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노숙인, 지금은 어엿한 작가입니다

admin

발행일 2010.06.15. 00:00

수정일 2010.06.15. 00:00

조회 2,337

10년 전 갓 마흔이 되었을 때 1남 1녀를 둔 단란했던 가정이 파탄 나면서 나는 신용불량자가 되고 몸 하나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망해 버렸습니다. 도저히 살아갈 희망과 용기가 없어서 생을 마감하려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렇게 덤으로 주어진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 거리의 남자, 인문학을 만나다 / 안승갑 지음

노숙인 대상 강의 … 진솔한 경험담으로 좋은 반응 얻어

“여러분은 왜 사시나요?”
작가 안승갑(51) 씨가 성동구 비전트레이닝센터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안승갑 씨의 질문에 강의실은 순간 조용해졌다. 이 자리는 서울시가 노숙인 등 저소득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희망의 인문학’ 강좌 중 하나였다. 평소 철학, 역사,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저도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3년 3개월 정도 있다가 사회에 복귀했지요. 오늘 와 보니 꼭 고향에 온 기분이네요."
안 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낸 적이 있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이들처럼 한 때 노숙인 생활을 해 왔다. 그러한 경험 덕분인지 청강생들은 유독 그의 얘기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가족을 사랑할 수 없고, 이웃을 사랑할 수 없지요.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한 두 번은 실패할 수 있으니, 노숙인이라고 자학하지 말고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본인 스스로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평화로웠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긴 했지만, 부잣집으로 입양되어 부족함 없이 살았다.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해서 1남 1녀의 자녀도 키웠다.

그러나 1999년 도박으로 가진 것을 다 잃고 이혼까지 하자, 그의 노숙인 생활은 시작됐다. 대부분 역 대합실에서 보냈다. 어느 날은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에게 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건 ‘희망의 인문학’을 들은 이후부터였다.

“희망의 인문학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내가 변하자 나를 대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한두 번 실패한다. 그러나 안 씨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있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시련도 견딜만한 시련으로 바뀐다고 말한다. 또한, 감사하는 삶을 살고,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기라고 조언한다.

“변화는 한 번에 되지 않습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고 있습니다. 다만, 행동에 옮기지 못할 뿐입니다.”

그 역시 노숙인이었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았다. 그러나 조금씩 용기 내어 살다 보니 어느새 책 한 권을 낸 작가가 되어 있었고, 누군가의 삶을 토닥거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현재 그는 서울시립 비전트레이닝센터에서 지내다 자립하여,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 그의 꿈은 10년 전 헤어진 아내와 재결합해 노모를 모시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살고 싶다. 그런 그의 바람을 대변하듯 그의 책 마지막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나는 물을 받아 우선 목을 축였습니다. 그리고는 밥을 했습니다. 국도 끓이고, 빨래도 하고, 이제 또 그 물로 청소도 할 겁니다. 그리고는 이제 빈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울 겁니다. 왜냐구요? 물이 떨어졌다고 목말라 하는 내 이웃이 오면 나도 그들에게 마중물로 나누어 주려고요.”

문의 : 120다산콜센터 ☎ 120

■ 희망의 인문학이란

‘희망의 인문학’은 인문학강좌, 건강강좌, 성공사례발표회, 문화체험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정신적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지난해에는 철학, 역사, 문학, 예술 등 기본 강좌와 함께 작가 신경숙 등 저명인사 특강(39회), 문화공연관람 등 체험학습(89회)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입학인원 중 1,210명(73.6%)이 수업을 마치는 등 높은 수료율을 보였다.

그리고 설문조사 결과 응답, 수료자의 92%가 변화ㆍ성찰의 기회가 되었다고 답하여, ‘희망의 인문학’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노숙인반, 저소득층반, 심화반 등 51개 반 1,500여 명이 ‘희망의 인문학’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는 6월 중 저소득층반 500여명을 추가로 모집하여 2010년 한 해 2000여 명의 노숙인·저소득 시민이 ‘희망의 인문학’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이서울뉴스/조선기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