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라구요? 알고 보니 재테크 관리자에 마누라더라!

하이서울뉴스 조미현

발행일 2011.11.04. 00:00

수정일 2011.11.04. 00:00

조회 5,489

 

노숙인 자활 복지계에 '개'라는 별명을 가진 '부자'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서대문사랑방의 김도진 원장과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의 이정훈 과장이다. 김도진 원장은 15년, 이정훈 과장은 5년째 이 일에 몸 담아왔고 실제 부자지간 못지 않게 끈끈한 5년의 세월을 동고동락하다가 올 7월 김원장이 서대문사랑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헤어지게 된 사이다. 최근에는 경사도 있었다.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가 서울시로부터 3년 연속 최우수 저축관리 시설로 지정 받을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닌 공을 인정받아 이정훈 과장이 제48회 저축의날 표창을 받은 것. 인터뷰 덕에 몇 달만에 재회한 부자는 매서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고, 남자 노숙인의 공간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주눅이 들어 있던 이 불청객은 만난 지 5분 만에 두 사람의 유머에 무장해제되어 버렸다. 그건 그렇고 이들에게 '개'라는 별명은 왜 붙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사회복지 일을 하신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김도진(이하 김) : 제조업체에서 공장장을 하다가 98년도 IMF 때 그만 두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제가 다니던 구세군교회에서 당시 서울역에 많이 생겨난 노숙인들 상담을 시작했는데 제 성격이 좀 괄괄하니까 시키더라구요. (웃음) 그러다가 대방동 사랑방이란 노숙인 쉼터가 생기면서 총무를 하게 됐죠. 이렇게 오래 하리라고는...15년째네요.

이정훈(이하 이) : 제과회사 영업을 많이 뛰었죠. 보육교사인 집사람이 여성 노숙인 모자쉼터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몇 번 짐 나르는 일을 도와줬더니 사회복지 일이 잘 어울릴 것 같다더군요. 막연한 동경은 있었지만 경제 위기 속에서 직장을 옮긴다는 두려움도 있었죠.

김 : 이정훈 과장, 원래 역도 선수였어요.

이 : 아, 네. 운동도 했었죠(웃음). 그러다가 구세군 충정로 사랑방 구인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죠. 사실 반신반의했어요. 저보다 경력 있고 복지사자격증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안 되면 복지관에서 운전이라도 할 생각까지 했어요. 운이 좋았죠.

김 : 제가 면접을 봤습니다(웃음).

그렇게 두 분의 인연이 시작되셨군요. 이 방면에서는 부자지간으로 통하던데요.

김 : 면접 보는데 사람이 씩씩했어요. 운동과 영업을 해서인지 사람을 대하는 것도 성실해 보이고...뭐,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반항도 많이 하고...(웃음)

이: 5년 전 면접보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원장님이 이력서를 죽 보시더니 영업을 많이 했는데 돈 많이 벌지 않냐, 그런데 왜 여기 오려고 하냐고 물으시더군요. 오래 못 버틸 거라 생각하셨겠죠.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사회복지사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 이거 그냥 말해도 되요? 이게 욕이 들어가는데...

김 : 네 맘대로 하세요!(웃음)

이 : 잘못하면 세상에서 가장 '개*같은' 인간이 사회복지사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이익을 위해서 사회복지 업무를 한다면 너는 없는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 거고, 네가 권위적인 모습으로 아저씨들을 대하게 되면 상처받은 사람들한테 소금 뿌리는 거다...확 와 닿았어요. 제겐 아직까지도 지표죠. 힘들 때면 그날을 생각해요.

김 : 옛부터 '말은 물가까지 끌고는 갈 수 있지만 먹이려고 하지 마라'고 하잖아요. 열심히 하다 보면 먹이고 싶어해요. 먹지 않으니까 힘들어 하구요. 이 일은 의욕과 열정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1~2년 하고 판단하지 말라. 욕심에 지치게 된다고 말하죠.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하시는 말씀 같이 들립니다.

