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한복을 입은 파란 눈의 양반
발행일 201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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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여 서울에서 살게 되었나?
처음에는 이렇게 서울에 오래 살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대학시절 전공이 정치외교학이다 보니 한반도의 남북관계나 한미동맹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원래 아프리카에 관심이 더 많았다. 졸업 후 평화봉사단원으로 아프리카 파견 근무를 신청했다가 자리가 없어 한국에 오게 되었다. 1년 정도만 머무르다 다시 신청해서 아프리카로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거주지도 서울이 아닌 시골로 지원하였다. 막상 인심도 좋고, 환경도 깨끗하고, 풍경도 아름다운 경북 문경에서 생활하면서 그만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문경에서 3년을 체류한 후 대학원에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오는 바람에 떠나와야 했지만 정말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퇴직하면 다시 안동 일대 마을로 귀향할 생각이다.
-서울에 관한 지식을 영어권 국가들에 홍보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바대로 세계적인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의 한국판을 보고 아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홍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책은 내가 한국에 올 때 가이드북으로 들고 왔을 정도로 보편화되고 잘 쓰여진 책이었지만, 서울에서 살지 않은 사람이 썼기 때문에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야 알 수 있는 정보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도시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모하는 존재이기에 이런 변화하는 도시를 홍보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서울을 제대로 알리는 작업은 분명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매력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곤란하지만, ‘내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움’을 들 수 있겠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중국, 일본 등과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한국의 문화는 이들과 분명히 다르다. 건축 문화를 예로 들자면, 중국은 우락부락할 정도로 장엄하고, 일본은 작고 정형화되어 딱딱할 정도로 깔끔하다. 하지만 한국은 유학사상의 영향이 가장 큰 나라였던 덕분인지, 오만하지 않고 겸허하다. 이런 모습을 닮은 한국의 건축도 결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혹시 한옥에 살아본 적이 있는가? 한옥은 정말 인간적인 건축이다. 밖에서 보면 소박하고 수수해 보이지만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어 좋고, 그 안에 들어가보면 인간 위주로 설계되어 사는 이의 마음을 편하고 평화로워지게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이처럼 한국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감상해나가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관광에 앞서 우리 역사를 알아주기를 주문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인가?
많은 외국인들이 이런 한국의 내적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겉만 훑는 관광으로 대충 둘러보고 ‘한국, 별거 없구나!’ 하고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한국 관광의 목적이야 사람에 따라 쇼핑, 구경 등등 제각각 다르지만, 그래도 한국을 찾는 이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냥 떠나 보내면 안타깝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우러나온 한국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조금이라도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워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먼저 알고 한국을 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 블로그(www.rjkoehler.com)에 보면 “한국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이 블로그를 보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제대로 보려고 노력해달라는 의미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로버트 쾰러라는 인물은 웹사이트 운영자로 더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그의 블로그는 외국인 방문객 수가 많다고 한다.)
-서울을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운 도시’라고 소개했는데 서울의 어떤 면이 특히 그러한가?
서울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은 전통과 현대의 대조 즉 옛 것과 현대적인 것의 묘한 공존이다. 현대적 도심 속에 숭례문, 광화문 같은 옛 문화의 흔적들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모습은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움이다. 이런 옛 문화와 현대적인 문화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수 있는 근대적인 모습들이 6.25나 도시재개발 등으로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서울 곳곳의 역사가 담긴 도보여행 코스를 소개한 적도 있는데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보 여행길 세 곳을 추천한다면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서울을 둘러보기에 앞서 전국을 돌아보도록 권유하고 싶다. 분단 정치사의 현장인 판문점, 그리고 역사적 아름다움이 잘 남아있는 경주, 그리고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미를 간직한 안동 지역 등을 추천하고 싶다. 서울에서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북촌 일대, 그리고 유네스코에 등재된 창덕궁, 그리고 주변에 아름다운 근대적 양식들까지 감상할 수 있는 덕수궁 일대를 둘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서울의 현대적인 면모도 좋지만, 이곳들은 역사와 문화를 통해 서울의 정체성을 알려줄 수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면서도 일상 생활 중 개량한복을 즐겨 입고 그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한복 예찬론자라고 들었다. 한복의 우수성을 꼽으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처음엔 개량한복이 편하고 멋있어 보여서 입게 되었는데, 막상 입어보니 편할 뿐만 아니라, 유행도 안타서 경제적인 데다가 멋스럽기까지 하다. 이제는 한복이 주는 이미지가 내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되어 한복을 입어야 가장 나다움을 느낀다. 옷차림은 볼거리 일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의 한 부분인데,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전통의상들이 너무 쉽게 사라진다는 것이 안타깝다. 중동지역을 제외한 전세계인이 거의 서양 옷차림을 당연시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지만, 자국 의상에 담긴 각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시의 홍보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 서울시에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말해 달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서울을 홍보하는 일이다. 그래서 서울시의 홍보 정책에 관해 평가하기는 곤란하다.(웃음) 서울이라는 도시가 워낙 큰 도시이기에 궁궐이나 기존에 잘 알려진 곳들의 홍보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외의 곳들은 소홀히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사람들에게 알려져 유명세를 치르다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인사동과 같은 공간들을 볼 때면 홍보를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서울을 알리는 데 앞장서는 사람이기에 대도시 서울 속 숨겨진 명소들이 좀더 널리 홍보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서울을 홍보하는 언론인이 아닌 ‘로버트 쾰러’라는 한 인물의 서울의 삶을 말해 달라.
서울에서 만난 몽고 출신의 아내와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주로 찍는다. 그러다 보니 사라져가는 한국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이 빠르게 현대화되면서 근대적 문화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도시를 재개발하거나 복원할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살리면서 제대로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시는 항상 변화하는 존재이므로 재개발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재개발을 할 때 기존의 도시를 모두 없앤 후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한 예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가까운 용산역 일대에 ‘신계동’이라고 하는 동네가 있었다. 일제 시절 철도청 직원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기 때문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풍관사, 옛 교회 등과 같은 이국적이면서도 근대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많았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의 정체성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 같아 슬프고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살려야 하는 것들과 살릴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살리면서 새로운 도심을 개발해나갔으면 싶다.
-누구보다 서울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서울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말해 달라.
서울의 모든 동네에는 그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다. 문화를 알아야만 그 가치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수많은 문화가 담겨있는 자신의 동네 주변부터 살펴봐달라. 예를 들어 용산 성심여고 성당은 명동성당을 설계한 선교사가 설계한 근대문화 중 손꼽을 만한 유적이다. 그리고 이화여대 내에 있는 기도실은 대천 선교사관과 철원 노동당사 옆 교회를 건축한 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다. 장개석 정부 시절 중국 남경 도시 설계를 맡은 적이 있는 이가 설계한 건축물이 바로 우리 동네, 그리고 당신 곁인 연세대학교 안에 있다.
- 현재 진행 중인 작업과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6.25관련 유적자료집을 출판하기 위해 준비 중인데, 금년이나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향후에는 일제시대 근대건축물을 소개하는 책을 쓰고 싶다. 그 책이 쓰여진다면 문화재적 가치를 알릴 수 있어 한국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외국의 영향으로 인해 지어진 것이므로 외국과 한국의 교류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을 널릴 수 있는 한국판 가이드북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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