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642번 버스에 오른 할아버지와 손녀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박분

발행일 2012.07.16. 00:00

수정일 2012.07.16. 00:00

조회 4,444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무더운 여름밤에 심야버스를 탄다. 맨 뒷자리에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차창 밖, 도심 밤거리 구경에 사람들 구경까지 하다보면 어느새 잠이 스르르… 깜박 졸다 일어나도 여전히 씽씽 달리는 한밤중 심야버스.

밤 11시 30분, 심야버스에 올랐다. 방화동에서 신논현역 구간을 운행하는 김포교통의 642번 간선버스다. "어서 오세요." 늦은 밤인데도 웃는 낯으로 승객들을 맞는 이용선(49) 기사가 단정한 와이셔츠 차림으로 운전석에 앉아 있다. 그는 심야버스를 처음 타보는 리포터에게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지하철과 자가용 등 대체교통수단이 늘어나는 바람에 심야버스 이용 승객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 여파로 심야버스 폐선도 늘어났지만 심야버스야 말로 서민들의 발이 돼주는 심야의 대중교통수단이 아니겠습니까?"

장맛비에 말끔히 씻긴 차창 너머로 널따란 도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종일토록 도로를 꽉꽉 메웠던 그 많던 자동차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맨발로 힘껏 달려보고 싶을 정도로 거칠 것 없이 뻥 뚫린 도로는 마음 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를 지나 다음 버스정류장 '이마트'에 멎자 주부 둘이 버스에 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 40대 주부들은 이 차를 놓칠까봐 냅다 뛰어 온 모양이다. 밤늦은 시간에 일을 마치고 나면 택시 대신 매일 집 앞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아주 고마운 버스라고 했다.

길 한쪽에 쌓여 치워 줄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먹고 쓰다 버린 도심 속 쓰레기 더미도 빠질 수 없는 심야의 풍경이다. 자정을 넘기면서 하품하는 승객들이 물감 번지 듯 늘어나는 것 또한 심야버스에서 볼 수 있는 재밌는 발견이 아닐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여기선 무색하기만 하다. 밤늦은 시간의 피로감 때문인지 다들 침묵할 뿐 말 건네는 사람도, 웃는 사람도, 좀처럼 찾기 힘들다. 희미한 미소를 띠며 아이패드로 독서를 하거나 문자 주고받기 등 자기들만의 세계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있을 뿐.

그런데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할아버지와 아가씨가 642번의 승객이 되면서 이 가라앉은 분위기는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고속버스로 상경한 할아버지를 마중 나왔다는 이조은(24) 씨는 발산역에 내릴 때까지 할아버지와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할아버지오 손녀가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차내 승객들의 무표정도 시나브로 부드럽게 바뀌고 있었다.

여의도 63빌딩을 지나며 새벽 1시를 맞았다. 이미 대부분의 상가들이 셔터를 내렸지만 이곳 여의도의 약국만은 아직도 불야성이다. 밤새 과음으로 토역질을 하는 사람에게도 약국은 필요하겠지만 심야 약국의 불빛은 칠흑의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 불빛과 닮아 보인다.

버스가 국립현충원을 지날 땐 태극기가 오롯이 눈에 들어와 순간적이나마 "와! 태극기다"하며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고 한강 인도교를 비추는 불빛을 보면서 요즘 뜨고 있는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읊조려 본 행복한 시간이었다. 느긋하게 버스 뒷좌석에 앉아 별미처럼 맛본 왕복 두 시간의 심야버스 체험. 처음 가보는 곳은 생경함에 바짝 구미가 당겨 좋고, 버스정류장을 외울 정도로 훤한 노선 길이어도 차창 밖 펼쳐지는 밤 풍경은 설레임의 연속이었으리라.

서울시는 2012년 12월까지 심야시간대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안심귀가 서비스를 제공해 안전하고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심야시간대에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심야 맞춤 시간대에 특정노선의 운행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안심귀가 서비스에 등록된 보호자에게 SMS를 활용해 도착예정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대중교통 심야 안전귀가 서비스'는 대중교통 심야 안전귀가 서비스에 가입한 시민이 버스에 승차한 후 스마트폰으로 버스 내부에 부착돼 있는 QR코드를 확인하게 되면, 자신의 현재 위치와 목적지까지의 도착예정시간을 사전에 등록된 보호자에게 SMS 등으로 알리는 형태로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 심야버스 운행에 관해 자세히 알려면 서울시 버스 안내 시스템(http://bus.go.kr)에 접속하거나 다산콜센터(02-120)에 문의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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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버스 #대중교통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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