김 : 맨 처음 저는 이분들을 약자로만 생각했어요. 내가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다. 내가 일을 하는 주체로서 이 사람들은 따라와야 한다. 그건 아니거든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란 다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들을 다 맞추려고 했던 거죠. 노숙인 자활시킨다고 하는데, 저도 아직 자활 못했걸랑요. 자활이란 게 뭐죠? 서울에서 내 집을 갖고 직업이 있고...그건 중산층 이상이잖아요(웃음)? 그러지 못한 서민들도 많잖아요. 제게 노숙인을 자활시켰다는 의미는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셨던 분이 거리에서 밥을 안 드시는 것, 쉼터에서 도움을 안 받으시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모아서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가족과 합치고...솔직히 그건 자활이 아니고 성공이죠.

김도진 원장(왼쪽)과 이정훈 과장

그런데 두 분에게 '개'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겨난 건가요?

이 : 아유...그거...저희 개 아니예요(웃음).

김 : (웃음) IMF 터지고 워낙 거리로 쏟아져나온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지하철 공공근로를 시켰어요. 일을 하고 나면 한 80만원 받거든요. 그런데 밥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80만원을 다 써버리는 거예요. 그게 보기 싫었어요. 안 되겠다, 돈을 좀 뺏어야겠다(웃음) 생각했죠. 그래서 바로 저축을 시켰어요. 물론 아저씨들이 자기 돈이니까 처음에는 반항을 많이 하죠. 내 돈인데...누가 당신 돈 아니랬냐...

이 : 여기서 우리가 '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겠습니다. (웃음) 강압적으로 하는 부분 물론 있어요. 단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드려요. 자활과 자립, 말은 좋은데 하루이틀에 되는 게 아니고 일정한 기간 동안 꾸준히 해야 합니다. 중간에 페이스를 놓치면 그 의지가 다시 꺾여요. 그래도 한숨도 쉬어가면서 저축하도록 유도합니다. 저축하고 나머지는 '프리하게' 쓰세요, 대신 출금은 안 해드립니다, 하는 거죠. 아저씨들도 피씨방 가서 게임도 하고, 세상도 봐야 하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 어디 사우나라도 잡아 놓고 술도 한 잔 하셔야죠. 쉼터에 들어오면 술은 절대 안 되니까. 취업을 한 아저씨들은 금요일 저녁에 들어와서 식사하시고 한 잔 하고 올께, 내일 봐, 하면서 나가시면 다음날 아침 들어오시죠. 일단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이틀 내내 잘 쉬시고 또 월요일에 출근하시는 거죠.

마누라 역할을 하시는 거네요.

이 : 그렇죠. 그런 역할이예요(웃음). 일해, 인간아! 저축해, 인간아! 씻어! 방청소도 좀 하쇼...(웃음)

김 : 그런데 200~300만원 모았을 때 문제가 생겨요. 돈 쓸 궁리만 하기 시작하죠.

자기가 마음대로 돈을 빼갈 수 있나요? 통장은 누구 명의인가요?

김 : 그래서 쉼터에서 퇴소한다고 그래요. 그 돈 쓰고 싶어서...그러면 설득을 하죠. 되게 힘들죠.

이: 통장은 직원 명의죠. 자기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 수 있지만 대부분이 신용불량자라서요. 대신 허락 동의서는 다 받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겠다면 만드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죠. 저한테 통장은 맡기고 직불카드 만들어서 다 써버려요.

이정훈 과장님 관리하시는 통장이 몇 명분이죠? 총 액수는요?

이 : 11억 6천만원이요. 6월 기준입니다. 저희 쉼터에 계시는 62명 외에 임대주택 계시는 분들까지 합쳐서 200명 넘죠.

김 : 200명의 저축관리를 하려다보니 매일 은행을 가는 거예요. 담당자들이 여럿 붙어서 도와주긴 하지만요.

이 : 어우, 저 혼자 은행 가면 안 되죠.(웃음)

비리의 소지가 있겠는데요? (웃음)

이 : 그래서 안전장치도 걸어놨어요. 도장은 원장님이 항상 갖고 계시고...

