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낭만시장엔 낭만이 있다

admin

발행일 2010.05.13. 00:00

수정일 2010.05.13. 00:00

조회 1,942

하루 24시간은 짧고, 우리네 삶은 바쁘다. ‘소박한 꿈’이나 ‘낭만’은 점점 잊혀져간다. 낭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잊고 살아가는 소중한 것들 중 하나이다. 동대문, 언제나 바쁜 그 곳, 여유롭게 느껴지는 ‘낭만’이라는 단어와는 쉬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 곳에 낭만과 추억이 펼쳐졌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디자인갤러리에서 6월 30일까지 진행되는 '동대문 낭만시장전'은 우리의 삶이 현대화되면서 잊어버렸던 우리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다루는 전시회로, 옛날 동네나 시장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었던 헌책방, 골목길과 텃밭, 사람과 동물의 공존, 시장에 있던 가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전시회는 2주마다 새로운 테마의 전시로 바뀌는데, 그 중 두 번째 전시회인 골목길과 텃밭을 주제로 한 ‘골목길 채원(菜園)전’을 관람했다.

당신의 ‘소박한 꿈’이나 ‘낭만’ 리스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혹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텃밭이나 작은 정원을 가꾸는 것이 들어있지는 않은가? 작은 정원이나 텃밭은 이제 현실이 아닌 낭만과 꿈이 되어가고 있다.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 피어있던 금잔화도, 군데군데 있던 텃밭도 이제 모두 추억이 되어버렸다. 동대문 주변도 다르지 않았다. 대형 쇼핑몰, 사방으로 뚫려있는 도로, 이 모든 풍경을 뒤로 하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들어섰다.

걷다보니 디자인갤러리 앞에 못 보던 화분들이 있었다. 궁금함에 안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수많은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화분에는 텃밭에서 기를법한 상추, 비트 같은 야채와 각종 허브가 심겨져 있었다. 작게나마 추억 속 텃밭을 재현하려 노력한 것이리라. 똑같이 물을 주고 햇볕을 쏘였을 터인데 몇몇은 시들했고 또 몇몇은 건강한 초록을 뽐내고 있었다. 그건 식물들의 특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식물은 많은 물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식물은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니 전시장에 배치된 화분들이 마치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아가는 우리네 풍경 같다. 허브의 잎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향을 맡아보았다. 서로의 개성만큼이나 향도 다양했다.

한쪽 벽면에는 텃밭을 일구는데 사용했을 1970년대의 농기구와 몇몇 사진이 있었다. 대부분은 좁은 골목길에, 시장 한가운데에 인위적으로 설치한 화분 텃밭의 사진이었다. 그 중 한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콘크리트 벽 뒤로 펼쳐진 얼마 안 되는 흙 속에서 자라나는 싹, 그것은 점점 사라져가는 소박한 꿈의 발현, 아니 발악일런지도 모른다. 한동안 사진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나가는 길목에는 낭만을 실현하기 쉽지 않은 우리를 위한 현대적 원예용품들이 있었다. 일반적인 원예용품과는 달리 새로운 아이디어가 눈길을 끌었다. 그 중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동그란 머리에 길고 가는 몸체를 지닌 원예용품이었다.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하거나 물을 매일 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란다. 웃고 있는 머리 부분은 보기에도 좋아 기분을 유쾌하게 했다. 어쩌면 정원이나 텃밭이 낭만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우리의 갖은 핑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투적인 핑계를 대며 많은 소중한 꿈과 생각을 짓밟아버리고 있지는 않을까. 갑자기 걱정이 된다.

골목길 채원전은 생각하며 보기에 좋은 전시회로 기억에 남을 듯싶다. 우연히 마주친 그 작은 텃밭과 함께 조용히 생각해보니 잊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다시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이 난다면 한번쯤 동대문 낭만시장전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작지만, 잊었던 낭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동대문 낭만시장전에서 펼쳐질 또 다른 낭만들을 기대해본다.

시민기자/고은빈
mihouma@sookmyung.ac.kr
http://blog.naver.com/eunbini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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