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걱정 없는 세상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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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08.26. 00:00
'전쟁과도 같은' 데이케이센터의 하루 밀착 취재기 여기는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도봉노인종합복지관 1층 데이케어센터. 월요일 아침 9시가 조금 안 된 시간, 기자가 방문했을 때 센터 입구는 벌써 시장통이었다. 치매 어르신들이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차례차례 들어서고 있었다. 센터 소파에 모두가 자리 하는데 족히 40분이 걸렸다. 성한 사람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기서는 그런 일도 진땀나는 작업이다. 20평 남짓한 센터는 아기자기한 유아원 같은 분위기다. 잠시 요양보호사 등 여러 직원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스케줄에 따라 혈압 등 건강을 체크하는 일이 시작된다. 최윤지 간호사는 한분한분 혈압을 재며 어르신의 컨디션과 기분을 묻는다. 팔을 맡긴 최준상(78) 어르신은 반대편 손이 왜 떨리는지 뜬금없이 묻는다. 이 질문이 처음은 아니지만 최간호사는 파킨슨병이라고 천천히 말해준다. 그 어르신은 자기병을 믿을 수 없어 재차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건강체크가 끝나고 아침체조와 노래연습 시간이 점심때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노래연습 중 조그만 소란이 벌어졌다. 한 어르신이 느닷없이 실습생의 따귀를 때렸다. 실습 차 나온 이철민(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2년) 군은 옆에서 할머니를 보살피다 갑자기 얻어맞았다. 그렇다고 어쩔 수도 없는 일. 그는 잠시 자리를 피할 뿐이다. 함께 실습중인 최용준, 김용오 군도 그런 황당한 일에 이력이 났지만 막상 당하면 난감하다고 토로한다. 점심시간도 만만치 않다. 지하에 훌륭한 경로식당이 있지만 이동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번거롭더라도 일일이 배식판을 운반해 어르신들에게 제공한다. 점심 후 오후 1시 30분. 꽃바구니를 만드는 시간이다. 사실 기자가 더 궁금했다. 치매환자와 꽃, 어쩐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그림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다발의 꽃을 들고 나타난 원예치료사 김윤희(40) 강사는 이미 꽃으로 어르신들과 통하는 사이로 보였다. 김강사는 먼저 지난번 강의의 기억을 물어본다. 그러나 모두 깜깜하다. 압화(壓花)를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억장애 때문이다. 그저 과거를 더듬어 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강사와 노인돌보미의 도움으로 드디어 예쁜 꽃바구니가 만들어졌다. 이 시간의 하이라이트는 꽃 감상. 꽃바구니를 보고 한마디씩 하는데 최옥선(87) 할머니의 표현이 절묘하다. “사람은 못나도 꽃은 이쁘다." 사실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외치는 충고처럼 들렸다. 오후 간식시간. 박한숙 요양보호사는 바나나, 떡 등이 담긴 그릇을 어르신들 앞에 신속히 내놓는다. 간혹 어르신들은 어린애처럼 욕심을 부린다. 그래서인지 빨리들 드시는 편이다. 그 중 최고령 안복녀(93) 어르신은 시장한지 맛있게 해치우셨다. 이어지는 그림그리기. 이른바 미술치료 시간이다. ‘머리카락이 검다’는 고정관념은 여기선 얼마든지 깨진다. 실제로 어르신들은 색다른 머리카락을 더 많이 그린다. 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가장 편하게 보였다. 이번에는 노래시간. 노련한 박 요양보호사가 ‘아리랑'의 첫 소절을 부르자 이종복(72) 어르신은 혼자 끝까지 힘차게 부른다. 할아버지는 다른 노래도 거침없이 몇 곡을 부를 수 있는 재주가 있고 그림도 감각이 남다른 분이다. 그를 보며 치매도 타고난 소질은 막을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렇듯 센터는 온종일 치매 어르신들의 재활을 목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외에 발마사지, 물리치료 및 치매센터와 연계한 정기적인 치료도 지속적으로 병행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모든 활동을 가족의 누군가가 도맡아야 했었다. 그러니 얼마나 희생이 컸던가. 그러나 이제 그런 고통을 사회가 분담하는 시대가 왔다. 센터에서 서비스를 받고 있는 어르신은 현재 14명. 요양보호사 2명이 관리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때문에 노인돌보미, 케어실습생, 자원봉사자 등 여러 손길이 함께 하고 있었다. 오늘 처음 4시간의 자원봉사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문지희, 왕혜지(신상중 2년) 양은 생소한 분위기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틀 후에는 어르신들에게 보다 자신있게 다가가 봉사하는 자세를 보여주겠다고 야무지게 다짐한다. 센터의 매니저 정지순(29) 사회복지사는 하루 일과가 전쟁 같다는 말을 애써 피했지만, 사실 그 말처럼 적절한 표현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 개개인의 약을 챙기고, 프로그램 중에도 동태를 살피는 것은 물론, 치매증상으로 이탈하는 어르신을 제지하고 설득하거나, 어르신들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는 일이 다반사다. 저녁 6시. 어르신들을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모두 나간 빈 방에 잠시 적막감이 돈다. 동원대 실습생들이 어지러운 방을 청소하고 있지만 너무 조용하다. 그러나 밤 10시까지 계속되는 야간서비스로 또 센터는 활기를 띨 것이다. 이제 치매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고 피한다고 해결될 수도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인식에서 데이케어센터가 탄생했다. 특히 반가운 것은 데어케어센터의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벌써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그 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데이케어센터를 한 달여 운영해본 이은주 관장은 “복지관 본래의 여가복지 기능과 부가된 치매치료 기능을 조화롭게 추진하는 것이 최종목표지만 센터 이용 어르신이 최대한 만족할 때까지 1:1 맞춤서비스에 충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늘 탐방은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치매어르신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치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떨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내 편견을 스스로 깸으로써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치매 걱정 없는 세상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시민기자/이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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