원장님도 비리의 소지가 있겠는데요? (웃음)

김 : 그러면 큰일 나죠(웃음).

참, 이정훈 과장님, 늦었지만 축하 드립니다. 이번에 상 타셨죠. 통장관리해드리는 몇 분도 저축왕 수상 하셨잖아요.

이 : 저희 시설에서 아저씨 두 분도 수상하셔서 기분이 좋죠. 한 푼 없이 시설에 찾아오셔서 세면도구랑 속내의까지 드려야 했던 분들이에요. 그런데 11억 6천만원을 저축하신 거죠. 200명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분들이 고른 저축을 하고 계시다는 거구요. 책임감도 더 생깁니다. 이름이 자활 센터인데 만약에 실무자가 제대로 일을 못해서 아저씨들이 자립보다는 시설에 안주하는 성향만 는다면 그 쉼터는 '득'이 되는 게 아니라 점 하나 딱 들어간 '독'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독하게 저축하시라고 하는 겁니다. 어떨 때는 좀 살살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조심스럽고 걱정도 되지만, 만일 우리 시설을 나간 사람이 다른 시설들을 돌다가 10년 후에 다시 여기로 돌아온다면 상상만 해도 괴롭죠. 힘들어도 이참에 자립을 시켜드려야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이고...가끔 가다 농담으로 그래요. 재수 없으니까 보기 싫으니까 더 저축하고 빨리빨리 자립하세요, 라고.

참 이상한 인연이네요. 정이 들수록 빨리 헤어지기를 바라는 관계라니..그 과정에서 에피소드도 많으실 것 같아요.

김 : 아까 200만원 얘기했지만, 500만원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열심히 저축하기 시작하죠. 나도 돈 모을 수 있구나 자신감도 붙고 심적으로도 여유가 생겨요. 그러다 1천만원 넘으면 거만함이 생기구요. 나 돈 있다!(웃음). 저희가 최고 힘들었던 사례가 있어요. 3천만원 모으셔서 나가서 살아보시려고 퇴소하신 분인데, 4개월 만에 다시 쉼터로 오셨어요. 사실 3천만원 갖고 일반인도 할 게 없잖아요. 그 분은 연고도 없는데 무조건 열심히 부딪쳐 보셨던 거고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받쳐줄 게 없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저희들이 2007년부터 주거지원사업을 하게 됐어요. 지금 이정훈 과장 있는 시설에서만 10억 넘는 돈을 모으게 된 것도 주거지원사업이 생기다 보니까 가능했던 거죠. 저축을 잘 하신 분들을 임대주택에 내보내고 그 분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임대주택에 계신 분들은 어떻게 됐건 돈 벌어서 밥 해먹고, 가족과 합치고, 결혼도 하시고...지금은 임대주택 원하시는 분은 많은데 들어가기는 힘들어졌어요. 주거지원사업이 정체 상태라 걱정입니다.

노숙인 쉼터 서대문사랑방 침실 내부. 게스트하우스를 방불케 하는 쾌적한 공간이다. 진분홍 이쁜 침구는 여름에는 베이지색으로 교체한다고. 입소 아저씨들은 일을 나가셔서 아무도 안 계셨다.

궁금한 게...처음부터 일하라고 하면 선뜻 하시나요?

김 : 아니요. 안 하죠. 우리도 그렇잖아요. 엄마 아빠가 취업하라고 하면 조금 있다 할께요, 하면서 안 하고 싶잖아요. 쉼터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눕고 싶고 자고 싶죠. 쉼터에 처음 들어오시면 한 15일은 내버려둬요. 건강검진 시켜드리면,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주무시고...그때는 답답하면 밖에 나가 바람 좀 쐬십시오, 그러다가 일찍만 들어오십시오, 하고 말하죠. 15일 지나고 슬슬 이야기하죠. 어떤 일 원하세요, 일하셔야죠, 담배 피우시잖아요, 담배값 없으시면 벌어야죠, 이런 식으로...살아가는 게 다 똑같아요. 저는 우리 아저씨들이 노숙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게 제일 싫거든요. 가끔 아저씨들이 '우리 노숙...'하고 말을 꺼내실 때면 저는 그러죠. 아저씨, 밖에서 주무세요? 밖에서 자야 노숙자지...(웃음)

