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보리를 어디서 먹어 보느냐, 옛 생각난다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영옥

발행일 2011.09.22. 00:00

수정일 2011.09.22. 00:00

조회 2,193

연일 늦더위로 한낮 쨍쨍 내려쬐이는 햇빛이 반가운 이들이 있다. ‘논에 물이 뜨끈뜨끈해야 벼가 잘 여무는 게야.’ 하시던 먼 기억 속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풍요로운 들판을 바라는 농부의 마음으로 벼가 익어가는 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찾는 이들이 있다. 서울 유일의 농요(農謠)를 전승 보존 중인 마들농요전승보존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일주일에 두 번 마들농요 연습이 끝나면 수시로 농사체험장을 찾아와 벼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살핀다.

노원구 마들 근린공원 안에 마련된 농사체험장에서는 풍물장단에 맞춰 마들농요전승보존회원들이 덩실거리며 논두렁을 걷고 있었다. 윗논과 아랫논엔 키가 어른 허리춤까지 올 만큼 잘 자란 벼가 뜨거운 태양을 양분 삼아 실하게 여물고 있다. 논 안 물 위엔 수정을 마치고 떨어진 벼 이삭의 꽃가루들이 하얗게 떠다닌다. 논에 물이 부족할 경우 늘 물을 댈 수 있도록 논 옆으로는 작은 방죽도 마련되어 있어 논에 물을 퍼 올리는 용두레, 맞두레 체험도 가능하게 조성돼 있었다. 논두렁엔 콩이 익어가고 이웃한 작은 밭엔 조롱박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수수와 조도 묵직해진 고개를 서서히 떨어뜨리고 있는 중이었다. 가을 들판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풍경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작년에는 볍씨 여섯 가마를 수확해 방아를 찧어 올기쌀 세 가마 반을 수확해, 관내 복지관 10곳에 조금씩 나눠드렸습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벼농사를 지은 셈이죠. 올해는 비가 오는 날이 많아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잘 자라 주니 얼마나 기특한지 모릅니다.”

작년부터 이곳에 농사체험장을 열고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봄부터 모내기를 하고 김매기와 피사리를 하며 벼를 키우고 있는 마들농요전승보존회 김완수 회장의 기쁨에 찬 한마디다.

마들농요전승보존회장 김완수 씨

마들근린공원에 농사체험장이 마련되고 실제로 벼농사의 전 과정이 재현된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다. 중요무형 문화재 19호 선소리산타령을 이수한 김완수씨는 1990년 상계1동 고 윤선보 옹에게서 마들농요를 사사 받았다. 이후 김완수 씨는 서울 유일의 농요인 마들농요를 전승 보존하는데 힘을 기울였고 1999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됐다.

해를 거듭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펼친 마들농요예능 보유자인 김완수(現 마들농요전승보존회 회장) 씨와 그가 지도한 보존회원들은 전국민속경연대회, 서울시민의 날 축제, 다수의 마들농요 자체 발표 공연, 마들농요 테이프 제작, 지역의 경로위안잔치와 초·중·고등학교에서의 마들농요 시연 등으로 마들농요를 널리 알리고 전승 보전하기 위한 노력들을 지속해 왔다. 전국 각지 순회공연은 물론 정기공연 등으로 활발한 공연활동을 통해 마들농요를 알리던 김완수회장과 보존회원들은 김완수회장 자택 2층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들농요 전수 수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전수회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2009년 농업박물관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마들농요 체험공연과 농기구 체험을 펼치며 큰 인기를 얻었던 김완수 회장은 전수회관이 아니라 농사를 직접 짓고 시기별로 그에 맞는 마들농요를 불러 보는 체험학습장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들농요의 본고장인 노원구 상계동에 농사체험장이 마련됐으면 한다는 입장을 자치단체장을 찾아 전했다. 긍정적인 검토 후 작년부터 마들근린공원에 논과 공연장 등 1천여 평에 이르는 농사체험장이 갖춰졌다.

마들농요보존회는 5월부터 10월까지 농사 일정에 맞춰 모심기, 애벌김매기, 두벌김매기, 세벌김매기, 수확 순으로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농사 체험과 마들 농요 전수, 다양한 농기구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있다. 마들농요보존회는 올해 농사체험장 안에 노원구 상천초등학교와 원광초등학교 초등생들과 함께 모심기를 했고, 모가 자란 논에서 초등생들과 함께 잡초를 뽑고 뿌리에 흙을 덮어 모가 왕성하게 자라게 해주는 애벌 김매기, 두벌 김매기를 이미 마쳤다.

농사의 전(全) 과정에 따라 마들농요는 모심는 소리와 호미로 애벌매기를 할 때의 ‘두루차 소리’, 두 번 맬 때의 ‘미나리’, 다 매 갈 저녁 무렵에 신나게 부르는 ‘꺽음조’(저녁소리), ‘방아타령’, ‘네엘넬넬 상사도야’(논두렁 밟기), ‘우야 소리’(새 쫓는 소리)로 나뉘는데 농사체험과 함께 마들농요 부르기 체험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 중 ‘두루차 소리’(애벌매는 소리)와 ‘꺽음조’(저녁노래)는 마들농요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곡들이기도 하다.

오는 10월 13일부터 18일에는 대대적인 ‘벼 베기 행사’를 남겨 놓고 있을 뿐 아니라 10월 말경에는 ‘가을걷이 발표회’도 계획하고 있다. 이날 모인 보존회원들은 논 주변 공연장의 잡초를 뽑으며 농사체험장을 정리하기도 했다. 논두렁에서 수확한 콩으로는 된장과 간장도 담고, 가을걷이 후엔 윗논에 청보리 씨앗을 뿌려 내년 봄 보리 수확을 계획하고 있다. 작년에도 가을걷이 후 보리씨를 뿌려 올 봄 보리를 수확했다. 서울에서 드물게 이모작을 성공시킨 셈. 수확한 보리를 쪄서 만든 ‘찐 보리’는 올해 2천여 명이 모인 석촌호수 공연 당시 보존회원 10명이 바가지에 담아 가지고 다니며 관객들에게 한 줌씩 나눠줬다. “찐 보리를 어디서 먹어 보느냐, 옛 맛 난다, 옛 생각난다.” 는 등의 높은 호응을 얻어냈다.

마들농요보존회 김완수 회장은 “마들농요를 부르며 하는 농사 체험은 청소년들이 우리 농경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농사를 모두 기계로 짓고 있어 농경문화를 체험할 수 없는데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 벼농사의 모든 과정과 그 과정별로 마들농요를 불러보는 체험 이외에도 논에 물을 푸는 용두레와 두 사람이 함께 물을 퍼 논에 물을 대는 맞두레질 해보기, 방아 찧어보기, 키질 하여 보기, 홀태로 벼 훑기 등 농기구 체험은 서울에서는 마들농요전승보존회에서만 가능한 체험들이다”라고 소개했다.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인터넷 신청자들에게도 벼 베기 행사와 가을걷이 발표회의 참여 기회는 열려 있다. 서울에서 직접 농사짓고 수확하며 농요를 부르는 현장을 볼 수 있어 의미가 깊다.(문의 : 02-936-3055)

 

마들농요는?

마들은 말들이 뛰놀던 들판이라는 뜻으로 민간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오던 노원의 또 다른 지명이다.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한때는 볍씨만도 800석을 넘게 뿌렸을 만큼 큰 평야였다고 한다. 그 너른 평야에서 모를 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하며 농사일의 어려움을 잊기 위해 흥얼거렸던 노래가 마들농요다. 마들농요는 1999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됐다.

#마들농요 #농사체험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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