婦)’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농업이 남성만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지아비 부’ 자가 들어간 ‘농부(農夫)’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결혼 후 여성은 출가외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엄마의 본가를 ‘외가(外家)’라고 부르고 있다. 수치심은 피해자가 느껴야 하는 감정이 아니고 오히려 가해자가 느껴야 하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성범죄의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을 ‘성적 수치심’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이가 많은 사람을 ‘윗사람’, 나이가 어린 사람을 ‘아랫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연령 차별 의식을 고착한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언어의 높이뛰기’를 통해 뛰어넘어야 한다.

언어의 높이뛰기를 실천하는 날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야 한다는 데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는 언어 속에는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는 사뭇 다른 가치가 담긴 표현들이 존재한다. 언어는 학습을 통해 습관처럼 굳어져 버리기 때문에 문제의식 없이 그냥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감수성을 갖기가 어려운 이유다.

습관처럼 굳어져 버린 일상 언어에 질문을 던지며 그 속에 담긴 차별, 불평등, 반인권, 비민주적 요소를 언어 감수성을 가지고 민감하게 감시해 내서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잘 담을 수 있도록 바꾸어 가는 노력이 바로 ‘언어의 높이뛰기’다.

우리는 지난여름 도쿄 올림픽에서 우상혁 선수의 높이뛰기 경기에 열광했다. 목표 높이를 계속 올려가며 기록을 세우는 우상혁 선수를 열렬히 응원했었다. 우상혁 선수의 멋진 도약을 떠올리며 이번 한글날 ‘언어의 높이뛰기’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매년 한글날 시민들이 함께 고민해서 목표 막대(목표 표현)를 설정하고 다음 한글날까지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목표 막대를 뛰어넘어 보는 것이다. ‘언어의 높이뛰기’는 한글날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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