일반인들이 노숙인을 접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돈 달라거나 말을 건네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김 : 돈 주지 마세요. 애매하면 '안됩니다'라고 얘기하면 되요. 그냥 지나가도 되요. 왜냐하면 당연히 그 돈 가지고 술을 사드시기 때문에. 술에 취한 노숙인들을 주취자라고 저희는 따로 부르는데, 제가 주취자 보호소를 만들어달라고 제안한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주취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알콜 치료 시설이예요. 거리에 계신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노숙인 입지시설도 세분화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우리 쉼터에 방송국이 취재 오는 걸 되게 싫어하는 이유가, 우리 아저씨들 보여주고, 다음 장면에서 거리에 계신 분 보여주면  끝나는 거죠. 우리 아저씨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거든요. 여기서 받아가지고 자기는 못먹어도 아들 등록금 보내는 그런 아버지들이 많이 있어요. 

이제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노숙인이 있으세요?

김 : 돌아가신 분들이죠. 장금 씨라고 많이들 아실 것 같은데 '집시의 기도'라는 시를 쓰신 분이 계셨어요. 옛날에 대방동 사랑방 시절에 시화전에 낼 시 써보세요, 했더니 1시간만에 쓴 시예요. 유명 재즈 가수가 노래로 만들기도 하셨죠. 또 한 분이 있는데, 역시 돌아가셨어요. 제가 아침저녁으로 잔소리를 하니까 저랑 있는 동안 술을 일절 끊으셨다가 제 결혼식날 오셔가지고 기분 좋아서 술을 드셨는데 신혼여행을 갔다 왔더니 알콜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신 상태였어요. 4일만에 돌아가셨죠. 병명은 알콜 간경화. 술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그때 느꼈어요. 그래서 쉼터 아저씨들한테 술은 절제하라고 강조하죠.

이 : 저는 지금 같이 생활하시는 분, 특히 임대주택에 나가서 나름대로 성실하게 우리와 의논해서 계획한 대로 차근차근 이뤄가는 아저씨들 한분 한분의 얼굴이 기억 나구요. 그 분들로 인해 슬럼프가 올 때마다 다시 힘을 내죠. 그런데 가장 기억나는 노숙인이라고 하면, 우리 시설 분은 아니신대요. 충정로 사랑방 있을 때 마당이 오픈이 돼있었는데, 거리 노숙인 한 분이 어떻게 얘기를 듣고 저희 쉼터를 찾아오셨나봐요. 어떻게 오셨어요, 했더니 '엄마 찾아왔다'고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요?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대요, 했더니 '참이슬'이라고 하셨죠. 그럼 아버지 성함이 '처음처럼' 아니세요, 했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하시더라구요. 며칠 전에는 임대주택이 아니라 주거 독립을 해서 나가신 분을 지하철에서 만났는데 더없이 반가웠어요.

마지막으로 노숙인 자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한마디로 꼽으신다면요?

김 : 직업과 주거죠. 일과 살 공간이 있으면 이런 데 올 필요가 없죠. 거리에서 자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이렇게 침대 몇 개 있는 곳에서 평생 살고 싶은 사람도 없구요.

이 :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신용회복입니다. 재사회화, 사회복구를 위해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해요. 직장을 잡고 싶은데 신용이 불량하고, 공공근로사업에 나가서 일하는 기회밖에 없다면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죠. 평생 우리하고 같이 가야 하는 거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바닥이 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해요.

김 : 가장 중요한 건 노숙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일반인들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거예요.

이 : 정상적인 가정환경을 갖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시다가 순간 어떤 상황, 어떤 문제가 생기면서 노숙인이 된 분들이 많아요. 저도 그럴 수 있구요. 경제적으로 열악해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상황이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봤음 좋겠습니다. 이 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계신대요.

 

엄마,아빠, 저 여기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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